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기도 아는 우정1

친해졌다.

by 티니Tini

그녀에 대한 고찰 1.


그날, 나는 1등이었고 그녀는 2등이었다. 해외로 나가고 싶어 넣었던 해외사무소 인턴 서류가 붙었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은 다니고 있던 회사 건물에서 치러졌고, 지리를너무 잘 아는 탓에 면접장에 5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대회의실 앞 소파에서, 면접 예상 질문을 훑어보던 중이었다. 정장치마를 맞춰 입은 한 여성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엄청 일찍 오셨네 생각했다.

그녀가 두 번째로 도착한 면접자였다. 면접 일정이 붙은 벽을 한참이나 보고 있길래, 20분 뒤에나 들어갈 수 있다고 소파에 앉아있으시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그날이 지금은 하루가 머다 하고 연락하는 파견 동기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녀를 향한 내 첫 감상은, ‘오 면접 프리패스상인데’였다. 힘 있는 눈썹, 동그란 눈, 또렷한 눈빛은 면접관들이 좋아할 인상으로 충분했다.


순조롭게 면접을 봤고 합격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에 대한 인상은 흐릿해졌다. 그 사이에 신체검사까지 모두 통과하여 최종 합격을 했다.


파견 전 일주일정도 되는 국내 교육이 시작되는 직전까지 이전 회사를 다녔고 국내교육에서 그녀와는 같은 조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녀와 키 큰 남자 동기까지 세 명이서 같은 나라로 파견가게 되었다.


조금 더 알게 된 그녀는 가만히 있으면 조용하고, 은근히 낯을 가리는 편이었다. 먼저 다가와 말을 거는 편은 아니었지만 질문이 날아오면 누구보다 성실히 답해주었고, 맡은 임무들은 나서서 열심히 해내는 편이었다.


그리고 팀 과제 당시 그녀가 피피티를 만들었는데, 온갖 단축키를 쓰며 작업하는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진짜 빠르고, 급했다.


파견지에 도착하여, 첫 이 주 정도 호텔에서 임시거주를 하였다. 그녀와 점심, 저녁을 같이 먹으며 사회, 정치, 친구, 문화 등 흐름을 알 수 없는 무거운 대화들을 해댔다.


그때는 몰랐다. 일 년이 지난 지금, 다 틀린 맞춤법으로 4시간 시차를 이겨가며 진정으로 아무런 말이나 하는 사이가 될 줄은.

언제 그녀와 친해졌다고 느꼈더라.

선임인턴이 둘이 채팅 좀 그만하고 일이나 하라는 말에 아니, 우리 일하고 있는데 억울하다고 그녀에게 채팅했던 날이었을까.


평일 내내 일하면서 보는데 주말에도 보고 있을 때였을까. 누구 하나 출장 가면 심심해 죽으려고 했던 날들이었을까.


그녀와의 이런 이야기들을 세상에 내놓고 싶어지는 게 웃기다 싶고 보고 싶은가 보다 싶다. 요란한 우정이고, 그녀가 이 요란함을 좋아할 것도 안다.


우리의 파견 생활을 동물의 숲 세계관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정말 일하는 사람이 같이 노는 사람이고 노는 사람이 같이 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까지 해도 될지가 고민이었고 그녀와의 대화에서도 약간의 벽을 두었던 날들이 있었다.

아직도 해외 파견지에서의 공과 사에 대한 정답은 잘 모르겠지만, 친해지고도 사무실에서만큼은 ‘여기는 회사입니다.’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어쩌다 그녀가 사무실에서 팔짱 같은 거라도 끼면 놀라며 멀어졌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다른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썰이 되었다. 이 정도면 복사기도 아는 우정이라고.


그녀와 처음 만난 면접날, 그녀는 구두를 반쯤 벗고 면접을 봤다고 했다. 빌려 신은 구두가 너무 작아 도저히 발을 구겨 넣을 수가 없었다는 약간의 반항스러움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불안을 두고 꿈이라 말하며 살아가고 있다. 인턴 이후 또 다른 타지에서 일하는 나와 지금은 한국에서 타지의 사업을 담당하는 그녀. 우리는 매일이고 다음에 또 같은 곳으로 파견 가자는 말을 반복한다.


내가 또 먼저 나와 버려서 그녀가 차가운 서울에서 혼자 잘 지낼지 걱정했지만, 타지에 두고 온 친구들이 하나둘씩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서울에도 그녀와 함께 청계천을 걸어 줄 친구가 많아 다행이다. 그녀가 나와도 안양천을 걷고 싶다고 한 게 조금 감동이었다고 하면 또 좋아하겠지, 부끄럽다.


얼른 그녀도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또 한국의 차가움과 익숙한 그리움을 몇 시간이고 떠들고 싶다. 그리고 타지의 낯섦과 외로움을 함께 나누고 싶다.


그녀가 찌대부개나 또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녀가 만든 찌대부개라면, 어디든 1등으로 달려갈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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