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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y Sep 12. 2016

꽃냄새와 이빨요정 1

 반짝 반짝 즐거움과 깊은 아름다움

늦잠을 잤다. 

지난밤, 아주 오랫만에 밤의 향기에 매료되어 늦게까지 배회했던 탓이다.

방 한구석 소파 , 창문 오른쪽 서늘한 벽, 모카포트를 격동시킨 가스렌지 앞... 내 몸은 이 좁은 집 안을 왔다갔다 한게 다이지만 내 정신은 지구 저편에서 보냈던 어제의 날들을 배회하며 지치도록 거닐었다. 

잠시... 아니, 꽤 오래 거닐었던 그 여름 날들엔... 꽃냄새가 가득했다. 

그 냄새에... 아니,  꽃을 내밀던 그의  손... 그 손의 냄새에 취해 잠이 들었나보다.  

그가 준 리시안셔스 꽃을 한가득 안고 이유를 모른채 울다가 잠이 깼다. 희멀건 햇빛에 오랫만에 부은 눈을 비비다 실없이 냄새를 맡아보았다. 킁킁... 

실체는 없는데 내 코는 있지도 않은 꽃의 냄새를 맡아낸다. 오작동 중..... 


서둘러야 했다. 가게 문 열 시간이 지났다. 

우리 가게는 7시면 문을 연다. 하루중 가장 경이로은 시간이 아침이고 나는 손님에게 그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이 없다. 지금은 9시. 혹시라도 그 첫번째 손님이 오늘 올까봐 마음을 졸였다. 누구라도 왔었다면 역시나 하며 발길을 돌렸겠지. 이 이른 아침에 문을 여는 카페가 어디 있다고..... 그럴 줄 알았어....  돌아서는 발길이라도 잡을 수 있을까 부지런히 뛰었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안도와 실망이 뒤섞인 묘한 감정으로 가게  문을 열었다. 키홀에 열쇠를 넣다가 바닥을 보았는데... 어?... 꽃이 떨어져 있다! 아니, 얌전히 놓여 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린 것처럼. 가게 근처엔 꽃이 수도 없이 피어있다. 나는 왜 심장이 뛰었던 걸까? 꽃 한 송이 떨어져 있는 것이 뭐 별 일이라고.... 그 꽃이 가게 문 앞에 누워있다 해서 뭐 그리 특별한 일이라고.... 하지만... 이 꽃은 이 숲에는 없는 꽃이다! 리시안셔스....! 


나는 유리컵에 꽂아놓은 리시안셔스를 힐끔거리며 커피를 내렸다. 

맛이 없었다. 커피냄새는 안 나고 꽃냄새만 났다. 리시안셔스는 커피냄새를 이길만큼 강한 향을 지닌 꽃이 아니다. 내 코가 고장난 것이 틀림없다. 

나는 참다 못해 앨리스에게 전화를 했다. 


"앨리스! ... 리시안셔스....  알아?"

"뭐?"

"아냐. 앨리스.... 있지... 나... 꽃냄새가 났었어? 나 처음 만날 때, 미국에서... 컨퍼런스 때..."

앨리스는 잠간 말이 없었다. 

"..... 또라이!"

그래. 나는  이 말을 들어야만 했다. 또라이....   

".... 맞아... 고마워.... 끊어."


전화기 저편에서 지랄한다며 궁시렁 거리고 있을 앨리스를 떠올리며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래. 햇살도 좋고 '오늘'은 예쁘다! 잘 살 수 있다!


손님이 왔다. 일주일에 한번쯤 오는 단골 학생이다. 평소보다 더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써비스로 브라우니까지 내어주니 놀라는 눈치다. 실은 학생이 쓰고 있던 글을  슬쩍 훔쳐보다 들켜서 얼떨결에 '브라우니 드실래요?' 했던 건데... 어쨌거나 가게는 평화로웠고 모든 것은 어제와 같은 일상이었다. 코구멍을 막아도 계속 꽃냄새를 맡아대는 고장난 내 코만 빼고. 좀더 경쾌한 음악을 틀려고 앨범을 뒤지고 있는데 가게 문이 열렸다. 


"이것 봐라! 이것 봐라!  빨래집게를 코에다 꽂고 뭐하는 짓이야!  으이구... 내가 또, 또라이짓 하고 있을 줄 알고 검열 나왔다!" 

"앨리스!"


됐다! 내가 날개옷을 찾을 수 없도록 나를 도와줄 지상의 친구가 왔다. 선녀의 두레박 줄을 끊어줄 사람! 

난...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이 땅에서 살기로 결심했으니까! 


"꽃냄새는 무슨! 그 해 여름이 얼마나 더웠는데 꽃냄새가 나? 향수에 쩔은 땀냄새였겠지!"

"맞아!"

난 향수를 쓰지 않는다. 그래도 무조건 맞다. 앨리스의 말이! 그녀는 루나를 알고 있으니까. 

루나는 그 사람이 있던 곳에서 나의 이름이었다. 


"괜히 궁상 떨지말고 나나 좀 도와줘, 루나."

무심결에 나의 옛 이름을 내뱉은 앨리스는... 잠시 나를 살폈다. 

"괜찮아. 루나도 나야. 불러, 부르라고. 마음껏! 하하하!"

나는 일부러 더 활짝 웃어주었다. 

"그치? .... 그래. 그놈한테만 루나냐? 나한테도 루나였는데. 속시원히 좀 부르자!"

그놈까지 언급한 앨리스는 순간 아까보다 더 당황하며 멈칫했다. 그런 앨리스를 보며 나는 그냥 즐거워졌다. 아니, 즐겁기로 했다! 

"뭘 도와주면 되는데?"

"어, 루나! 내가 솔직히, 상담은 하는데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건지는 모르겠거든. 특히 루나같은 유형이 상담 들어오면 이론은 얘기해주지만 확신이 없어. 워낙에 별나라 사람들이라... 큭큭큭..."

"누군데? 나처럼 예쁘고 매혹적인 애가 상담 신청했어? 지구에서 살기 힘들다고?"

"지랄한다!"

"크크크...!"

"그게 아니고,  너같이 이상한 애를 키우는 엄마가, 도저히 못 키워먹겠다고 상담 들어온 거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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