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울증

by 팅커벨

비교적 울증은 또렷이 기억한다.


2011년 가을, 심각한 울증이 처음으로 나를 찾아왔다.

자취방에 홀로 앉아 술과 담배를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일을 할 수 없었다.

눈물이 계속 났다.


처음으로 정신과에 가보자고 용기를 냈지만, 초진 예약이 두달이 걸린다는 말에 포기했다.

내가 당장 죽을 것 같은건 오늘이었다.

두달뒤의 나 또한 이렇게 살기 힘들만큼의 우울을 가지고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가진돈을 갉아먹다가, 더 이상 버틸 돈이 없을 때 부모님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돌려받은 보증금으로 몇 달을 더 술을 마시며 보냈다.


2012년 가을, 나를 처음으로 정신과로 이끈 울증이었을때의 내 우울은 굉장히 심했다.

기능저하까지 동반된 우울이었다.

핸드폰을 에어플레인 모드로 돌려놓고 와이파이만 연결해두었다.

그 누구의 연락도 받고싶지 않았다.

내 안의 고통만 감당하기에도 너무 벅차서, 타인과의 소통을 할 기운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울증이 찾아올때면 과거의 모든 상처들이 너무 생생해 다시금 내 마음에 상처를 냈다.

그 고통스러운 기억이 마치 오늘 일어난 일인 것 같아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인지능력 저하로 글이 읽히지도 않았다.

익명 SNS에 우울과 고통을 토로하는 글을 올렸다.

출력은 되지만 입력은 되지 않았다.

어렸을때부터 고통을 글을 쓰며 토해냈는데, 이때는 내가 쓴 글조차 퇴고를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 고통과 우울함에 대한 도피로 잠을 선택했다.

그렇게 우울증 약을 먹으며 잠만잤다.

우울증 약이 들어 활동할 수 있게 됐을 즈음에는, 원인을 알지 못한 잠수로 내 인간관계의 일부가 파탄나있었다.


2015년 가을, 조증이 끝나갈 무렵 친구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또 다시 울증이 찾아왔다.

이때는 고통을 토로하고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죽고싶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그저 나와 싸우고, 내가 그 아이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버린 그 친구가 계속 생각났고, 그래서 원망스러웠다.

물론 나와의 다툼만 가지고 세상을 떠나진 않았을거다.

가정사가 복잡한 친구였으니까.

하지만 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병원에 가지 않으며 우울을 토로하는 사람들은 죽을만큼 힘든게 아니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틀린 생각이었다.

그 친구는 병원에 한번도 가본적 없이, 그렇게 돌연 세상을 떠났다.

방 안에 가만히 누워 물도 제대로 마시지 않으며 빌고 빈건 단 하나였다.

내일 눈뜨지 않게 해주세요.

역시나 잠으로 현실에서 도피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누워있는 나를 보고 집안일이라곤 하지 않던 아빠가 음식을 했다.

무언가를 만들었으니 먹어보라는 말에 나는 먹지 않겠다고 했다.

며칠을 그렇게 거절하니 아빠가 사람이 이렇게 정성을 보이면 한입은 먹어봐야하는거 아니냐고 화를 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아무것도 먹고싶지 않았다.


2016년 봄, 울증이 찾아왔다.

생각해보면 봄에 울증이 찾아온건 처음이었다.

이때는 남편과 동거를 막 시작했었다.

울증이 찾아온 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역시나 무기력이 동반된 우울이었다.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건 아니었다.

하지만 취업을 해도 심각한 인지저하로 일을 할 수 없어 퇴사하기를 반복했다.

과거, 그래도 명석했던 나와 지금의 내가 동일인물이 아닌 것만 같았다.

관해가 찾아올때까지 약 1년 반을 그렇게 무기력하게 살았다.


울증은 조증같은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조증보다 나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냥 울증이 낫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려웠다.

울증이 찾아오면 난 매번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고 소멸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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