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랜드. 미국이 911테러를 겪고 만든 드라마
미국에게 911테러는 어떤 의미일까? 미국은 중동을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은 복잡하고 어려운 중동지역의 싸움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드라마 홈랜드를 보다보면 이해가 된다.
홈랜드는 CIA 요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요원들은 중동지역에 파견돼 아주 위험하고 어려운 일들을 하고 있다. 특히 주인공 캐리는 사명감이 투철하다. 캐리뿐 아니라 그녀의 상사 사울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911테러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테러조직을 끝장내야한다는 사명감은 그 무엇보다 강하다.
캐리와 사울을 비롯한 CIA요원들은 말 그대로 워커홀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워라밸을 따지고 편한 것을 따지고 돈을 더 많이 주는 곳을 원한다. 그 이유는 이미 근로소득보다는 자본소득이 훨씬 큰 자산이 되기 때문이며 재테크 공부를 열심히 해야 자산을 모을 수 있지, 직장에 헌신해 남는 것이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홈랜드를 보면서 미국에 사는 CIA 요원들의 경제적 풍요로움은 재테크를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될만큼 풍요로운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긴 했다. 경제적인 문제는 드라마에서 언급하지 않는다. 이 드라마에서는 돈 때문에 사람들이 움직인 적은 (내 기억으로는) 없다. 주로 신념, 사랑, 종교 등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
그만큼 미국과 중동지역의 나라는 굉장히 다른 곳이다. 미국 군인이었던 브로디는 이라크에 파견됐다가 실종돼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됐지만 몇년 만에 극적으로 발견된다. 그는 곧 8년의 시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승리한 미국의 영웅이 된다. 하지만 캐리는 어떤 정보원으로부터 브로디가 전향해 이라크의 테러범이 됐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CIA에서는 캐리에게 그 말의 근거를 가져오라고 하는 한편 브로디는 점점 미국에서 중요하고 상징적인 인물이 되어가면서 정치적으로 입지를 다져간다.
브로디가 정치적으로 입지를 다져갈수록 CIA에서는 그를 의심하기 어려워지지만 캐리는 브로디를 스파이라고 믿고 그를 따라다니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굉장히 스릴이 넘치고 심장이 쫄깃해진다. 우리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들이 펼쳐진다. 브로디가 정말 스파이인지, 아닌지, 도대체 언제 밝혀지는 것인지 드라마는 오랫동안 알려주지 않는다.
드라마가 굉장히 재밌다고 느낀 것은 이들의 관계의 스릴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 더 거대한 흐름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동지역의 관계를 알게 된다는 점이다. 또 미국의 정치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CIA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 중동지역의 나라들은 어떤 믿음을 지니고 있어 죽음을 불사한 테러를 자행하는지, 미국의 대응은 어떠한지 알 수 있게 된다. 반면 개인은 작고 약한 존재로 묘사된다. 거대한 상황들 속에서 개인들은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극히 제한돼 있다.
브로디는 군인으로 일하다가 이라크에 끌려갔고 잡혔고 거기에서 죽거나 전향해야하는 선택에만 놓인다. 그 이후에도 계속 이라크를 따를 것인지 다시 미국에 잡혀 옥살이를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브로디가 숙고해 신념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저 죽겠느냐, 테러를 하더라도 살겠느냐 밖에 없는 것이었다.
캐리도 마찬가지다. 캐리가 알고 있는 정보(브로디는 스파이다)의 근거를 갖고 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지만 브로디를 이용하고 있는 미국의 정치상황은 그녀가 여유있게 일을 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녀는 쫓기거나, 하지만 또다시 911테러를 방치하게 되거나 아니면 CIA로부터 버림을 받아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개인의 무력감만이 드라마에선 답답하게 묘사된다.
개인은 무력하다. 브로디가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지까지 다 지켜보고 나면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진다. 브로디의 결말 앞에서 브로디는 어떤 사람이었지? 를 생각해본다면 사실 우리는 아는 것이 없다. 그의 과거도 현재도, 소망했던 미래도 나오지 않았으며 그의 감정도 그의 신념도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는 상황에 휩쓸려 그 안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거대한 국제관계 속에서 브로디의 가족까지 불행함에 처하게 된다.
캐리도 마찬가지다. 캐리는 자신의 사적인 시간과 공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일만 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자신의 애인관계를 이용해 일을 하고 제공할 수 있는 친밀감을 이용해 일을 하고 그 어떤 것을 제공하더라도 일에서 성공하려고 한다. 하지만 보상은 뿌듯함이 끝이고 위험이 더욱 크다. 캐리가 겪게 되는 수 많은 끔찍한 일들은 거대한 파도 속에 밀려가는 연약한 인간같다. 거대한 파도의 방향을 바꿔보려 애쓰는 작은 인간은 오히려 균형을 잃고 파도 속으로 고꾸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의 재미는 여기에 있다. 뭔가 사소한 개인들의 이야기를 보는것보다 스케일이 큰 얘기를 좋아한다면 이 드라마는 정말 재미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추천했다고 하는걸 보면 팩트를 기반으로 드라마를 만든 것 같다.
드라마가 시즌을 거듭할수록 같은 얘기는 반복되는것처럼 보인다. 미국과 중동지역의 거대한 싸움, 그들의 다른 신념의 부딪침은 그대로 이어진다. 사울은 처음에는 그들의 수장을 친미성향의 인물로 교체해 문화를 바꿀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나중에는 희망이 없다고 포기한다. 미국은 미국대로 잘 살 것이고 그들은 그들대로 잘 살게 두라는 방향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얘기하던 아메리카 퍼스트의 신조와 맞닿아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제 다른 국가들에게 신경쓰지 않겠다. 우리는 우리만 잘 살겠다!현재 미국이 보이는 행보가 드라마에도 보이는것일까?
홈랜드는 시즌이 매우 길다. 8까지 나왔다. 나는 브로디의 결말이 나온 시즌3까지 봤다. 시즌4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는데 나랑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국가들을 다루다보니 다소 지루해서 중도에 포기했다. 또 내 입장에서는 좋은 직장에서 워커홀릭처럼 살기만 해도 경제적으로 지장이 없는 그들을 보는 것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달까. 이것은 뭐 개인적인 열등감일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