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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니Tini Sep 20. 2023

우린 우연히 만나 1

어학연수와 유럽여행 중 만난 친구들 이야기 

 그냥 친구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9개월, 런던에서 2개월 그리고 유럽 여행 약 2개월 동안 만난 사람들. 잠깐 스친 인연이었을지도 모를 사람들을 모두 다 친구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한번 더 보고 싶은 마음에 조심스레 친구라는 이름을 붙여봅니다. 


 우리가 한번 더 볼 수 있을까요. 



"혹시 괜찮으시면 제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나요?"


 약 2달 유럽여행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기대한 건 야경이었다. 유럽여행 중 여자 혼자 야경을 보는 일은 약간의 위험을 담보하는 모험이었지만 그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빛이 자아내는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그녀의 존재를 처음으로 눈치챈 건 주변 관광객들과 함께 신호등을 건널 때였다. 살짝 옆으로 빗겨 본 그녀는 동그란 금테 안경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초록색의 스커트를 고급스럽게 소화하고 있는, 어쩐지 우아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황홀하다. 

  지나가는 사람쯤으로 남을 수 있던 그녀와 다시 만난 건 다뉴브 강 근처였다. 이렇게 운이 좋을 수 있나 생각하며 열심히 야경 사진을 찍어대는 그녀에게 다가가 내 사진 좀 찍어달라고 말을 붙여보았다.


  아 참고로 여행지에서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싶다면 이거 하나 정도는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언제고 어디로 떠날지 모를 여행자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면 망설이지 않고 용기를 낼 것. 적어도 내가 본 여행자들은 여행자들과의 만남에 거리낌이 없었으니 거절당할 걱정일랑 잠시 접어두고. 


 그녀의 사진도 몇 장 찍어주고는 불빛에 반짝이는 다뉴브강을 등 뒤로 한 채 그녀와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토록 유럽여행을 애정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던 것 같다. 어쩌다 마주치게 되는 낯선 여행자들의 대화가 너무도 기대되기에.


  런던에서 수업 중 한 번은 혼자여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나왔다. 10명이 넘는 학생들 중 나와 담임선생님만 유일하게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왜? 혼자면 이렇게 언제나 둘이 될 수 있는데.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갈지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 우연한 닮음에 기뻐하고 자연한 다름을 이해할 수 있는데.  


"어디서 오시는 길이에요?"

"여행 중 이신가요?"


  베를린 출신의 그녀는 런던에서 2년 간 공부를 했으며 부다페스트는 오케스트라 공연 일정으로 방문하게 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친구 결혼식 차 일행보다 하루 일찍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는데 친구가 안타까운 이유로 파혼이 되어 오늘 혼자 여행을 다니는 중이라고 털털한 웃음을 내비쳤다.


 한국에서 왔고 런던에서 잠깐 어학연수를 했으며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역사적으로 감명이 깊었다고 말하니 웃으며 자기도 런던을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던 그녀는 이번 가을, 서울에서 공연이 있다는 언질을 주었다. 갑자기 찾아온 운명 같은 발언에 말도 안돼를 연발하며 꼭 공연을 보러 가겠다고 약속했다. 


"근데 바이올린이 힘들어서 관두고 싶었던 적은 없어?"

"힘들었지. 부모님께서 12살이 지나면 관둘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셨는데 그때 되니까 포기하고 싶지 않더라. 정말 속은 거지."


 우아한 분위기의 그녀와의 대화는 상상 이상으로 흥미로웠고 우리는 다음날의 만남을 기약했다.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 그녀와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 나, 왓츠앱을 쓰지 않는 그녀와 텔레그램을 쓰지 않는 나, 우리는 결국 서로의 번호를 주고받았다.


 다음 날이 되어 열렬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녀와 함께 성당으로 향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교황님께서 부다페스트를 방문한 주간으로 예배가 진행되지 않았다. 아쉽게 무산된 예배에 각자 기도를 올리고 돌아가기로 했다. 그녀는 이곳의 특별한 전통 예배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쉽다면서 내게 천주교에 대해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일평생 크리스천으로 살아온 내게 천주교에 대한 설명을 그것도 영어로 듣는다는 생경한 일이었다. 그녀의 유창한 영어를 과연 내가 알아듣고는 있는 건가 의심 의심하며 열정적인 설명을 새겨 들었다. 


  짧은 점심을 함께하기 위해 비건 식당으로 향했다. 고트치즈 샐러드를 정말 잘하는 집이 있어 그것과 헝가리식 피자인 랑고시 그리고 그녀가 주문한 단호박 수프까지 맛있는 점심을 함께했다. 환경을 생각해 비건이 되었다는 그녀에게 한국의 어떤 음식을 소개해줄지가 요즘 나의 고민이라면 고민이다. 

그녀의 선물

 밥까지 사 준 그녀와 한국에서 꼭 다시 보자는 아쉬운 인사와 함께 작별했다. 그녀는 점심 한 끼 말고도 언제든 기도 하고 싶어질 때 보라며 묵주를 남겨주었다. 다정한 마음에 면역도 없이 그녀와 얼른 다시 보고 싶어지는 나이다.


  "바이올린 연주는 정말 힘든데 관객들의 반응이 온전히 느껴지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 무대가 재밌고 즐거워."

 "다음에 꼭 다시 한국에서 보자."


 나의 짧은 영어로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와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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