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거리던 아이는 어느 순간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처음엔 슬픈 영화라도 보나 싶어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점점 커져 가는 울음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에게 갔다.
"무슨 일인데?"
"방탄(BTS)이 상 받아"
"근데 네가 왜 울어?"
"감동스러워서... 아미한테 감사하데..."
두 손을 부여잡고 우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어이가 없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는 중2 때 사춘기 정점을 찍으며 방탄소년단 덕질도 정점을 찍었다.
공식 앨범뿐만 아니라 팬카페를 통해 팬들이 찍은 사진을 사고 빙의글에 심취해 있었다. 방탄소년단 사진과 영상을 보느라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아 싸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팬미팅 티켓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앨범 수십 장을 사야 한다는 아이에게 용돈으로 협박하는 치사한 방법까지 동원해야 했다. 콘서트 티켓은 로또와 같은 경쟁률로 다행히(?) 구하지 못해 싸울 일을 하나 덜었나 싶더니 2시간 거리에 있는 콘서트장에 가서 '겉돌이'를 하겠다고 했다. '겉돌이'는 콘서트장을 못 들어가는 팬들이 공연장 근처에서 무료 나눔, 상품 판매, 사진 촬영을 하며 팬들끼리 즐기는 축제의 장이라고 했다. 멀어서 보낼 수 없다는 이유를 대며 '겉돌이'를 하는 것도 치열한 싸움 끝에 막을 수 있었다.
아이돌 스타를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한 때 서태지를 좋아했었다.
'응답하라 1994'의 윤진이처럼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클럽에 가입해 방송국 앞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것을 해보진 않았다. 서태지가 은퇴했다고 식음을 전폐하지도 않았었다. 조용히 나만의 방식대로 좋아했다.
가요 프로그램 시간에 맞춰 대기하다가 서태지가 나오면 재빨리 비디오 녹화버튼을 눌렀다. tv를 보는 동안은 항상 '대기'상태였다. 한 손에 비디오 리모컨을 들고 두 번째 손가락은 곧바로 누를 수 있도록 빨간색 '녹화'버튼에 올려져 있었다. 서태지가 나오는 광고나 가요 방송을 녹화하기 위한 나의 자세였다. 일부러 광고하는 채널을 찾아가며 서태지 광고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비디오 공테이프를 몇 개를 서태지의 광고와 각종 방송프로그램으로 채웠다. 2년여의 서태지 사랑은 자연스럽게 시들해졌고, 이사를 하며 비디오테이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tv앞에서 서태지만 나오길 기다리던 딸을 보며 엄마는 내가 얼마나 한심해 보이셨을까. 바쁘셨던 엄마는 나와 딸처럼 부딪히는 일이 많진 았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도 꽤나 답답하셨을 것 같다.
아이의 덕질을 막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방탄소년단을 함께 좋아해 보기로 했다.
방탄소년단을 좋아하기로 마음을 먹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었다. 7명밖에 안되었지만 왜 그리도 헷갈리던지..... 예명과 이름이 매치가 안되었다.
"슈가 이름이 호석인가?"
"아니, 민윤기. 호석인 제이홉이고."
"영어 잘하던 RM 이름이 뭐더라?"
"김남준"
수없이 물어보고 헷갈려했지만, 아이는 짜증 내지 않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멤버의 이름을 다 외워갈 때 쯤 아이는 래퍼와 보컬 포지션, 누가 춤은 제일 잘 추는지, 작사, 작곡은 누가 하는지 등 방탄소년단에 대한 정보를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했다. 리더와 멤버의 나이 순서를 알아야 할 수 있는 '김남준'으로 시작해 '전정국'으로 끝나는 응원도 알려주었다.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아이는 나에게 노래를 들려주며 어느 노래가 제일 좋은지 의견을 물었고, 솔로 곡을 들려주며 목소리를 듣고 누가 부른거 같은지 맞추는 퀴즈도 냈다.
방탄소년단에 대해 알아가고 외우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아이와의 대화는 점점 늘어갔고, 싸울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방탄소년단의 브로마이드를 받기 위해 방탄소년단이 광고하는 패딩을 사주고, 또 다른 브랜드의 브르마이드를 받기 위해 신발과 티셔츠도 함께 사러 갔다. 이젠 말하지 않아도 방탄소년단이 광고를 하면 카드도 만들어주고, 비타민도 구매한다. 아이는 나와 남편을 위한 안마기를 방탄소년단이 광고한다며 구매를 권유했지만, 수백만이 넘는 안마기까진 협조하기가 어려웠다.
아이와 함께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듣고 요즘 청소년들의 팬 문화를 접하며 젊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처음엔 다른 아이돌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방탄소년단을 보며 나도 모르게 그들의 매력에 빠지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이젠 방탄소년단을 보며 울지 않는다. 예전의 나처럼 조용히 자기만의 방식대로 '아미'생활을 지속해가고 있다. 성인이 되어 엄마의 눈치를 안보며 마음껏 덕질할 날을 기다리며.
방탄소년단을 헷갈리지 않게 외우고 나니 이번엔 방탄소년단의 거의 두배인 13명의 멤버 이름을 외울 일이 생겼다. 그 주인공은 바로 세븐틴이다. 중2가 된 둘째 딸과의 소통을 위해 13명의 세븐틴 멤버 이름 외우기에 돌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