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이유를 찾으면 시장기가 생겨
"늘 같은 거 뭐 하려고 자꾸 찍니?"
어머니는 별다를 것 없는 밥상 위에 놓인 국을 찍으니 한 말씀하셨다. 특별한 음식, 보기에 좋은 음식만 귀하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누군가에게 보이고 자랑하려고 찍는 게 아니니까.
연휴 동안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었더니, 몸무게는 2kg가 늘었다. 약과, 사탕, 아이스크림 따위, 평소에 못 먹던 음식도 가리지 않고 마구 먹었더니 속도 편안하지 않다. 어머니는 속을 풀어줄 겸 누룽지를 끓여 한 끼로 내놓는다. 평소 먹기 힘든 음식이라 사진 찍었더니, 특별할 것도 없는데 뭐 하러 찍는지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다. 어머니 시선과 상관없이 그녀가 만든 음식이 특별하기에 꿋꿋하게 찍고 쓰고 기록한다.
설 전에 미리 끓여둔 미역국에 떡국 넣어 내놓은 미역떡국. 간편하지만, 결코 인스턴트가 아니기에 이 또한 찍었다. 이제는 아무 말이 없다.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하라는 뜻인지. 어머니의 온기가 깃든 음식은 다 별식이다.
어머니는 남은 떡국을 넣어 어묵과 달큼하게 끓인 국물 떡볶이를 유부초밥과 함께 한 끼 식사로 내놓았다. 엽떡 같은 맵고 자극적이고 치즈 왕창 들어가고 소시지 같은 가공육 있는 떡볶이를 선호하는 조카들은 손도 대지 않는다. 오늘 아침까지 야무지게 나 혼자 맛있게 먹었다. 건강을 위해서는 절제해야 하는 음식이지만, 어머니 떡볶이는 국물이 간간하고 달큼해서 밥을 말아먹기도 하고, 국도 탕도 아니지만 든든하게 속을 채울 음식이다. 별다른 재료가 없어도 떡국과 어묵만으로도 충분히 맛을 낸다. 여기에 후추 같은 향신료나 다른 부재료는 넣지 않는다. 지금 있는 것으로도 맛을 채울 수 있다. 물론 파나 양배추를 더하면 감칠맛이 커지겠지만, 필수 재료 이외 다른 재료를 첨가하지 않아도 좋다.
어머니 해주신 밥상과 간식으로 살은 쪘고 책 한 권 마무리 못하고 어영부영 지나간 연휴인데, 어제저녁 첫째 조카와 본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의 대사가 마음에 남았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차려주는 밥상도 거절하며 살기를 원치 않은, 살 이유가 사라진 무력한 남자가 활로 호랑이를 정통으로 맞춰 주민을 구한 후부터 시장기를 느낀다. 경전을 구하기 어려워 과거를 포기한 이에게 스승이 되어주고, 평민들과 겸상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살 소망이 생기는 사람.
노름꾼 아버지로 살아갈 낙이 없던 사춘기 여고 시절, 밥맛이 없었다. 도무지 기운이 없었다. 내일이 보이지 않는데, 굳이 밥은 먹어 무엇 하나? 이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힘겨웠다. 나를 생각하면 먹고 싶지도, 살고 싶지도 않지만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밥이 들어갔다. 비전도 소망도 없던 시절이지만, 희미하게나마 누군가를 살리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어머니의 밥상이 보약인 것처럼 아무런 의미가 보이지 않아도 살아있는 자체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단종이 뒤늦게 의미를 깨닫고 실패가 보이는 복위에 가담한 것처럼. 성공이 보장되어 있지 않아도 우리는 먹고 숨 쉬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든 이유가, 어머니 음식 사진을 찍고 여기에 옮기는 이유가, 하소연할 길 없어 한탄하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기에,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입장에 놓인 누군가도 있을 것이기에. 무능력하고 야망은커녕 밥벌이도 시원찮아 걱정이 떠나지 않는 무명작가인 나도 책 읽고 글 쓰고 일상을 유지하는 행위를 멈추지 못한다.
삶이란 어쩌면 거창한 것이다. 입에 들어가는 밥이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다. 씹고 넘기고 삼켜 흡수하고 밖으로 보내고 살아 움직이는 이 모든 과정은 신의 선물처럼 소중한 일이다. 지금 살아있는 이유를 발견했든 못 했든 상관없이 살아있다면 어떤 이유가 있을지 모르니, 계속 먹고 자고 살고 그렇게 반복하며 살아가기를. 누군가는 당신을 보고 소망을 얻고, 기운 차리고, 행복을 느낄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
오늘부터 간식을 끊어야 한다. 벌써 일제 팥 사탕 하나를 먹은 뒤다. 이제는 그만! 몸을 위해,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벗을 위해, 독자를 위해, 미래를 위해, 무엇을 위해서인지 모를 때라도, 자신에 대한 확신과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그냥 이렇게, 일상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행복을 만나는 길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