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이 왜 싫을까?

동생의 보호자

by 윤작가

애교나 여시랑 거리가 먼 나. 내향적 기질에 강직하고 단단하여 주관이 뚜렷하다. 순한 듯 강하고 강한 듯 여리다.


"엄마, 나 귀찮아. 엄마가 스마트폰 하세요.

지 맘대로 사진 보내는 거 답하기 귀찮아요."


수시로 조카며 일상을 찍어 보내는 동생의 카톡에 일일이 답하기 귀찮고 그렇다고 보고 씹는 건 걸린다. 못된 언니다. 보호 본능이 없는 건 아닌데, 사사로이 엮이고 얽히는 거 싫어한다. 나는 내가 좋아야, 마음이 움직여야 따라가고 행동에 나서는, 남과 똑같은 거 싫어하고 난 나다 이런주의.


뭐 한 마디로 '내 멋대로', 그래, 그게 나다.

그래도 교회를 다녀서, 그분을 믿어서 이 정도인지 모른다.


조카 담임샘 사건 이후 부쩍 동생이 위태로워 보인다. 나의 무의식에는 언제 어디서나 위험이 감지되면 그 아이를 온 몸 바쳐 구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자주 하니까.


난 어머니의 성향을 많이 닮아 조용하고 강단 있다. 입도 무겁고 그래서 남의 비밀 이야기는 많이 들어도 여기 저기 떠드는 편이 아니다. 또한 나에 대해서도 이렇다 저렇다 남에게 하소연하지 않는다.


"니는 '가시나'라는 말도 안 하노?"


어릴 적 친구의 말, 그 말이 주는 거친 느낌과 무시하는 듯한 기분. 그 단어는 상대를 낮춰 깔보아 말하는 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말은 어머니에게 잘 듣지 않아 익숙하지도 않았고.


동생은 감성적이다. 노래를 좋아했고 무대 체질이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나와는 반대. 정이 넘쳐 흐른다. 그냥 인간은 인간으로 대한다. 대신 너무 쉽게 믿고 마음을 준다. 나는 그렇지 않다. 아파도, 고민스러워도 내 속에 두고 하늘을 향해 욕 하고 간절히 기도할 망정 가까운 어머니에게조차 쉽게 내보이지 않는다.


맏이라 책임감이 더 커서 그런가. 어머니를 지켜내야 해서 그런가. 아무튼 애를 낳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된 동생이어도 내 눈에 너무 불안하다.


무슨 일이 터지면 그제서야 손을 내민다. 물론 자잘한 일은 동생이 이리저리 오가며 살뜰히 보살피지만, 대형 사고는 내가 나서서 목소리를 낸다. 중재하고 바짝 엎드리고 자존심이고 뭐고 상대에 따라 얼마든지 깔았다 펼쳤다 할 수 있다. 내가 아프면 몸살 크게 앓고 훌훌 털고 무시하면 그만인데, 동생은 누군가랑 이야기하고 털어놓고 싶어하고 보여주고 싶어한다.


나보다 더 애교 많고 사랑스럽고 여성다움이 넘치지. 요 며칠 담임 사태로 충격을 받았는지, 이제야 정신이 드는지 계속 내게 의지하려 든다. 난 그게 부담스럽다. 그냥 충고하면 지가 알아듣고 혼자서 척척 해내면 좋겠다. 책 좀 읽으라 했더니 이제 책 타령이다.


수업 중에 전화와서 받았더니, 책 사준단다. 좋다고 목록 줬더니 또 얼마 뒤 카톡. 아이들 추천도서 말해달란다. 그냥 아이들이 자신이 읽고 싶은 책 고르게 하라고 대답했다. 또 조금 뒤 전화. 아, 쫌!


"왜?"

"언니, 6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 필요하다 안 했어? 여기에 있네."


대단히 친절한 동생이지.


"애들한테 달라고 했다."


그 뒤로도 계속. 아니, 사달라고도 구해 달라고도 안했는데 대체 왜? 필요 없다는데 그만 좀 할래 이 심정으로 이미 목소리는 저음에 훈계조.


안다. 그 아이도 때로는 남편과도 얘기가 안 통하고 믿었던 지인들에게 뒷통수 맞고 피를 흘리고 있다는 거. 내가 이러면 안 된다는 거. 천상천하유아독존 같은 왕싸가지, 이중인격자, 지킬과 하이드 같은 못되고 불친절한 사람이라는 거.


그 아이가 자립하지 못 함이 못 마땅한 거다. 홀로 뚝심있게 걸어가지 못 함이 불안한 거다. 내가 나서서 칼을 휘둘러야 사태가 진정되고 그제서야 다른 이들의 본질, 본심을 보는 그 부족한 통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도 피곤하다. 그냥 일일이 이렇다, 저렇다 대응하는 것에 지쳤는지도. 그냥 난 나대로 있고 싶은데,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데, 가끔은 미칠 것 같다.


남은 남이라 고상하게 웃지만 어느 때는 친한 이들이 더 싫다. 자신들이 마치 나를 다 아는 양 말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낼 때 거부하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웃음이, 유머가, 애잔함이, 기쁨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아이야, 제발 과하지 않게 균형을 맞춰. 내가 그냥 훨훨 날아가버려도 아무런 해가 되지 않게 무소의 뿔처럼 그렇게 당당하게 가면 안 되겠니 싶은 심정.


피붙이에게 화난 투로 말하고 나니 미안하고 죄책감이 든다. 그래도 이제 이 아이도 어른이 되도록 키워가야겠다. 아직도 이 놈의 성질머리를 못 고친 죄인을 주님, 어찌합니까?


나는 벗어나고 싶은지 모른다. 떠나고 싶은지 모르겠다. 허나 현실은 그렇지 않고. 이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연장받은 나, 무슨 핑계를 댈 수 있나?


하나님, 제가 아직도 다 깨어지지 않고 당신의 형상을 닮은, 당신의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네요. 제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런데요, 지금은 누구를 지킬, 힘을 북돋워줄 기운이 없어요. 지금은 사람이 싫어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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