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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도 없는 주부의 즐거움?

어머니의 밥상

by 윤작가

주부의 삶

식탁보를 열면 한 끼가 차려져 있다. 손 하나 까닥 안 하고도 공짜 밥상을 수십 년째 누리는 중.

어머니도 칠순이 넘어가니 다리도 아프고 관절도 안 좋고, 몇 달 전 사고로 다친 손톱도 말썽이라 푸념이 잦아진다. 갱년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시며, 열이 올랐다 내렸다 수시로 진행된단다.

원래 홍조가 있는 얼굴이 열이 올라 있는 모습이 신경 쓰이는지 약국에서 보습 크림을 사서 열심히 바르신다.

내가 봐도 심하다. 주부의 삶이. 결혼해서 지금까지 거의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밥상을 차렸으니. 시집 안 간 딸 뒷바라지 하느라 아직도 손에 수시로 물 묻히며 아침 점심 저녁밥 차리는 수고는 차라리 형벌 같아 보인다.


이건 형벌인가?

형벌 같다. 똑같은 일을 무한 반복하는 시지프스처럼 어머니의 밥상도 형벌이 아니고 무어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노래 가사는 있지만, 이것은 헤어질 수도 없는 천륜이니까. 그녀는 이른 아침 눈 떠서 부엌에서 국 끓이고 밥 안치고 반찬 만들어 차리고 치우고 먹이고 딸 옷을 사 오고... 아무리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지만, 아직도 유치원생 키우듯 삶의 고단함은 끊이지 않는다.

사랑 많은 어머니 덕분에 호강은 호강인데, 세월이 더 지나면 이런 순간도 사라지겠지. 그때는 반찬 가게에서 반찬을 사 와서 어머니께 상을 차려드리든지, 여유가 생긴다면 몇 가지 반찬을 직접 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책 읽고 글 쓴다는 핑계로 어머니를 부려 먹는 못된 딸이다.


오리 두 마리

3주 전에 대출한 도서관 책 다섯 권을 반납하러 정류장에 가는 길. 다리 밑에 오리 두 마리가 있다. 부리에 노란 은행잎을 물고 열심히 물에 씻고 있길래, 물고기나 벌레도 아닌데 은행잎은 왜? 자세히 보니 은행잎이 아니고 부리 끝이 노랗다.

아이들이 놀라지 않게 무음으로 사진 찍다 확대가 안 되어 어플 쓰지 않고 그냥 카메라로 찍었다. 자작한 물줄기가 무색하게 위에서부터 아래로 이동하며 두 마리는 서로를 의지삼아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다. 한쪽에는 누군가 버린 비닐봉지가 더럽게 돌덩이에 걸려있다. 누군가 집에서 키우는 아이들을 풀어놓은 건지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오리 두 마리. 혼자가 아니라 외롭진 않겠구나 안심하며 버스에 올라탔다.


도서관

두 권은 다 읽어 자신 있게 반납했고, 나머지 세 권은 들춰보지도 않아 필요한 두 권은 다시 대출했다. 예약자가 없으면 다시 대출 가능하대서. 참고해야 할 자료가 늘어나니 사실 책값이 부담스럽다. 무엇이든 목표가 생기면 사람을 움츠리게 만든다. 이리저리 오가며 먹이 찾는 오리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목표가 없으면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기 쉽다.

어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도, 글을 쓸 시간도 줄어들고 있다. 시한부는 아니지만, 모두가 시한부처럼 정해진 끝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충실하게 살려면 어느 정도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일상 기록은 여기까지. 이제 내일 수업을 위한 모의고사를 풀어야 한다. 아이고, 세상에 공짜가 있겠는가. 애쓴 만큼 주어지고, 눈물 흘린 만큼 성장하는 거라 믿기에 오늘도 기죽지 않고 스스로 파이팅 외치며 할 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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