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오징어볶음을 먹은 올케언니가 말했다. 엄마의 도움을 받거나 레시피를 보고 한 것은 아니었다. 조미료들을 적당히 넣으며 내 입맛에 맞게 하다 보니 음식에서 엄마의 맛이 느껴졌나 보다.
음식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결혼 전에 음식을 배우려 하지도 않았고,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만 할 줄 아는 상태로 용감하게 결혼했다. 신혼 때는 필요할 때마다 레시피를 찾아보거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대답은 여느 엄마들처럼 정확한 계량 수치가 없이 '적당히'다. 된장찌개를 끓여도 된장 적당히 넣고 갖은 야채와 두부를 넣고 끓이면 됐다. 소고기 뭇국을 끓여도 소고기로 육수를 내서 무와 마늘, 파를 넣고 소금, 간장을 적당히 넣어서 간을 맞추면 끝이다. 도대체가 엄마들의 '적당히'의 기준을 알 수 없었다.
"여보, 시장 가자. 오이소박이 하게."
웬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남편이 놀랬다. 결혼한 지 20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김치를 엄마한테 얻어먹는다. 남편은 직접 해 먹으라며 타박을 하지만, 난 엄마가 해 주실 수 있을 때까지 엄마 김치가 먹고 싶다며 버텼다.
11월이면 어김없이 오빠네와 함께 세집이 모여 김장을 하고, 시장에 좋은 김칫거리가 나올 때마다 열무김치, 깍두기 등 엄마는 40이 넘은 딸에게 끊임없이 김치를 해다 주신다.
시장에 오이가 많이 보이기 시작하고 가격이 내려가는 5월이 되면 어김없이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사위와 딸이 좋아하는 오이소박이 해놨으니 가져가라는 엄마의 전화다. 덜 익어도 푹 익어도 맛있는 엄마의 오이소박이는 한 동안 식탁의 메인 자리를 차지한다. 오이소박이의 오이를 다 먹고 마지막 국물에 밥을 비벼 먹고 나서야 오이소박이는 식탁의 메인 자리를 내놓고 내년을 기약한다.
재래시장에 가서 6개 2천원 하는 오이를 18개를 사고 부추 한 단을 샀다. 쌓여있는 오이를 보며 갈등했다. 18개를 다 도전해봐도 될지. 소심하게 3개를 남기고 15개를 썬 후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레시피를 찾아봐도 되고, 그동안 먹어본 것만으로도 대충 어떤 조미료들을 넣어야 할지 감이 오지만 엄마에게 검열을 받아야 할 것만 같았다.
"굵은소금으로 절이고"
"소금을 얼마큼 넣어야 돼요? 1시간 정도 절이면 되려나?"
"소금 적당히 뿌리고, 절이는 시간은 오이 상태 봐 가면서. 중간중간 뒤집어 주고"
'적당히 넣고, 봐 가면서 할 거였으면 엄마한테 전화를 할 필요가 없었지'라고 생각했지만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고춧가루랑 젓갈을 얼마큼씩 넣어요?"
"맛있게 빨갛다 싶을 정도로 넣고, 젓갈을 적당히 넣으면 되지."
알 수 없지만 일관성 있는 엄마의 답변에 나도 '적당히' 해 보기로 했다.
굵은소금을 적당히 넣고, 중간중간 뒤집어 가며 알맞게(?) 절였다. 부추와 양파, 당근을 썰어 고춧가루, 젓갈, 설탕 등을 적당히 넣었다. 고춧가루는 넣고 또 넣어도 맛있어 보이는 빨간색이 나질 않고 허옇게 보였지만, 부추의 숨이 죽으며 맛있어 보이는 빨간색으로 변해갔다. 절인 오이를 씻어 속을 넣기 시작했다. 어딘지 모르게 어설펐지만, 부추와 갖은양념이 된 속으로 터질 듯 채워진 오이들을 차곡차곡 김치통에 담았다. 맛은 장담할 수 없었기에 오이와 부추가 맛있게 익어주길 바랬다.
이틀이 지나고 먹어 본 오이소박이는 예상보다 맛있었다. 하루가 더 지난 오이소박이에선 어렴풋이 엄마의 맛이 느껴졌다. 엄마가 고춧가루 몇 스푼, 젓갈 몇 스푼이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엄마의 맛에 길들여진 입맛이 저절로 엄마의 맛을 따라가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의 맛이 느껴지는 음식이 최고로 맛있는 음식 같다.
새로운 음식을 할 때마다 검색을 통해 레시피를 찾아본다. 요리 파워블로거나 백종원 요리전문가의 레시피를 참고한다. 요리 전문가들과 나의 입맛이 달라서 일까, 레시피대로 했지만 내가 원하는 맛이 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참고사항의 '본인 입맛에 맞게 조절하세요.'처럼 엄마의 맛에 길들여진 내 입맛에 맞게 적당히 간을 다시 해야 한다. 결국엔 엄마 말씀대로 내 입맛에 맞게 '적당히' 넣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음식을 할 때마다 도대체 '적당히'가 얼마만큼이냐고 엄마에게 되묻지만, 결국엔 엄마의 '적당히'가 맛을 내는 정답이었고 최고의 맛을 내는 비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