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를 끊었다. 취미도 만들 겸 운동도 할 겸. 하지만 막상 해보니 너무 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내가 이것 때문에 얼마나 힘들면 가지 않아도 될지 헤아려 보았다. 눈물이 난다면?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러면 가지 않아도 될까? 하고 말이다.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일부로 눈물을 짜내고 의식적으로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려면 할 수 있는데 노력하지 않고 피하려고만 하는 나의 모습이 비참하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해야 할 일을 선택적으로 하는 내 모습을 보며 나는 하기 싫은 일을 미루기 위해 아픈 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의사 선생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감정은 절대로 짜낼 수 없는 것이라고. 죽고 싶은 생각도 마찬가지라고. 예를 들어 헬스를 하는 사람 중에 헬스가 하기 싫다는 이유로 자살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 치료가 필요한 사람일 것이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되, 해석하지 말라고 하셨다. 감정이나 생각이 올라올 때, ‘나는 이거 하기를 정말 싫어하는구나. 이 생각만 해도 우울해지네.’ 딱 거기까지가 감정을 살피는 것이고, ‘이건 내가 짜낸 생각이야.’ 하며 따지기 시작하면 나의 감정을 판단하고 해석을 붙이는 것이라고.
시작했으니 끝까지 해내야 ‘성실한 사람’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다’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의미 부여일 뿐, 그 강박에서 벗어나라고 하셨다.
그렇다. 사실 속사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건 내 감정에 대한 변명이자 판단일 뿐이다. 내 감정을 판단하니 나는 ‘하기 싫은 것에 대한 핑계를 대기 위해 아픈 척하는 사람’이 되었고, 거기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인정하니 ‘나의 호불호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 뒤로 나는 필라테스를 ‘끊었다’. 그 시간에 차라리 내가 더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