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 곁에 산타가 있다.
“너는 몇 살 때까지 산타가 있다고 믿었어?” 친한 친구가 물었다. 빠른 체념인지 늦은 깨달음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여덟 살 때부터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됐다. 시장에 갔는데 산타 할아버지를 마주쳐 선물을 받아왔다는 부모님의 어설픈 거짓말 때문이었다. 예쁜 그림이 새겨진 손목시계를 건네며 어색해하던 엄마, 아빠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우리 집은 부모님의 맞벌이로 조용한 날이 많았다. 새벽에 출근해 깜깜한 밤 7~8시에 돌아왔던 엄마와 아빠.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온 부모님의 얼굴에는 피로가 묻어있었다. 내성적인 성격에, 원래 말이 많지 않았던 나는 힘들어하는 부모님의 모습에 재잘거리던 입을 자연스럽게 다물게 되었다. 1박 2일로 여행을 가는 일도 우리 가족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한 번도 다녀오지 못했다. 어렸을 땐 재밌는 추억이 없다는 게 아쉽기도 했고, 주말에도 출근하게 하는 부모님의 회사가 미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1999년 12월 24일, 부모님이 서툰 거짓말(?)로 내게 손목시계를 선물로 준 일처럼, 작지만, 따뜻했던 기억들은 분명히 있다. 감기에 걸렸지만, 붕어빵을 너무도 먹고 싶던 날, 아빠가 퇴근하고 붕어빵을 사 왔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할 때도 늦게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을 딸을 위해 엄마는 늘 간식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부모님을 떠올리면 음식에 얽힌 따뜻했던 기억이 늘 함께다.
처음 직장에서 작은 실수로 크게 혼났던 날, 그제야 난 부모님이 짊어지고 있던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조금씩 부모님을 대하는 마음이 서운함에서 연민으로 변해갈 때쯤,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부모님의 인생에 진 굴곡을 헤아리는 기간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엄마가 신혼여행에 보태라며 준 용돈과 편지. 다른 말들보다 또렷하게 기억나는 두 문장이 나를 무너뜨렸다.
‘엄마는 풍족하게 널 키워주지 못해서 미안해. 부족한 엄마여서 미안하고.’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빠 말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부모님은 늘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미안함 속에 가두어 뒤늦게 고백했다. 우리가 조금 더 서로에게 표현하며 살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직장생활로 힘든 부모님의 고단한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고, 부모님은 나의 일상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퇴근 후에 손에 들고 온 간식으로, 어설프게 건네는 작은 선물로.
일 년 열두 달을 마무리하는 시간으로 12월은 늘 그랬듯 바쁘게 흘러간다. 올해가 지나기 전에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면 어떨까? 나도 산타에게 안부 전화를 걸어야겠다. 새 달력을 책상에 두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