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꾸는 꿈

by 나무

학원이 끝나면 밤 10시, 7호선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는 길에 자양역에서 청담으로 가는 구간에 유리창 너머로 한강의 야경이 보일 쯤이면 핸드폰에 얼굴을 박고 있다가도, 책을 보다가도 고개를 든다. 마치 전철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우주선을 탄 것처럼 바깥은 까만 밤하늘과 물결 위에 오색 불빛들이 빛나고, 나는 바퀴가 선로에 닿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이 지하철이 날고 있다고 상상한다. 검은 섬 위를 둥둥 떠서 가는 열차- 그 구간에는 전철이 기울면서 진짜로 날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꿈을 꾸는 것처럼. 발이 지면에 닿지 않고 남들이 모르는 세상에서 두근거리는 가슴 안고 꾸는 꿈처럼.


그 아름다운 야경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본 하루가 있다. 학원에서 학생들은 나에게 여러 고민들을 이야기한다. 나의 20대와 닮은 고민들을 토로하는 학생들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고 그들의 심정에 내 일처럼 몰입하면서도 그들의 미래를 지지하는 말은 불순물 고르듯 잘 골라 따로 빼놓고 현실적인 이야기들, 그들이 헛된 희망으로 부풀어 올라서 다치는 일이 없을 해결책들만 나눴다. 나의 말에는 ‘잘할 수 있다’는 있어도 ‘잘 될 거다’라는 말은 없었다. 그런 답변을 나눴음에도, 몇 주에 걸쳐 비슷한 고민을 얘기하는 학생이 있었다. 연기를 하고 싶은데 기회는 오지 않고, 무기력해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나는 계속해서 현실적인 답변이나 내 경험들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그 학생의 표정은 여전히 여러 상념들로 얼룩져 있었다. 그날 밤 귀갓길에 마음이 시원치 않았다. 장들레의 ‘모르겠어요’를 들으니 더더욱 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좋은 어른은 뭘까요

내게 가르쳐주세요 알고 싶어요

바뀌고 싶어요 비겁한 내 모습

이젠 정말 모르겠어요 아직 모르겠어요

따뜻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고개를 들어 전철 바깥을 보면 오색찬란한 한강의 야경. 마음은 답답하고 나는 좋은 어른은 어떻게 대답해주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른 채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허세만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힘이 빠졌다. 그래서 나보다 좋은 어른인 H에게 고민을 나눴다.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아직 한창 꿈꿀 때잖아 더 응원해 줘 더 마음껏 해보라고 해”

왜 나는 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그저 잘 될 거라고, 잘할 수 있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왜냐하면 근 몇 년간 나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니까. 오디션이 들어와도, 이게 설령 되더라도 내 인생은 크게 바뀌지 않을 거야 라던지 연기를 열심히 연습하다가도, 어차피 한계치는 있어 너무 발버둥 치지 말아야지 라던지. 마냥 비관적인 마음이었다기보다는 그래야 부풀어 오른 내 발등이 풀썩 떨어져 아프지 않으니까- 꽤 괜찮은 삶의 태도를 습득했다고 생각했다. 커다란 안도감을 끌어안은 듯 일상이 편안해졌다. 나를 그늘지게 한 순간들을 벗어났다는 안도감. 끊임없는 타인과의 비교, 나에 대한 안 좋은 평가, 스스로의 특별함에 대한 크나큰 불신, 실력에 대한 불안감, 늘 부족해서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압박감, 화면에 나오는 찌그러진 것 같은 내 얼굴, 움직이지 않는 얼굴 근육, 또 선택받지 못했을 때 영원히 어떤 선을 못 넘을 것 같은 패배감 같은 것들. 그런데 나는 그 보기 좋은 삶의 태도를 습득하면서 소중했던 무언가 또한 흘려보낸 것 아닐까?


아는 동생이 “누나는 제일 해보고 싶은 배역이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한참 생각하다가 아무 말도 뱉지 못했으니까. 어차피 하고 싶은 역할을 생각해 봤자 맡을 수 없는 역할들 뿐인데. 예전에는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의 어딘가 결핍이 있지만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주인공이나, 영화 속 자신만의 개성을 가져 반짝이는 캐릭터를 보면 언젠가는 나도-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러니까 어쨌든 비중있는 멋진 캐릭터를 맡는 꿈같은 일은 없고, 좋은 작품을 만날 거라는 기대도 크게 없고. 어느 밤에 이런 생각들이 적나라하게 튀어나왔고, 문득 나는 왜 이런 생각밖에는 못 품고 살고 있나, 왜 이렇게 소망 하나 없이 이 일을 붙잡고 있나 하는 섬뜩함에 그래 차라리 기대하면서 살자 맘껏 꿈이라도 꾸자라고 생각했다.


한 주가 지나 나에게 고민을 얘기했던 그 친구를 수업에서 만났다. 한 달 정도 쉬고 싶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잘 될 거라던지, 좋은 회사를 들어가게 될 거라던지 하는 말들은 뱉지 못했지만, 카카오톡 메시지로 좋은 작품 만나 하고 싶은 연기 마음껏 하는 날이 올 거라고 전송했다. 그리고 그 말을 뱉어버리니 진짜로 그럴 것만 같았다. 그 아이에게도 내게도. 꿈꾸는 것은 자유니까,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는. 그래서 최근에 아주 오랜만에 들어온 오디션 대본을 연습할 때 진짜로 될 수도 있다고, 오디션장에서 내가 생각한 것보다 좋은 연기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연습했다. 행복하게 연습했다.


백수린 작가님이 쓴 책의 “겨울의 한복판이라도 우리는 볕을 찾는 사람이 되기로 선택할 수 있다” 라는 문장을 내게로 끌어와 “아무도 우리를 찾는 이 없어도 우리는 꿈을 꾸기로 선택할 수 있다”로 바꿔본다.

성격이 급했던 나를 뒤로하고, 허물어진 내가 꿀 꿈들이 궁금하다. 언제나 될까, 계산하며 헤맬 때는 울며 걷던 길을 이제는 복잡한 생각 없이 이곳저곳 바라보며 걷는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음악에 여지없이 가슴이 뛰던 새파란 나는 없지만, 현장에서 나보다 잘하는 배우를 보며 주눅 드는 나는 없고, 저 배우 잘하게 해 주세요 기도하는 내가 남았다. 그러면 그 마음이 내게 돌아온다는 걸 아는 내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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