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니Tini Sep 21. 2023

우린 우연히 만나 2

어학연수와 유럽여행 중 만난 친구들 이야기

 "DO YOU SPEAK ENGLISH?"


 대문자 그대로 라이프치히 공항에서 냅다 외쳐버린 말. 고개를 끄덕이는 아저씨를 보자마자 오늘 처음 만난 당신이지만 너무 그리웠다고 고백해 버렸다.


 영어 할 줄 아신다고요?

 진짜 제발 저랑 말동무 좀 해주세요.



  런던에서 7주간의 짧은 어학연수 중 운이 좋게 친구 하나가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었다.


 11개월 어학연수지를 오로지 해리포터를 이유로 런던을 선택할 뻔한 나와 죽어도 한 번은 해리포터 스튜디오를 가봐야겠다는 친구의 열망으로 우리의 짧은 여행은 내가 머물던 런던과 친구가 머물던 바이마르로 결정되었다.


 런던에 살 당시 학원생들 6명이서 한 스튜디오에 살았었는데 돈을 충분히 많이 지불함에도 불구하고 미친 월세에 독일에서 날아온 친구가 잘 공간이라고는 거실의 작은 소파 하나뿐이었다.


 거지 같은 청춘 아니겠냐며 내 롱패딩을 빌려 입고 잤던 친구에게 아직도 고마운 마음이다. 롱패딩에 알맞았던 그녀의 소중한 팔과 다리에도.


버터비어 아이스크림을 추천한다

 감동의 해리포터를 뒤로 하고 베를린을 거쳐 바이마르로 떠나는 길에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다. 독일은 생각보다 아날로그였던 것이다. 정말 생각보다 더.


 "아니 지하철표에 도장을 찍는다고?"

 "와이파이를 한국에서 가져와서 설치했다고?"

 "헐 나 유로 없는데 파운드..."

 "카드 결제가 안돼서 현금 뽑으러 간다고?"


 이게 다 독일에 사전 지식 없던 멍청한 내가 반 독일인이 된 똑똑한 친구에게 5분마다 건넸던 질문들이었다. 신뢰와 신용을 중시하는 철저한 독일인들이라더니. 아 그리고 뉴욕과 런던과는 달리 누구 하나 무단횡단도 안 하더라.


 한 가지 더, 어학원에서 만났던 독일 친구들은 꽤나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기 때문에 몰랐는데 바이마르에서의 언어의 장벽은 상당히 높았다. 독어 없이 독일에서 살아남기는 힘들 것 같았다.


 "너네 근데 독어로 대화해야 되는 거 아니냐?"

 "근데 너무 어려워서."


 어쩌다 만난 친구네 학교 기숙사의 인도인 친구들도 이미 독일에 1년을 살았지만 독어는 여전히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 겨우 독일의 인사말과 고마워, 사랑해 정도만 아는 내게 바이마르 여행은 친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


 아니 근데 잠깐만 안녕, 고마워, 사랑해 이 정도면 어디서든 살아남지 않을까?


바이마르

  바이마르는 독일 튀링겐주에 있는 문화도시로 괴테와 쉴러가 머물렀으며 괴테 국립박물관·실러관 등의 문화시설, 대학 등의 볼거리가 있는 도시였다. 유럽 같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바이마르는 조용함과 아늑함에서 오는 평온함이 매력적인 도시였다.


 독일에서 런던으로 돌아가는 마지막날, 잠깐 들른 베이커리에서 꽤나 큰 좌절을 경험하고야 말았다.


 독어도 안돼, 번역기도 이상해, 현금도 없어.


 카드 결제가 되냐는 의미가 담긴 번역기의 화면을 들이댄 채 고갯짓과 몸짓으로 이어지던 대화들. 겨우 사장님의 아들뻘로 보이는 남자가 와서는 짧은 영어로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고 말해주었다. 그의 도움에 정말 고마울 수가 없었다.


