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al the show 9

토요일의 원

by 티니Tini


토요일의 원


원은 스스로를 여기저기 섞여가는 호기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공부도, 요리도, 책도, 여행도 그리고 사랑도. 빠지면 양말 정도만 축축해지는 웅덩이들을 여럿 만들며 살아갔다.


연을 떠나온 원의 지난 세 달은 단조로웠다. 하루는 책을 읽었다가 하루는 청소를 했다가, 또 어떤 날은 종일 협재 해변을 거닐었다. 그리고 꼭 토요일이면 무언가를 구워냈다. 지난주에는 바게트를 구워냈고, 오늘은 우유식빵을 반죽하는 원이었다.

원의 첫 베이킹은 친구 따라 만들어 본 달달한 마들렌이었다. 밀가루, 설탕, 버터, 계란 정도만 있으면 얼마 안 가 볼록하고 배꼽을 내는 마들렌이 장했다.


오븐의 뜨거운 열기 아래서 퍼져도 봤다가, 커져도 봤다가. 눈대중으로 맞춰낸 마들렌의 모양은 제각각이었지만 그래도 제법 조개 틀에서는 마들렌의 모양을 내었다.

마들렌이 프랑스에서 왔다는 이야기는 연에게서 들었다.


18세기 프랑스 로렌지방의 한 공작의 연회 당시 디저트를 만들 파티쉬에가 도망갔고, 마들렌 폴미에라는 하녀가 급하게 반죽을 조개틀에 넣고 구워냈다는 이야기였다.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라면서 연은 하녀 이름이 “엠마”였다면 지금 원의 손에 들린 마들렌은 엠마가 되었을까라는 말을 덧붙였다.


원은 연과 만나면서 빵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밀가루를 체치고 물과 섞어 넣은 이스트를 조금씩 부어가며 반죽을 만드는 일은 디저트를 만드는 것보다 힘이 더 많이 드는 일이었다.


서늘한 곳에서 반죽을 완성하면, 동그란 반죽을 틀 안에 넣고 랩으로 감싸서는 이불속에 넣어두었다.

디저트와는 다르게 빵을 만들 때는 발효의 과정이 필요했는데, 원은 늘 이불을 고집했다.


약간의 열기정도만 오른 오븐에 살짝 넣어두기도 반죽을 넣어두는데, 원은 이불속에 반죽을 넣어두고는 전기장판을 틀어두었다. 중간중간 이불을 들춰 반죽을 돌보는 일은 원의 재미였다.

연의 집에 일찍 도착해 반죽을 재워두고 그 사이 산책을 다녀오는 건 둘 사이의 새로운 재미가 되었다. 베이글과 발라먹을 크림치즈를 사 오기도 하고 새로운 스프레드에 도전해보기도 했다.

연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 산책길에는 벚나무가 많았다. 봄이면 벚꽃이 휘날렸고 어떻게 알고 온 건지 모를 사람들로 거리가 붐볐다. 길을 지나가기 위해 가끔은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놓아야 했다.

“죄송한데 혹시 저희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실 수 있어요?”

그 길을 걷다 누군가의 사진을 찍어줄 일이 생기면 연은 늘 원을 돌아봤다. 사진을 찍어주고 핸드폰을 돌려주면 가끔 되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두 분도 찍어드릴까요?


원은 연을 돌아봤고 연은 사람 많으니 집으로 가자는 눈짓을 해 보였다. 원은 감사하다고 말하고는 연의 손을 맞잡았다.

그 길이 좁다는 걸 알게 된 이후, 연은 십 분 정도가 더 걸리더라도 넓은 산책길로 돌아갔다. 흐드러지는 벚꽃의 장면은 없었지만, 두 사람이 넉넉히 걸을 정도의 평안함이 있었다.

베이글은 2차 발효까지 끝내고 나면 쫀득함을 더해주기 위해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주어야 했다. 뜨거우니 데치는 건 연이, 다시 오븐에 넣기 전에 모양을 잡는 것은 원이 했다.

갓 구운 베이글에 크림치즈까지 발라먹으면 반나절 하루가 금세 흘렀다. 그렇게 어떤 하루는 베이글 하나 해 먹은 것으로 끝이 났다.


아마도 원이 눈치채기로는, 연은 그런 하루를 언젠가부터 길게만 느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디저트를 더 고집하기 시작했으니까.

원은 다시 디저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오븐의 뜨거운 열기 안에서 부풀어 오르는 반죽을 바라보는 일은 쉽게 지겨워지지 않았다. 달달한 마들렌을 차와 함께 곁들여 먹는 것으로 둘은 주말을 마무리했다.


2차 발효가 끝난 우유식빵을 오븐에 넣어둔 원은 그동안 크림치즈를 사 오기로 했다. 제주도에 왔으니 한라봉 잼을 먹어야 될지 고민하며 해변가를 거닐었다.


여름의 제주는 사람이 많았다.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모두 지나쳤다.


결국 크림치즈와 한라봉 잼을 둘 다 사서 돌아오는 길에도 많은 사람들을 지나쳤다. 연과도 왔던 그때도 여름날이었는데 생각을 하며, 또 연을 떠올렸다.

“원아 생일 축하해.” 하고 새벽에 온 문자까지도.

지난 두 달간 별다른 연락이 없던 연이었다. 연락을 기대했던 생일이었기도, 아니었기도 한 날이었다. 아무런 답장을 하지 못했다.

새벽부터 공을 들인 우유식빵에 크림치즈와 한라봉 잼을 발라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예상보다 발효가 오래 되었는지 퍼석해진 우유식빵에 목이 막혔다.


우유도 다 떨어졌는데, 어쩔 수 없이 찬물을 들이켰다.


우유식빵은 조금 덜 발효할 것, 다음 주에 다시 만들어봐야지 하는 원의 토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