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탄한 인생을 살아온 고등학생의 나에게 실패란 인생의 오점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공부밖에 모르던 고등학생에게 인생의 목표는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었고, 오직 그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며 열심히 공부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목표했던 대학에 떨어졌다. 다른 대학 합격 통지서를 보고도 전혀 기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참으로 힘들고 슬펐다. 이제껏 인생을 살아오면서 했던 가장 큰 실패였기에 더 그랬다.
학교 앞에 걸린 현수막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다.
'12년 동안 해온 노력의 결과가 겨우 이거라니.'
처음으로 노력도 나를 배신할 수 있음을 알았다.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 후 나는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하게 되었다. 가령 점수나 숫자로 표현되는 시험이나 몸무게 같은 것들. 내 노력에 대한 성과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다이어트를 하고 있던 나는 내 몸무게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고, 폭식을 한 뒤 몸무게를 걱정해 먹은 것을 일부로 토해버리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것이 나의 첫 '폭토(폭식 후의 구역질)'였고, 식이장애는 내 우울증의 첫 번째 화살이 되고 만다.
두 번째 화살은 자신감의 상실이었다. 원하는 대학에 떨어진 나는 실패자라고 느껴졌다. 다른 대학교에 입학하고는 내가 가고자 하는 분야에서 날고 기는 학생들을 수없이 마주하게 되었다. 창의성을 발휘해 과제를 헤쳐나가는 동기들 틈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는 무색무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계속된 원하던 동아리에서의 낙방. 나를 실패자로 낙인찍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건들이었다.
자신감이 사라지자 대인관계에도 어려움이 찾아왔다. 한창 인간관계가 확장될 시기에, 나는 피해 망상을 겪었다. 왠지 모르게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단지 시간표가 안 맞아서 나와 같이 놀러 가지 못한 것인데 나는 그게 내가 싫어서 내 수업 시간에 일부러 놀러 가는 것 같이 느껴졌고, 단톡방을 만들 때 나를 실수로 빼먹은 것인데 나는 그게 내가 싫어서 나를 일부러 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사실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겉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를 고립시킨 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는데 말이다.
우울이 찾아오자 나는 무기력의 늪에 빠져버렸다. 정말 이상하게도 이전에는 잘만 되던 것들이 어려워졌다. 당시의 나는 몸을 일으키지 못해 과제를 미루고 미루다 결국 1~2분 늦어서 제출하지 못하기 일쑤였고, 나갈 준비를 하지 못해 약속과 수업에 지각하는 일도 허다했다. 정말 힘들 때는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무기력에 빠져 약속을 파토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고 나면 그럴 때마다 게으른 나를 자책하며 다음부턴 그러지 말자고 되뇌었지만 나의 의지는 나를 변화시킬 만큼 강하지 못했다.
할 일은 끝까지 미루다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매일 지각하고, 만사가 귀찮고, 침대에서 나오지 못하는 건 아무래도 내가 게을러서인 것 같았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던 나의 과거 모습은 만들어진 모습일 뿐, 사실은 그냥 본성이 게을러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건데 괜히 우울로 포장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돌아누우려다 침대에서 떨어졌다. 다시 일어날 기력이 없어 그냥 계속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바닥은 차가웠고, 나 자신이 너무도 비참했다.
여러 화살을 맞은 나는 천천히,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자살 계획은 마치 점심 메뉴 정하듯 자연스럽게, 꽤나 구체적으로 일어났다. 나와 타인에게 최대한 덜 고통스러울 만한 방법을 모색했다.
목매달아 죽고 싶진 않았다. 방법도 너무 어렵고 비참해 보인 달까. 떨어져 죽고 싶지도 않았다. 애초에 그럴 용기도 없고 처참하게 남겨질 것 같아서. 그래, 약을 먹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침대에서 평온하게. 전처럼 남겨질 이들의 슬픔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나를 알게 한 것이 미안했다. 더는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아예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죽는 마당에 저질러온 일들이, 남겨질 기록들이 부끄럽게 느껴지다니 우스웠다. 마지막까지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다니 피곤했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내 유서가 될지도 모르는 일기장 잠금장치를 풀었다. 그리고 집안에 있던 모든 약물을 한데 모았다.
'이 정도로 죽으면 내 몸이 너무 힘들었다는 증거이겠지. 그러면 받아들여야지.'
한 손 가득 알약을 입에 넣고 여러번 삼켰다. 평온하게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쿵쾅거리는 내 심장소리에 잠에서 깨어났고, 죽는 게 무서워 제 발로 응급실로 찾아가 그때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게 된다.
'내가 우울증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나'를 몰라서였다고 생각한다. '나'를 모르니 마음이 텅 빈 것처럼 공허했고, '나'를 모르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더 방황했다.
어려서부터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나는 그게 내 의견은 무시해도 된다는 뜻인 줄로만 알았다. 남들의 기대에 맞춰 '나'를 만들어 오다 보니 진짜 '나'를 잊었다. 그렇게 자라난 꼬마는 이십여 년을 살아왔음에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장소, 취미 등 질문에도 답변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울증을 겪으면서, 이 지긋지긋한 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나의 마음속 목소리를 듣고 그 요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모든 행동을 할 때의 나의 기분을 체크하고 순간순간을 기록하며 '나'를 알아갔다. 막 끝난 빨래의 은은한 섬유 유연제 향을 좋아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장래에 자신만의 북 카페를 열고 싶어 하는 진정한 '나'의 모습을 말이다.
불과 일 년 전의 나는 우울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 채 나만 탓했고, 자책은 나를 더 아프게 했다. 하지만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많이 나아졌다. 더 이상 나를 봐달라고 자살시도를 하지도, 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불행 속에서 허덕이다가 자해를 하지도 않는다. 꾸준히 받았던 약물치료와 면담치료만큼 도움이 되었던 것은 글을 통해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글을 통해 나의 감정을 기억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로써 나의 생각을 정리하자 나와 타인을 이해하게 되었고 더 이상 나를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글이란 나에게 참 고마운 존재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글쓰기 또한 나의 '실패'로부터 시작되었다. 나의 불찰로 인해 나는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심리 상담을 받게 되었고, 그쪽에서 나를 감시하기 위한 일환으로 나에게 매일 감정 일기를 써서 보낼 것을 요구했는데 그것이 바로 나의 글의 시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인간관계에 있어서 큰 좌절을 맛본 사건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를 살리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처럼 본래 좌절만을 이야기하던 실패는 또 다른 시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나는 진정한 나의 모습을 꺼내어준 나의 이 실패들이 이제 더 이상 두렵지만은 않다.
물론 아직은 넘어진다. 불현듯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우울이 겁난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수백 번 수천 번의 실패를 만나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치료를 통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실패가 아닌 포기임을 배웠다. 수많은 실패들이 모여 다 돌아갔을 때 끝끝내 칭칭 감긴 실들 틈에 숨겨져 있던 '성공'이 드러난다고 믿기에 나는 오늘도 낙심하지 않고 실패에 감긴 실을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