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나 Jan 14. 2021

산책이 주는 즐거움

내가 2020년 한 해 가장 잘했고, 2021년에도 계속하고자 하는 목표는 하루 6000보 이상 걷기이다.

정확하게는 작년 2월, 코로나가 막 시작되었을 때부터 걷기 시작했다. 걷기 시작한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었고, 살을 빼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내 마음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코로나가 터지고 내가 다니고 있던 회사의 매출이 갑자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나는 그때 백화점을 주 유통망으로 하는 어덜트 브랜드의 기획 MD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주요 고객층이 60대 이상의 노년층인 데다가 오프라인 매장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매출 타격이 굉장히 컸다. 임원들은 대안 방안을 내놓으라며 쪼기 시작했고, 나는 그때 스트레스로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복잡한 생각들로 잠을 설치다가 새벽 1-2시에 겨우 잠이 들어도, 새벽 4시에 가슴이 쿵쿵거려서 잠에서 깼다. 몸은 너무 피곤한데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잠들어 있는 남편이 혹시 불빛에 깰까, 나는 화장실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날이 밝으면 출근 준비를 했다. 그렇게 몇 주를 보내고 나니 우울증이 올 것만 같았다


유튜브에 우울증 극복, 스트레스 해소 법을 검색해 보니 "산책"이나 "달리기"가 좋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걷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 불안함에 쿵쿵거리는 심장을 안고 눈을 뜨면 나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밖으로 나섰다. 



새벽 5시, 차갑지만 깨끗하고 상쾌한 공기가 코에서 가슴으로 쑤욱하고 들오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도 사람이 있을까 했지만, 그 시간에도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얼마쯤 걸었을까? 신기하게 불안하던 마음도 잠잠해지고 쿵쿵거리던 심장소리보다 나의 가빠진 숨소리가 나긋하게 들려왔다. 

 

우리 집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세곡천이 나오는데, 그때 마침 떠오르는 태양이 얼마나 장관이 던 지, 마음이 다 먹먹해졌다. 마치 내게 위로라도 하는 것처럼 내 얼굴에 따듯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처음의 불안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기분 좋은 뿌듯함으로 그날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거의 매일 새벽에 산책을 나갔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세 달을 넘기니 주변에서 "살 빠졌다.", "피부 좋아졌다"라는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세 달 동안 새벽 1시간 산책으로 4kg이나 빠졌다. 살이 빠진 것보다 더 좋은 점은 밤에 숙면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새벽 2시까지 잠 못 이루던 나는 10시만 되면 잠이 쏟아졌다. 그리고 다음 날 정말 깨끗한 정신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회사의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졌고, 임원들의 압박도 더 심해졌지만, 나는 매일 아침 걸으면서 그 스트레스들을 잘 버틸 수 있었다.


회사는 5월부터 8월까지 단축근무와 연봉 삭감을 시행했고, 더 불안해진 상황에서도 나는 더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았다. 특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4월과 5월의 산책은 정말 힐링이었다. 매일매일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어떤 강의에서 내가 지금 행복하지 불행하지를 알려면, 내가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꽃이 피면 꽃이 아름답게 피었다고 감탄하고, 단풍이 지면 단풍이 아름답다고 감탄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게, 어찌 보면 가장 불안했을 수도 있었던 나의 봄, 여름은 내게 너무나 아름다웠던 계절로 남게 되었다. 



다행히 회사 매출이 어느 정도 정상화되면서, 9월부터는 다시 정상 근무를 시작했다. 그동안 밀린 일들과 새로운 시즌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나는 그 전처럼 매일 새벽 산책을 할 수는 없었지만, 어떻게든 시간 만들어 꾸준히 산책을 했다. 


나는 음악을 듣지 않고 걷는 걸 좋아하는데, 조용한 새벽시간 내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만 들릴 때의 평화로움이 좋았다. 아무런 자극도 방해도 없는 곳에서 나와 단 둘이 걸어가며,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때로는 힘들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걸 버텼던 나 자신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그리고 앞으로의 내 빛나는 미래를 떠올리며 묵묵히 한발한발 걸어갔다. 



또 산책은 나에게 뜻밖의 기쁨을 선물하기도 했다. 나는 매일 다니던 길이 아니라 가보지 않았던 다른 길로도 산책을 했는데 그때마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풍경들과 새로운 친구(?)들이 나의 산책을 기쁨으로 채워주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매일 혼자 나갔던 산책을 어느 센가 남편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작은 '한걸음'이었다. 불안함을 안고 어두운 새벽 찬바람을 들이키며 내디뎠던 첫걸음을 나는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매일 아침 느꼈던 작은 성취감은 나의 하루를 더 긍정적으로 살 수 있게 해 주었고, 그 1년의 시간 동안 나는 더 건강해진 몸을 얻었다. 


벌써 2021년 1월의 반이 지나갔다, 새해의 계획과 다짐은 항상 크기만 한데, 막상 내가 하루하루 하고 있는 것들은 먼지보다도 하찮게 느껴질 질 때가 너무 많다. 하지만 침대 밑에 먼지가 어느새 큰 먼지 덩어리가 되어 있는 것처럼, 내 하루하루의 작은 노력이 모여 큰 기쁨이 되리라 믿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