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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티스트 냐옹

by Raphy


고양이를 그렸다.


멀고 먼 행성에 있는 나의 예술이 이제 지구로 와주었으면 했고 그래서 지구인과 소통이 가능한 주제를 찾고 싶었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이며

거창하지 않고 가볍지만 매력 있는 대상.


고양이가 간택되었다.


아티스트란 정체성에 과하게 집착하고 있는 요즘, 괜히 감정이입을 하며 요녀석을 그렸다.


brunch 아티스트냐옹.jpg


길을 가던 중 인것 같은데 그냥 못 지나가고 기어이 멈춰선 것이, 영락없는 아티스트다.


아티스트는 자꾸 멈추는 사람이다.

그에게 시그널을 보내는 사물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 시그널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는 건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만큼 어렵다.

마음속에 있는 무엇과 맞닿은 장면을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몸이 떠올라 발이 땅에서 떨어지게 되는 현상.

아티스트라면 늘상 경험하는 일이고

그러느라 가던 길을 잊는 경우가 허다한 까닭에,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유지하는 일상이 이들에겐 너무나 어렵다.


요 녀석도 멈춰 섰다.

고양이로선 생존에 크게 도움이 안되는 일을 하고 있다.

꽃을 보고 있군.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지고 놀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색과 아름다운 선.

그 자태에 잠깐 엿볼 수 있는 신비.

그것이 다인데.


무용하지만 아름다운 것.

아름답지만 무용한 것.

정말... 무용한 것이 맞을까?

돈이나 먹을 게 나오는 것이 아니니 지금의 세상에선 무용한 것일수도 있으려나.


사람들은, 우리가 먹는 것만으론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꺼이 그것을 잊어버린다.

어쩌면 그래서 예술가가 필요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들은 육체보다 영혼을 먹이는데 관심이 있는 종족이라,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는 제 3의 눈을 가지고 있다.

그 눈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각세포를 가지고 있지.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의 눈을 통해 아름다움의 문을 열고 심연과 조우할 수 있는 기회를, 가끔이라도 얻는 것이다.

아.... 이쯤해서 그 예술가도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안타까운 진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갑자기 맥 빠지는 소리인가.

이건 뭐 스스로도 설득시키지 못하는 불쌍한 M.

오늘도 역시 표류중이다.


야용아.

약삭빠르고 영특하며 빠르고 실질적인 주류 고양이들 틈에서 잘 살아남길.

살아남는 걸 넘어서 무용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의 세계로 다른 이들을 안내해주는 고양이가 되길.

그리고......

왠만하면 집 나오지 말고 주인이 주는 밥 감사히 받아먹고 살아라.

배고프면 눈이 흐려 꽃도 안 보인다.




꼬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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