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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보라 Aug 09. 2020

나를 나답게 하는 것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너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이 질문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엄마가 좋니 아빠가 좋니?" 이상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어려서부터 장래희망 쓰는 칸이 그렇게 싫었다. 수학 문제와 같지 않아 아무리 고민하고 생각해도 풀 수가 없어 빈칸으로 남겨놔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창 하고 싶은 게 많고 꿈꿀 시기라고 부르는 때에 나는 하고 싶은 게 정말 없었다. 공부도, 미술도, 음악도, 체육도 곧잘 했지만 그 어느 것도 좋아서 한건 없었다. 그저 시키니까 열심히 했을 뿐이었다. 모든 분야에서 평균 이상의 실력을 보였지만 특출하게 잘하는 건 없었다. 엄마는 내가 원하는 것을 골라서 하면 되기 때문에 그건 좋은 점이라고 하셨지만 하고 싶은 게 없던 나는 내가 여러 분야보다는 딱 한 분야에 재능을 보였으면 했다.


장래희망이 없으니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세상이 정해준 학생이라는 본분에 충실했고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도 했다. 대학만 가면 매일매일 행복한 나날들이 시작되는 줄로만 알았다. 따사로운 햇살 밑에서 한 손에는 커피, 한 손에는 전공 서적을 들고 친구들과 떠들며 거니는 캠퍼스. 그것만이 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공부하느라, 노느라 자신에 대해 탐색할 겨를이 없었던 나는 대학교에 와서야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이타적인 삶을 살라고 배웠다. 어린 나는 그게 나의 의견은 무시해도 된다는 뜻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나의 욕구는 무시한 채 남들의 의견에만 맞추다 보니 내 의견을 잃었다. 그저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주관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저 남들의 기대에만 맞춰 살아온 나는 과연 '나'라는 존재가 과연 누구인지, 나의 특징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겉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외로웠고, 마음은 텅 빈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배움을, 인생을 계속했다. 멈출 순 없었다. 멈추면 뒤처진다고 배웠기에. 그저 해야 한다고 배웠기에 하고, 또 사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다 내게 번아웃이, 우울증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내가 우울한 줄도 몰랐다. 그저 다들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것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나를 돌보지 않은 결과는 참혹했다. 나는 특징이 없는 사람이니 나란 존재는 이 세상에 없어져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파란 하늘의 어느 날, 나는 죽기로 결심한다. 집 약통에 있던 약을 모두 뜯었다. 그리고 한 곳에 모아 모두 삼켰다. 만약 이 정도로 내가 죽는다면 운명으로 받아들이려 했다.
방을 깨끗하게 치우고, 일기장을 열어 마지막 남기고 싶은 말을 적었다.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게 일기장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그리고 평온하게 침대 위에 누웠다.


모두 내가 부족해 서고, 내가 약해서야. 누구의 탓도 아닌 거 알아. 그래도 날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온 길을 손가락질하지 말고, 의지가 없는 멍텅구리라고 욕하지 말고, 그냥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말해주길.

그렇게 세 시간쯤 잤을까, 내 심장박동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심장이 너무나도 빠르고 세게 뛰고 있었다. 그 길로 나는 병원에 갔고 주요 우울장애를 진단받아 정신과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나란 존재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찾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취미에 도전해보고,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인지 과거를 돌아보며 고민해보고, 면담치료도 받았다.


처음에는 나는 그저 열심히 살아왔을 뿐인데, 나는 나약한 사람이 아닌데,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았다.


하지만 변화는 인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다친 내 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내 상태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현재 모습의 이유를 찾았다.


이제 우울을 빼놓고 나를 설명할 수 없음을 안다. 하지만 내게는 우울 말고도 다양한 모습이 있음도 안다. 가끔은 우울하지만 기쁘고 화나고 즐겁고 또 때론 설렐 줄 아는 내 모습이 좋다.


우울을 동력 삼아 나는 나 자신을 개발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우울증 에세이 '이제 그만 우울을 놓아주고 싶다'를 냈고, 전시회 '모든 아픔은 흔적을 남긴다'를 기획 중이다. 나를 알아가고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원천이 된 '우울'이 이제 밉지만은 않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시키는 일만 열심히 했다면 이제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이 좋아 미술학원에 다니고, 나처럼 마음이 다친 자들을 보듬어주기 위해 심리 공부도 하고, 영상 편집이 좋아 유튜브도 운영하는 중이다. 우울증이 나를 나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다.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돌보아지지 않고 버려진 욕구는 정돈되지 않은 정원의 씨앗처럼 아무렇게나 자라 뒤엉켜 버린다. 이미 엉켜버린 줄기들 사이에서는 나의 호불호를 찾기 어려워지며, 잘못된 장소에서 꽃을 피워 마음에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직 나에겐 확실한 장래희망은 없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뚜렷한 장래희망이 없는 것이 더 이상 걱정되지는 않는다. 이제는 내가 현재 하고 싶은 일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다 보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내 모습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나다운 인생을 살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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