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복 터진 어머니!
"생일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생일이 대수가?"
이것은 화인가, 울분인가, 내적 고백인가, 짜증인가, 도대체 뭔가?
내일은 사랑하는,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 생신이다. 용돈을 드릴까요? 싫다. 외식할까요? 싫다. 케이크랑 꽃 사서 집에서 식사할까요? 다 필요 없다. 얼마 전 어머니와 나의 대화이다. 그냥 다 싫다고만 하신다. 한 술 더 떠, 앞으로는 생일이고 뭐고 없다며... 바로 다음 달이 내 생일인데...
프리랜서라 수입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딸이 기분 낸다고 돈 쓰면 가정 경제 어려워지니, 일부러 하려고 하지 말고 평소처럼 지나가자는 거다. 능력 없는 딸이기에 죄송함이 컸다. 어머니는 내 힘으로 하는 것을 칭찬하신다. 글 쓰거나 그림 그리거나 오마이뉴스 기사로 원고료를 받거나 따위의 지적 노동을 통해 얻은 수입은 정당하다 생각하시는지 잘했다고 하신다. 그 말은 다른 데서 수익이 생기는 것은 환영인데 구태여 내 지갑을 열어 허비하지 말라는 뜻이다. 모르지 않지만, 이대로 넘어가기는 자식 된 도리로 마음이 불편하다.
문제의 발단은 오마이뉴스 잉걸 기사 응원금으로 시작되었다. 페북에 썼다. 작가니까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소재 삼아 소셜 네트워크에 올리는 편이다.
5만 원이 되면 청구할 수 있는데 지금 잉걸 기사 세 편 채택되어 총 육천 원이 모였다. 오만 원이 되면 청구해서 모조리 어머니께 드리려고 한다. 그렇게 썼다. 그랬더니 페친 세 분과 지인 한 분이 각자 만 원의 응원금을 보내주었다. 만 원 당 수수료 2천 원 빼고 잉걸 기사로 채택된 6천 원에 응원금 삼만 이천 원이 더해져 총 삼만 팔천 원이 모였다. 오만 원이 되려면 만 이천 원이 필요하다. 가장 낮은 단계인 잉걸 기사를 여섯 번 더 쓰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르치는 아이들이 얼마 없어 학원 수입도 적은 프리랜서 무명작가를 향한 지인들의 애정이다. 마치 불우이웃 돕기 성금처럼 원고료보다 응원금이 더 크다니, 주여!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사랑의 복수를 하기 위해 집에 있는 프랑스산 100% 면으로 된 종이에 크리스마스 카드 삼아 수채화를 그렸다. 재활용하려고 뜯어놓은 달력으로 봉투 만들고 스티커 우표 붙여 우체통에 넣었다.
생각보다 그림이 잘 나와 릴스로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그것을 본 지인이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샤넬 립스틱을 메시지와 함께 보낸 것이다. 일이 커진다. 과하니 취소하고 선물하고 싶으시면, 오마이뉴스 기사에 만 원 응원금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것도 해주는 거다. 또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상대방은 그동안 학원에서 배운 요양보호사 수업을 충실히 들었는지 합격했다는 근황을 전해준다. 작은 꽃다발과 귤 한 상자를 주문했다. 세상에 단 하나, 수제로 만든 그림엽서도 학원 가기 전 급하게 그리고 달력으로 봉투 만들어 우체통에 넣었다. 고양이를 키우는 게 떠올라 고양이 민화 탁상 달력도 보냈다. 사실 선물 받고 복수하느라 돈도 꽤 들었다.
보답하지 말라는 지인에게 비둘기 이야기를 했다. 사실 여부는 모른다. 예전에 친구가 해준 말이다.
"비둘기 암컷은 평생 자기 짝만 바라보고 산대. 그런데 수컷은 안 그렇대. 그래서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간다는 거야."
여기서 왜 그 이야기가 떠올랐을까? 본인은 요양보호사에 합격했는데 내가 묻기까지 연락이 없었다. 그러면서 릴스 보고 어머니 선물부터 한 사람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받고 싶은 게 아닐까? 일방적인 관계는 누군가를 병들게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지인에게 여러 가지 선물을 전한 까닭이다. 받으면 바로 보상하는 나를 보며 수많은 페친들이 복수 좀 그만하라며 아우성이고, 돈도 많이 없어 그동안 꾹꾹 참았다. 그런데 사는 재미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선물을 고르고 그가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며 커지는 데 있지 않나? 행복지수를 올리는 일이기도 하다. 다음 달 카드값은 잠시 잊어두고서. 돈을 떠나 누군가의 마음을 생각하는 일이 행복해지는 비법이다.
