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마다 남편과 싸우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솔직히 거기서 거기다. 정말 사소한 것 가지고 싸운다.
개그 소재로도 사용되는 부부 싸움의 이야기. 전반적인 내용은 이렇다. 첫 번째 싸움의 스토리는 그래서 이러쿵저러쿵 화를 내면 상대방도 똑같이 이러쿵저러쿵 화를 내서 큰 싸움이 되었다거나 두 번째는 남자가 잘못해서 여자가 이러쿵저러쿵 화를 냈더니 남자가 '미안해'라고 사과를 해서 여자가 '그래서 뭘 잘못했는지 알아?'라고 꼬치꼬치 묻는다는 이야기.
정말 우리 집도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부부싸움에 남편이 쥐 죽은 듯 있으면 그래도 조용하고 그것도 아니라면 왕왕 머리끝까지 화가 차올라 소리를 지른다.
'지겹다. 지겨워.그만하자.' 싶은 이 싸움은 언제 끝나는 걸까? 우리는 지성을 겸비한 고급인재로 키워졌으니 무식한 싸움은 그만두자 싶다가도 당최 끝나지 않는다.
무엇 때문일까? 사건의 발생은 누가 원인일까? 싸움의 주체를 없애버리면 안 될까? 싸움의 원인이 낚시라거나 게임이라면, 낚시이던 게임이던 싸움을 하게 되는 발단을 제거하면 안 될까?
그렇게 찾게 된 싸움의 발단이 애초에 우리 집엔 없다는 걸 알았다. 도대체 뭘로 싸워?라고 묻는다면 그냥 별것도 아닌 걸로 싸우는 것도 맞고 부부 문제보다 애들 때문에 다투는 것도 맞고 남들과 다를 것 없는데..
뭘로 싸우냐고?
그게 사실, 날마다 달라지니 모르겠다..
그냥 별 시답지도 않은 걸로 싸워.
왜 싸워? 그냥 싸워.
결국은 '남편이랑 난 안 맞는 사람인가 봐'로 결론 내리고 가볍게 끝내던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사건 1.
맞벌이 부부라 아이가 수업이 끝나면 돌봄 교실을 가는데 5시가 되어야 픽업을 한다. 한데 6시까지도 봐준다는 학교 돌봄 교실은 4시 반이면 모든 아이가 집으로 돌아간단다.
남편과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서로 아이를 교대로 데려오는 날이 정해져 있다.
그날은 남편이 아이를 하교시키는 날인데 남편이 피곤해서 잠깐 쉬는 사이 알람을 듣지 못하고 5시 20분에 하원 시켰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나는 시간 맞춰하지 않고 뭐 하는 거냐고 잔소리를 날렸고 남편은 무슨 상관이냐며 무대응 했다.
사건 2.
남편은 족발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쫄깃한 족발 껍질을 좋아함에도 무조건 족발보다 보쌈을 시켰다.
족발 먹고 싶은데 당신 때문에 보쌈 먹는다고 했더니 남편은 네가 먹고 싶은 거 시켜. 누가 뭐랬어?
그렇게 5년 이상 생활하다가 그날은 버럭화를 냈다.
남편이 꼭 족발을 시키라는 말이나 압박이 없었음에도 내가 보쌈을 선택하고 주문해놓고 뒤늦게 터져버린 것이다.
사건 3.
남편의 폰 문자에 대한 대답이 없다. 한 시간이나 뒤에 오는 문자. 느려 터진 답변이 지겨워서 문자를 보내지 않게 되고 할 말이 있을 땐 전화를 한다. 전화를 했다. 부재중이다. 전화를 했다. 부재중이다. 그러다가 연락되어 용건 만 간단히 전달해서 통화해도 최대 5분이다. 핸드폰 소리를 못 들었단다. 매일의 기다림과 반복이 지겹지만 핸드폰에 관심이 없는 남편을 뒀거니 성향이 그럴 수도 있는 나랑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거니 이해하고 마음을 진정시킨다. 퇴근길 누구와 연락을 하는지 집에 도착하고도 한 시간 동안 끊지 않고 웃고 난리다.
"전화 잘 안 받을 거면서 최신폰이 무슨 상관이야. 2G로 바꿔버려" 또 다시 폭발했다.
이 사건 3가지의 공통점을 알텐가?
연결고리 없어 보이는 이 사건들에 연결고리가 존재한다는 걸 느낀 것이다. 나의 감정으로 말하자면 (사건 1) 아이에 대한 미안함. 여건만 된다면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하교하는 4시 반에 하교시키고 싶지만 그럴 상황이 안되니 5시라는 시간은 준수하고 싶다. 그 시간 이후엔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배가 된다. 남편은 그런 미안함이 없었다.
(사건 2)
여자가 뭘 좋아하는지 알았다면 보쌈만 먹고 있을게 아니라 다음번엔 '족발 먹자'라는 말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5년이 지난 지금 모르쇠는 하지 않아야 된다. 내가 좀 양보를 하면 괜찮지 남편이 족발 시켜서 몇 젓가락 뜨지도 못하고 안 먹겠다고 하는 미안함을 생각해서 함께 먹을 의도였으나. 결론적으로 와이프에 대한 미안함이 없었다.
(사건 3)
어머.. 내가 전화를 못 받아서 미안해.라는 생각을 하루에 한 번도 아니고 같이 사는 몇 년 동안 하지 않았다. 못 받았네? 또 걸겠지 뭐..라는 남편의 마인드.
"그래, 내가 길가다가 퍽치기를 당해 핸드폰으로 하는 마지막 전화에도 당신은 내 전화를 받지 않겠지?" 하고 울어도 보았지만 남편은 그 후로도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이런 것.
그렇게 나와 그 사람과의 가장 큰 차이는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정도에 있구나! 를 발견했다. 사람이 평온해도 너무 평온하다. '세상 편하게 산다'를 매번 느끼는데 그것 또한 미안한 감정이 덜한 사람의 강점이자 특기란 걸 느낀다.
본인은 세상 편하게 삶을 산다. 별문제 없는 남자잖아. "도박을 하니바람을 피우니 그렇다고 일을 안 하니.."라고 주위에서 말을 하지만 미안한 감정이 없는 사람과 사는 건 참,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
처음엔 이기적이야. 본인만 생각해. 라고 생각했지만 이기적인것과는 또 다른 이상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