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울증이 왔을 때, 나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정신과를 찾았다.
우울증인줄 알고 찾아간 정신과에서는 초진때 나에게 병원을 소개해줄테니 입원을 하라고 권유했다.
우울증은 초진부터 입원권유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만큼 내 우울이 일반적 수준을 넘어서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입원권유를 거부하고, 외래진료로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우울증 약을 먹다가 극조증으로 치달았을 때, 나는 내 의지로 병원을 옮겼다.
병원을 옮길때도 역시나 나는 우울했다.
하지만 우울의 양상이 처음 정신과를 내방했을때와는 전혀 다르다는걸 인지하고 있었다.
증상의 양상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약만 반복 처방하는 첫 병원에 대한 신뢰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았다.
옮긴 병원에서 초진시 조울증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초진에서부터 입원권유를 받았다.
하지만 역시나 나는 입원을 하지 않았다.
외래진료로 치료를 받았지만 다행히도 극조증은 빠르게 잡혔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내 감정을 표출의 대상보다는 분석하고 억눌러야하는 대상으로 생각했다.
조울증 진단을 받던 시기의 나는 내면의 폭력성이 굉장히 심한 상태였다.
내겐 그 폭력성까지도 분석하고 억눌러야하는 대상이었다.
나는 그 극조증의 시기에도 적어도 어떤게 정상이고, 비정상인지를 판단할 능력은 살아있었다.
내가 가진 감정이나 사고가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왜곡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다.
그래서 입원은 하지 않았다.
가장 위험했던 시기에도 약 없이 비이성적인 충동들의 조절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기억은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인지, 아니면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인지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하나 기억나는건, 내 병증의 양상은 계속 변화했다.
그때의 나는 의사선생님이 묻는 것에만 답을 하는 상담에 적극적이지 않은 환자였다.
나는 상담에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의사선생님은 내가 드리는 최소한의 정보 속에서도 증상의 변화를 세심히 포착해 약을 조정해주셨다.
그 섬세함이 신뢰로 이어졌고, 치료를 이어가는 데 큰 기반이 되었다.
조정되는 약들을 보며 ‘의사선생님이 내 증상을 캐치하고 있구나.’라는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조울증상이 가라앉지 않음에도 병원을 옮기지 않고 계속하여 진료를 볼 수 있었다.
남편이라는 안정적이고 일관된 지지자가 생기자, 내 정서적 긴장이 현저히 줄었다.
그 변화는 내 병증에도 직접적인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
약물만으로는 회복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그 이후로 눈에 띄게 안정되기 시작했다.
증상이 가라앉고 난 이후에야 병원에서 제대로 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그 상담은 거의 인지행동치료와 병식교육, 대인관계를 할 때 평범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대처방법같은 내용들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자기 성찰력과 통제력, 꾸준한 약물 복용 습관, 의사선생님과의 상담, 그리고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의 존재.
이 모든것들이 맞물려, 나는 입원이라는 강도 높은 개입 없이도 관해에 이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