얼마 전 피부에 주름이 많아 보톡스를 맞을까 걱정하던 페친이 생각나서 승무원 크림으로 유명한(인스타그램 광고에서 보고 앎) 수분 크림 두 개를 보낸 바 있다. 그분은 남편과 상담 사역을 한다. 치매 증상이 있는 시어머니도 직접 모신다. 내색 못해도 답답할 때가 많을 텐데 위로해드리고 싶었다. 나 또한 피부 건조증으로 고생 중이라 그 제품을 사려고 했는데, 선물드리면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김장 없이 필요할 때마다 김치를 사 먹는데, 산타클로스 선물처럼 큰 상자에 포도와 귤, 김치통에 담긴 김장 김치를 큰손답게 선물 주셔서 황송하다.
오늘 아침, 어머니와 뿌리 염색하러 미용실에 다녀오니 언제 끓이셨는지 미역국이 한가득이다. 딸에게는 돈 든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데, 작가답게 오만(?) 이야기 소셜에 다 쏟아놓아 지인들의 응원금부터 김장 김치, 코듀로이 원피스와 향수, 샤넬 립스틱까지 어머니를 향한 생일 선물이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도착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살짝 울컥하고 눈물이 차오르는 것은 내일은 어머니 생신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을 오가며 일하던 이모가 몇 해 전 하늘의 별이 된 날이기도 하다. 하나뿐인 언니를 잃고 어머니는 스스로 영정 사진을 준비할 정도로 괴로워했다. 가족들에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화하던 이모의 흔적이 없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속 아팠을까? 부디 어머니 생일과 겹치지 않기를, 이모가 떠난 날이 겹쳐 슬픈 날이 되지 않기를 속으로 빌었는데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라는 가사처럼 여러 사람들의 마음으로 어머니의 생일상이 차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군가 자신을 응원해 주자 마음이 여유로워진 어머니는 그제야 "아이들(조카) 언제 시간 되니?" 하면서 함께 밥 먹을 의욕을 보였다. 한평생 노름꾼 남편으로 고생하고 시집살이하며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못 먹고 지금까지 부족한 딸 뒷바라지 하느라 자기 손에는 목돈 한 번 못 만진 어머니. 비록 혈육은 아니지만, 언니같이 원피스와 향수를 보내준 사람, 자신의 어머니처럼 "가장 존경하는 여성(하트)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라는 각인까지 넣어 립스틱을 선물해 준 지인, 지금은 무명이어도 버지니아 울프 같은 유명한 작가가 돼라, 어디에나 있는 풀처럼 지켜보며 응원하겠다는 분들의 응원금이 어머니의 상처를 감싸주었다.
이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눌러주시는 분들도 고마운 산타들이다. 왼쪽 사진은 미용실 사장님이 의지 등받이가 차가워서 연말 분위기 낸다고 새로 장만한 덮개이다. 빨간 바탕에 "Merry Christmas"라는 하얀 글씨가 선명하다. 무릎 덮개까지 고객을 챙기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다. 매일 아침마다 수영과 댄스로 체력을 키운다는 사장님은 크게 아프지 않은 이상, 계속 이 일을 하실 거라고 한다.
외모 가꾸는 걸 귀찮아하는 유형이라 뿌리 염색도 최대한 미뤄서 하려고 했는데, 딸의 새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같이 하자는 어머니 부탁을 흔쾌히 들어드렸다. 이게 내 선물이다.(거저먹으려고 하죠?)
돈은 없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제 수채화 엽서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보냈다. 이벤트로 붕어빵 값도 제각각 넣었다. 염색약 냄새가 코 끝에서 떠나지 않아 머리가 살짝 아프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다음 주 반납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가는지. 책 좀 보려고 하면 수업 가야 하고 뭐 해야 하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밥 먹을 때고, 그러다 보면 밤이 된다. 이렇게 핑계만 커져도 하루 살아가는 것이 기쁨이자 행복이다. 미용실에서 염색할 동안 텔레비전에서는 사랑의 열매 모금 방송이 한참이다. 아직도 연탄이 있어야만 난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연탄값을 기부하고, 누구는 몸으로 연탄을 옮기며 봉사한다. 나는 무엇으로 누구를 도우며 살아야 할까? 지금은 글과 그림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온기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