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조증: 혼재성 + 불쾌성의 실체

by 팅커벨

조울증이라는 판정 이후, 약이 바뀌었다.

약이 바뀌자 고통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로 줄었다.

애초에 타해충동 또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고통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으니, 타해충동 또한 가라앉았다.


나는 내 병에 대해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았다기보단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옳을까.

그때의 난 살아있는 것 만으로도 너무 힘겨웠고, 그 힘겨운 상태로 살기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은 살아있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주는 약을 복용하는 것이었다.


2013년 봄에 입사를 한 회사에서, 입사한지 3주만에 팀장 두명과 싸웠다.

한번은 직속 팀장, 한번은 옆팀 팀장이었다.

나는 내 기준으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거기에 13살 이후 분노가 생기면 폭발하는 방식으로 대처를 해왔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어김없이 폭발하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불쾌성 조증으로 인한 예민함과 분노는 사회생활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게 두 번이나 싸움을 하고 난 후, 회사에선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늘 예민하고 쉽게 화가나는 나는 항상 딱딱하게 굳은 무표정으로 다녔다.

내면의 고통에 잠식당해 스스로를 견뎌내기도 힘들어 타인을 감당할 힘따윈 없었다.

인간관계에 할애할 에너지가 그때의 내겐 전혀 없었다.

그래서 항상 혼자다녔다.


회사에서의 내 이미지는 몹시 예민하고, 무섭고, 사회성이 없는 사람이었다.


조울증이라는 이름에서 기분 좋음과 우울함의 싸이클이 돌아가는 병이라고 미루어 짐작을 했다.

그리고 기분 좋음이 오지 않으니 나는 조증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다.

조울증이 오진이라고 생각한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 병에 대해 알아볼 생각이 전혀 없었던 나는 늘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내가 항상 울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게 혼재성, 불쾌성 삽화라는건 전혀 몰랐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조울증에는 잠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매일같이 퇴근하면 집으로 바로 와서 저녁도 안먹고 약을 먹고 잠을 위해 누워있었다.

안타깝게도 고용량의 약을 복용했지만 잠은 잘 오지 않았다.

저녁 8시부터 누워있어도 매일 2~3시경에야 간신히 선잠이 들었고, 7시면 출근을 위해 일어나야했다.


잠이 들지 않는게 고통스러웠다.

나는 빨리 낫고싶었다.

그때는 조울증이 평생 관리해야하는 병인걸 몰랐다.

그래서 빨리 나아서 약을 끊고싶었다.


나는 내 조울증의 형태를 몰랐기 때문에 2013년 봄부터 2014년 가을까지는 내 조울증이 어떤방식으로 재발했는지 잘 모른다.

그 당시에 조증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었고, 특별한 이벤트도 없었기 때문에 병식이 생긴 지금에 와서도 2013년 이후 1년 반동안은 내게 조증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왔었는지 전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어찌저찌 사회생활은 유지했다.

물론 사회생활 유지가 쉽지는 않았다.

그 우울함과 고통속에서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견디는게 쉬운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사회생활을 유지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나는 정신병자고, 이 사회생활은 나에게 삶을 위한 재활훈련이라는 생각때문이었다.


경력이 전혀 없으면 삶이 점점 더 붕괴될것이라는 공포가 있었다.

내가 회사를 계속 다닌 이유는 오직, 미래의 내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2014년 가을, 되짚어보면 조증임을 확연히 알 수 있는 진짜 조증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그 해 추석에 나는 충동적으로 쌍커풀 수술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조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쌍커풀 수술에 대한 충동은 고등학교때부터 있었다.

매번 수술할지 고민하다보면 어느날 쌍커풀 없는 나도 괜찮은데 뭐, 하고 충동이 가라앉았다.

그러기를 몇해나 반복하다가 한 수술이었기 때문에 이게 조증의 신호탄일줄은 몰랐다.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다보니 정신과 약을 거르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서서히 조증이 심해졌다.


조증이 심해질수록 더 술을 마시고, 과소비를 하고, 일주일을 운동으로 꽉채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여전히 나는 우울하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게 조증인줄 몰랐다.

그렇게 조증이 심해지던 어느날, 나는 삶의 재활훈련이라며 놓지 못하던 사회생활의 끈을 놓았다.


그나마 규칙적인 생활이 붙잡고있던 한계선이 퇴사를 하자 무너지기 시작했다.

퇴사를 한 이후 다시 나이트를 자주 다니기 시작했다.

생활패턴의 무너짐이었다.


그 이후 한번의 울증 사이클이 돌고 조증이 왔을 때 나는 생전 관심없던 부동산 경매 컨설턴트가 되겠다며 취업을 했다.

여전히 우울하고, 고통스러웠지만 부동산 경매를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전형적인 조증의 과대 자아상과 낙관이었지만, 나는 그게 병적인 생각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페이가 전혀 없는 그 회사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으나, 3개월동안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채 퇴사를 했다.

부동산과 부동산 경매에 관한 지식은 쌓았지만, 금전적으로는 마이너스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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