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태어나다
우리 콘셉트는 뭐다?
흔히 연예인들의 공항 패션에 등장하는 단어가 '꾸안꾸', 즉 '꾸민 듯 안 꾸민 듯' 콘셉트이다. 이 매거진에 등장하는 어머니 반찬이나 밥상 또한 추구하는 콘셉트는 '꾸안꾸'다. 내추럴 그 자체. 잡지 화보처럼 잘 보이려 애쓰지 않고 느낌대로 찍는다. 사진사는 물론 나다. 이제 어머니도 이 매거진을 이해하셔서 한 마디 하신다.
"찍어라!"
지인이 가져다준, 직접 농사지은 단호박이 튀김으로 변신했다. 어머니는 예전 방식대로 호박죽을 끊이려고 하였으나, 첫째 조카가 튀김을 먹고 싶대서 메뉴 변경. 그냥 삶아도 맛있는 단호박이 튀김으로 바뀌니 바삭하고 달달하고. 구도니 접시니 그런 거 따질 새도 없이 먹기 바쁘다.
"우리 콘셉트는 내추럴이에요. 그냥 있는 그대로 가요!"
"자연스럽게 가는 거지?"
"넵!"
밥이 남을 때
조카들이 합류하고 대가족이 되면서 쌀 소비량도 늘어났다. 물론 아이들은 집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편이 아니다. 비공식적인 밥 담당은 이모인 내 몫이기에 하던 대로 가족 수에 맞게 밥을 짓는다. 삼시 세끼를 주로 집밥으로 해결하는 나와 달리 조카들은 급식이나 편의점, 배달 등 여러 경로로 해결하기 때문에 지어놓은 밥은 어중간하게 남기 마련.
그럴 때 어머니는 남은 밥을 갖은 반찬과 볶거나 유부초밥을 만들어 먹기 쉽게 준비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또 나타난다. 이것도 결국 밥이기 때문에 누군가 손을 대고 먹어야 하는데... 내가 최대한 많이 먹고 조카들은 어쩌다 조금씩 먹기 때문에 한 상에 둘러앉아 다 같이 먹기보다 해치우듯 조금씩 없어지는 편이다.
남는 밥은 반찬 통에 넣어 냉장고로 들어간다. 우리 집은 예전부터 때마다 밥을 짓지 않고 몇 끼씩 대량으로 해놓고 조금씩 먹었다. 그래서 어중간하게 밥이 남을 때가 많다. 매번 밥을 하기도 힘드니 밥 짓는 이를 배려하는 차원이라 생각하며 넘어간다.
밥상도 인문학이다!
조금 뚱딴지같은 말 같지만, 예전부터 어머니의 밥상에서 인문학적인 요소를 발견했다. 사실 어머니처럼 밥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 것은 아니다. 모순되게 이렇게 사랑 많은 어머니 품에서 자랐지만, 가족을 위해 매번 밥상을 차려두고 외출하거나 뭔가 준비해 놓기는 어렵다.
아기 때부터 봐온 조카들도 커갈수록 자신들의 견해가 강해지고, 막내 조카는 꼭 자기 전 무언가를 먹으려고 하기 때문에 방학 때는 하루에 설거지도 여러 번이다.
음식은 막 해놓은 상태가 맛있지만, 어머니는 그런 온도보다 누군가 급하게 허기를 채우려 할 때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놓는 게 더 중요한 사람이다.
왼쪽 사진도 그런 경우. 딸과 조카들이 덜어 먹을 수 있도록 큰 접시에 유부초밥을 만들어 놓고, 곁들여 먹을 계란찜도 준비해 두었다. 아예 수저와 그릇, 국자까지 세팅해 놓은 어머니. 사랑스러운 인문학자이다.
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태어나는
"내 어머니는 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새로 태어난다."
- 양귀자, <<모순>> 중에서
지금까지 어머니는 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존재였다. 소설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아니, 소설가의 말에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더운 여름, 힘에 부쳐 "나 아니면 어떻게 먹고살래?" 쓴소리를 하면서도 쉬지 않으셨다. 하루 종일 부엌에 서서 콩나물을 삶고, 겉절이를 담그고, 찌개를 끓였다. 내심 딸이 주변에 와서 조리 과정을 눈여겨보고 배우기를 원하셨으나, 그러지 않아도 아무 말을 하지 않으셨다. 이렇게 무심한 딸은 어머니가 해놓은 요리를 사진 찍고 본인의 글쓰기 재료로 이용만 하는데도 나무라지 않으신다.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찍으라고 이야기할 뿐.
물컵에 하나씩 넣기 좋게 얼음을 가득 담은 통을 냉동실에 놓고 얼음을 빼내는 수고를 덜하게 만드는 사람. 자신은 땀을 뻘뻘 흘려도 불 앞에서 힘들다 소리 안 하는 사람. 그런 어머니는 안 닮아 가사는 노동으로만 알지만, 상황에 몰리면 본 대로 하겠지 여유 부리는 딸. 이것도 모순이라면 모순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