이미 해 낸 것을 비춰줄 때

마음근력이 필요한 순간

by 마음치유사 김근하

"마음에 안 들어."

"뭐가?"

"내 모습 말이야.

아이들은 다 대학 갈 준비를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난 없어. 루저가 된 기분이야.

"하고 싶은 것이 없을 수도 있지. 괜찮아."

"미안해...

하고 싶은 게 없어서.

엄마랑, 아빠는 열심히 사는데 나는 하고 싶은 게 없어서

정말 미안해. 세상에 필요없는 존재같아서 죽고 싶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새벽에 거나하게 취해서 들어 온 입시 준비생, 딸.

별안간 그녀의 고백에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소중한 나의 딸이 정말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까 싶어

목이 매였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가지 못한다고

자신을 '루저'라고 명명할 때 내게도 슬픔이 찾아왔다.



불현듯 나의 일상 속 언어 습관이 떠올랐다.

"이번 방학에는 어떻게 보낼거야?

계획은 세웠어?

좀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좀 해 봐."



나에게 중요한 삶의 가치언어(계획,성장, 도전)가

혹여나 그녀에게는 폭력적으로 쓰이지는 않았나 싶어서다.



그녀는 한참을 울면서 '죽고 싶어'를 되내이다가

"오늘은 엄마랑 자도 돼?"라고 물었다.

나는 침대 한켠을 내어주며 그러라고 했다.

'마음이 허했던 걸까?'

'누군가에게라도 기대고 싶었던 걸까?'

한번도 같이 자자고 표현하지 않았던 딸의 부탁이

애잔하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세상의 루트(?)대로 살지 않으면

비정상적이라고, 일반적이지 않다고 해석하며 자식을 대하곤 한다.

나의 부모님도 대학과 결혼, 그리고 출산까지 어느 시기마다 그 때를 놓칠까 싶어

'~해야 지!' 라는 말로 재촉하곤 했다.

그때마다 얼마나 숨통이 막혔던가!




우리 부부는 딸의 '죽음'에 대한 고백 이후

모든 결정에 대해 존중과 기다림을 수행하듯 연마했다.

때론 '저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만큼 의구심이 들때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무엇을 표현하고 있나?'

관찰하고 칭찬해주었다.




어느 날엔가 일본 아이돌에게 빠져

일본에 직접 가서 콘서트를 보겠다고 했을 때

잠시 당황스러웠다.

'아니...일본 가수가 한국에 오면 가는거지...아이돌 콘서트를 보러

일본까지 간단말인가!?'싶은 생각에서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녀의 결정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경험해 보고 와서 어떠했는지 들려줘.

대단하다. 엄마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결심이야.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다는 것도 그들을 만나러 일본까지

가는 것도 멋진 일인 것 같아."

격려해주었다.






어제 표현예술치료 수업에서 수련 선생님께서

소년원에서 수업을 할 때 겪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주셨다.

"여러분 스스로 잘 하는 것을 칭찬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게요."

라고 하고 종이를 나눠주고 적게 했더니 한 소년이,

"~보다 키가 크다."

"~보다 축구를 잘 한다."

"~보다 잘 생겼다."

이런 식의 문장으로 20개를 적은 노트를 발견했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물었다.

"여러분이 강사라면 뭐라고 이 친구에게 피드백을 주시겠어요?"

맨 먼저 드는 자동적 생각은,

'~보다'라고 비교하지 말고 써볼래?'라는 교정(?)의 에너지를 듬뿍 담아

피드백을 할 것 같았다.


교수님은 이렇게 소년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나 많이 썼구나. 네가 잘하는 것을 알고 있구나. 축하해.

이번에는 비교없이도 찾을 수 있을까?"

그러자,소년은 자신없는 듯 했지만

이내 100개의 장점을 찾아 제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 수업부터 선생님에게

"제가 뭐 도와드릴 것 있어요?"라고 묻더란다.




세상이 정해놓은 Top Down방식의 질문과 답에서 벗어나

지금 무언가를 해 낸, 그 자체를 비춰줄 때

아이도 어른도 빛난다.









딸은 어느 덧 스물 두살이 되어

일본에서 워킹 홀리데이하고 있다.

아직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단다.

그래서 떠나보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 나이 됐으면 이제 좀 정해봐!

엄마도 기다리는데 한계가 있다고!"가 아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서 떠난다는 말이

너무나 멋지게 들린다.마음껏 경험하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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