 1유로짜리 빵 하나 못 사고 돌아오는 길에 독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안타까움이 밀려들었다. 더불어 독일 석사 유학의 꿈을 조금이라도 가졌던 사람으로 독일에 살려면 독어를 무조건 배워야 한다는 현실감까지.


 그렇다. 실로 1유로짜리 빵은 어마무시한 것이었다.


 고마운 친구와의 작별인사 후 도착한 라이프치히 공항에서 마주한 건 적막과도 같은 조용함이었다. 어딜 가도 들려오는 말소리는 대부분 독어였기 때문에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런던의 악센트가 자꾸만 그리워지는 찰나였다.


 "DO YOU SPEAK ENGLISH?"


 티켓 발권을 기다리며 뒤에 서 있던 후드집업의 사내. 오늘 여기서 만나기로 한 사람은 이 아저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 카운터에서 한번, 비행기를 기다리며 두 번, 비행기 좌석까지 옆으로 바꿔가며 세 번의 만남과 서너 시간은 거뜬히 넘긴 대화를 했다.


 독일 태생의 그는 어린 시절 미국에서의 유학을 이후 현재는 런던에서 살고 있는 예술가였다. 그림으로 보여주는 게 더 빠를 일이지만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고전책 표지를 디자인하는 일을 하고 계셨다.


 "무슨 일 하세요?"

 "비주얼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책 표지 조각하고 디자인하는 일을 한다네"


 "어떻게 그 일을 시작하셨어요?"

 "공부를 하면서 취미로 하고 있었는데 일이 들어오면서 전업이 되었지."


 세상이 감추고 있는 여러 겹의 비밀 중 한 꺼풀만 펼쳐낼 수 있다면 언제나 가장 궁금해지는 것은 어떤 삶을 살아야 될지 하는 질문의 대한 답이다.


 어떤 삶을 살아야 되는지, 어떤 꿈으로 살아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어떤 사람들과 만날 수 있을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어떤 삶이 후회 없을지.


그러니까 나는 좀 잘 살고 있는지.


  "인생의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없으세요?"

  "없지. 난 후회되는 순간도 다 내 인생이었어."


 동독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냈다던 그의 경험에 친구와 함께 들렀던 베를린 장벽 기념관에서의 영상이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열기구를 타고 서독으로 넘어오던 사람들, 부모님을 초대할 수 있었던 결혼식을 올리던 서독의 젊은 부부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 서럽도록 울며 미친 듯이 행복해하던 사람들.


"그때 진짜 열기구를 띄운 거예요?"

"한국은 좀 어때? 북한이랑은 통일이 될 것 같아?"


 우리는 런던의 미친 물가와 미국의 기름진 식문화와 독일의 아날로그함을 나누다가 서로의 꿈과 인생들과 경험들을 나누며 런던 상공에서 누구보다 수다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걱정 마, 나도 못 알아들어."


 런던에 도착했다는 신호음과 함께 흘러나온 기장님의방송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심각해지던 참이었다.


 런던에 몇십 년 산 자기도 이건 못 알아들으니 걱정 말라는 그의 웃음이 내겐 위로가 되었다.


 런던 중심부에 살던 나와 중심부보다 살짝 먼 북쪽에 살던 아저씨는 공항에서 가벼운 포옹으로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눴다.


 SNS 아이디를 공유하는 건 잊지 않았다.


 "너 QR코드 할 줄 알아?"

 "헐 저 이거 할 줄 몰라요."


 역시 어른들에겐 배울 게 많다.


  마지막으로 도넛을 사랑한다는 내게 아저씨가 추천해준 도넛가게를 가보지 못한 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쉬움은 두번째 만남을 불러일으키리라 믿으며 다음 기회를 기다려본다.


도넛가게

 누군가 런던 현지인 추천 도넛가게가 필요하다면 쓸모 있으리라 믿으며


 

작가의 이전글 우린 우연히 만나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