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해가 어느정도 유지된 후에야 내게 조울 전조증상을 구분할 기준이 생겼다.
혼재성, 불쾌성 조증이 오는 내게 그 전조증상은 ‘내면의 괴로움’이었다.
혼재성 조증의 전조는 우울·예민함이 동시에 존재해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평소에는 생각을 정제하고 정제해서 입밖으로 꺼내지만, 조증이 오면 내 말과 행동이 평소처럼 정 제되지 않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는 불쾌한 자각이 들었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한다는 감각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울증 전조증상이 오면 우울한건 당연했고, 어디에 있던 이 자리에서 그냥 사라지고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게 안된다면 책상 아래로라도 숨고싶은 마음이었다.
업무를 하다가 ‘아차’하고 놓칠뻔하는 일들이 생겼다.
물론 실수를 하기 전에 알아차렸기 때문에 아무도 내가 이상해진걸 알지 못했다.
하지만 스스로는 방금 내가 실수할 뻔 했다는 감각이 있었기 때문에 기능저하를 확실하게 느꼈다.
관해가 아무리 길어져도, 울증은 그 전조 단계에서조차 기능저하를 유발했다.
10살때부터 아주 오랜기간을 나는 고통속에 살았다.
어렸을때부터 고통에 단련된 덕분일까, 관해기 이후 나는 사소한 일로는 심적 고통을 잘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정신질환자는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는데, 나는 스트레스를 느끼는 부분이 마취총을 맞은 것처럼 둔 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되려 그렇게 둔하기때문에 어쩌다 받는 스트레스에 더 예민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이것이 조울 재발로 이어지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차단해야 했다.
나에게는 그 차단제가 자나팜 0.125mg이었다.
의사선생님께서 필요시로 처방해주신 약이었다.
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잘 지내는 듯 보이나, 그것은 사회적 가면에 불과했다.
누군가에게 퇴근 후의 시간을 할애하고싶지는 않다.
한번은 회사 언니가 일주일 내내 퇴근 후 같이 놀자고 했다.
심장이 조여올만큼 스트레스가 극심했고, 폭발할 것만 같은 기분에 자나팜을 한알 먹었다.
약을 먹은 후 스트레스는 수그러들었다.
단발성 스트레스에서 적절한 필요시 약 개입은 조울증상 발현을 차단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방법 이다.
하지만 반면에 동일한 강도의 스트레스라도 자나팜으로도 안정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필요시 자나팜을 추가투약했음에도 자나팜이 듣지 않으면 나는 즉시 병원에 갔다.
그것은 단발성 스트레스가 아니라 조울 재발의 진입 단계였기 때문이다.
진입단계에서 잡지 않으면, 조울 재발을 방어하는데에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조울증 진입을 막기위한 자나팜은 2달에 한알도 먹지 않을때가 더 많다.
하지만 자나팜을 먹어야할만큼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자나팜은 내게 꽤 즉각적이고 확실한 조울 재발 방지 예방책이자 전조진입 확인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