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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잎 Feb 07. 2019

고양이가 없었던 설 연휴를 보낸 뒤..

자그마치 6일이다. 내게는 6일의 자유시간이 있었다. 어디론가 가야만 한다는 '휴가 강박증'을 안고서 호텔을 예약했다. 그래 호캉스를 해보자.


깔끔한 침실. 깔끔한 베게. 누리끼리하지도 않은 완벽한 흰색의 침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져있다. 머리카락 한올이 없는 깔끔한 침실에 누워있자니 상쾌하다.


내가 머문 호텔.

고양이는 생각도 안난다. 해야할 의무 따위는 아무것도 없다. 내게는. 방마저 내게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집에서는 방에 누워 있자면 이곳 저곳에서 요란한 소리를 낸다.


머리카락을 치워줘. 베게 커버를 빨아줘. 침대보를 바꿔줘. 고양이털을 치워줘. 양말 속옷을 빨아줘..


할 일이 잔뜩 쌓인 방에서 벗어나 있자니 마음이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은 깃털이다. 고양이는 생각도 안난다. 잘 지낼거야. 내 고양이는. 내가 밥이랑 물 잘 주라고 신신당부 했으니.


고양이는 매우 잘 지냈다.

나는 나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 자신을 깊숙히. 나는 누워서 핸드폰을 보다가 열심히 무언가를 메모한다. 나는 내 행동을 찬찬히 살핀다.


나는 무언가 생각이 나면 열심히 적는 인간이었어. 그런 뒤에는 그것을 바로 해치우지. 안그러면 숙제가 남은 것 같거든.


나는 며칠 동안을 나와 깊숙히 대화했다. 내가 어떤 마음이 드는지 어떤 사고의 회로로 결정을 내리는지.. 나와의 데이트가 지겨워졌을 때 쯤.. 집으로 돌아왔다.



내 불쌍한 아기 고양이는 나를 마중나와있다. 언제나처럼 내 앞에 얌전히. 나는 고양이를 꽉 껴안고 고양이의 털을 만진다. 정말 오랜만이다.


고양이를 처음 만나는 사람은 이런 느낌을 가지겠구나. 싶다. 이런 부드러운 털과 따뜻한 생명체. 아름다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저 모습. 고양이를 껴안고는 마구마구 쓰다듬는다.


내 손의 감각이 고양이를 잊어버린 것 같다. 고양이를 계속 기억하려고 나는 고양이를 계속 쓰다듬었다.


나를 만져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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