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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니Tini Oct 10. 2023

우린 우연히 만나 5

어학연수와 유럽여행 중 만난 친구들

 외국인들과 이야기 중 더 이상 말할 거리가 없거나 지루해진다 싶을 때면 슬며시 어디선가 종이와 펜을 가져오게 된다.


 ㄱ,ㄴ,ㄷ,ㄹ,ㅁ•••

ㅏ, ㅔ, ㅣ, ㅗ , ㅜ •••


 낯선이 들에게 전하는 소소한 한글 수업


 나고 자라면서 평생 써 온 문자임에도 낯선 영어로   설명되는 한글은 입속에서부터 몇 번이고 생경해진다.

 

 세종대왕님이 저 멀리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 앉아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 지 모른다. 릴까지 날아오실 여권은 없으시겠지.


 부족한 설명들에 과연 잘 알아들었을까 하는 고민도 잠시 알파벳과 판이하게 다른 문자는 낯선 이의 시선을 사로 잡기에 충분한 새로움이 된다.


 “파타마, 이게 맞아?”

 “네. 맞아요!”


 릴의 한 호스텔에서 만나게 된 파타마는 50대로 추정되는 여인으로 모로코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프랑스로 넘어와 남편을 만나고 최근 20년이 넘는 결혼생활을 끝냈다. 두 아이를 무척이나 그리워하던 그녀는 안타깝게도 이혼 소송에 패배하고 임시 거처를 이유로 호스텔에 머무는 중이었다.


 다행히 최근 닿은 연락 상으로 훨씬 괜찮아졌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곧이어 그녀는 내게도 잘 지내냐는 안부를 불어로 보내왔다.


 Merci밖에 모르는데 괜찮았냐고?

 요즘은 번역기가 너무나 잘되어있다.


 파리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인 릴에서 이틀간 머물렀다. 연금 개혁으로 인해 시위가 한창이던 파리를 혼자 갈 자신이 없었다. 마침 한국에서 오는 동생이 유럽여행 중반에 잠시 합류하기로 했고 우리는 에펠탑이 빗겨 보이는 호텔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릴의 모습
릴의 성당

 릴은 이전 편에 소개된 뉴욕에서 만난 피비와 샌디에이고에서 만난 톰이 사는 도시로 파리에 비해서는 소박했지만 비할 것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였다.


 극장 앞에서 캔버스를 일렬로 세우고 데생을 하던 학생들, 조금은 무서웠지만 연금 개혁 반대를 위해 투쟁하던 사람들, 광장에서 서로를 만나기로 한 듯 누군가를 기다리던 사람들.


 그들처럼 광장 앞에서 샌디에이고에서 만난 톰을 기다렸다. 오랜만에 만난 톰은 여전히 큰 키에 잘생긴 얼굴이 멋있는 프랑스 남자였다. 더불어 샌디에이고에서 누누이 말했던 것처럼 소방관이 된 모습이었다.


 “네 꿈이 뭔지 물어봐도 돼?”

 “난 소방관이 될 거야.”


 확신에 가득 찬 모습에 응원을 가득 불어넣어 주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는 화재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는 어엿한 소방관이 되어있었다.


 꿈이 뭔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를 매번 고민하는 나와는 다르게 꿈을 이룬 그에게서는 여유와 자신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접한 달팽이 요리와 맥주에 졸인 스테이크를 먹으며 푸아그라를 빵 위에 얹어먹는 그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경찰관이었던 아빠가 슈퍼맨 같았다며 그도 아주 어릴 적부터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밥 먹다가도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5초 만에 달려 나가야 한다고, 24시간 근무를 하고 이틀 쉬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견딘다고.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슬며시 기분 좋은 웃음이 삐져나왔다. 그 어떤 꿈이라도 매일을 소원하고 하루를 어제처럼 쌓아나가는 이들의 이야기에 서툰 꿈의 여정가는 위로 를 받아버렸다.


 “오늘 만난 거야? 친구 잘생겼네. “

 ”그렇죠? 아 달팽이 요리도 먹어봤어요. “


 호스텔로 돌아와 어두웠던 불을 켜니 1층 침대에 우두커니 누워있던 파타마와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는 영어와 불어를 섞어가며 서로의 하루에 대해 나누었다. 번역기가 있어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둘 다 했던 것 같다.


 ”점심은 뭐 드셨어요? “

 ”지원 단체에서 점심을 줘서 거기서 먹었지. “


 알아들은 바로는 보호단체 같은 곳에서 무료 급식 사업을 하는 모양이었다. 저녁에 대해 물어보려다 그저 내게 초콜릿우유를 나눠 준 그녀의 점심이 맛있었기를 바랐다.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해요?”

 “잘생긴 남자를 만나야 돼.”


 그녀의 망설임 없는 단호한 답변에 깔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편 복이 지지리도 없어 고생했다는 그녀에게서 기대한 답은 외모가 아니었다. 최고의 남편감이 좀 더 다정하고 격이 좋은 남자가 아니라 잘생긴 남자였다니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모로코 여행에 대해서도 추천해 줬는데 쿠스쿠스란 음식을 꼭 먹어봐야 한다고 했다. 릴에서 머물다가 동생이 있는 벨기에로 넘어갈 거라던 그녀는 쿠스쿠스를 먹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양육권은 남편이 가지고 있다고요?”

 “응. 아이들을 한 달에 딱 두 시간 볼 수 있어.”

 “진짜 많이 보고 싶겠어요.”

 “진짜 많이 보고 싶지.”


 그녀의 꿈이 무엇인지를 물어봤던가. 아마도 아이들을 한 시간이라도 더 보는 것이라고, 두 아이가 아빠랑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게 내 이름이라고?”

 “네. 예쁘죠.”


 파타마.


 받침하나 없이 같은 모음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이름은 어딘가 모르게 다부진 느낌이 든다고 ‘하지마, 보지마, 웃지마 ’ 같이 마로 끝나는 말 중엔 부정형 명령어가 많다는 말을 했었나.


 아프지마, 다치지마, 울지마.


 이름 말고도 옆에 적어주고 싶었던 말이 많았는데 그저 행복하라고 적어 둔 엉망인 필체를 바라보는 그녀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조심히 가고 도착하면 연락해!”


 릴을 지나 파리 디즈니랜드와 몽마르뜨 언덕에서 찍은 사진들을 그녀에게 보내주었다. 동생을 잘 만나 행복한 여행 중이라고 추천해 준 파리 여행지에 고맙다는 메시지도 함께.  


 바꾼 번호로 보낸 연락에 아직까지 답이 없는 그녀가 종종 궁금해지는 나날들이다. 우리가 만난 봄을 지나 여름이 가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가을이 다가오는데 그녀는 아이들을 몇 번이나 만났을까, 동생과 쿠스쿠스는 여전히 맛있게 먹고 있을까 하고.


 그녀는 보지 못할 글에 아이들을 자주 만나고 싶다는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본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마음을 다해.


 P.S. 파타마, 못 만날 거라는 말은 하지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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