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으니까

12월 복 터진 어머니!

by 윤작가

"생일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생일이 대수가?"

이것은 화인가, 울분인가, 내적 고백인가, 짜증인가, 도대체 뭔가?

내일은 사랑하는,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 생신이다. 용돈을 드릴까요? 싫다. 외식할까요? 싫다. 케이크랑 꽃 사서 집에서 식사할까요? 다 필요 없다. 얼마 전 어머니와 나의 대화이다. 그냥 다 싫다고만 하신다. 한 술 더 떠, 앞으로는 생일이고 뭐고 없다며... 바로 다음 달이 내 생일인데...


프리랜서라 수입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딸이 기분 낸다고 돈 쓰면 가정 경제 어려워지니, 일부러 하려고 하지 말고 평소처럼 지나가자는 거다. 능력 없는 딸이기에 죄송함이 컸다. 어머니는 내 힘으로 하는 것을 칭찬하신다. 글 쓰거나 그림 그리거나 오마이뉴스 기사로 원고료를 받거나 따위의 지적 노동을 통해 얻은 수입은 정당하다 생각하시는지 잘했다고 하신다. 그 말은 다른 데서 수익이 생기는 것은 환영인데 구태여 내 지갑을 열어 허비하지 말라는 뜻이다. 모르지 않지만, 이대로 넘어가기는 자식 된 도리로 마음이 불편하다.


천사표 페친이 어머니 생일 선물로 보낸 향수

문제의 발단은 오마이뉴스 잉걸 기사 응원금으로 시작되었다. 페북에 썼다. 작가니까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소재 삼아 소셜 네트워크에 올리는 편이다.

5만 원이 되면 청구할 수 있는데 지금 잉걸 기사 세 편 채택되어 총 육천 원이 모였다. 오만 원이 되면 청구해서 모조리 어머니께 드리려고 한다. 그렇게 썼다. 그랬더니 페친 세 분과 지인 한 분이 각자 만 원의 응원금을 보내주었다. 만 원 당 수수료 2천 원 빼고 잉걸 기사로 채택된 6천 원에 응원금 삼만 이천 원이 더해져 총 삼만 팔천 원이 모였다. 오만 원이 되려면 만 이천 원이 필요하다. 가장 낮은 단계인 잉걸 기사를 여섯 번 더 쓰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인이 어머니께 선물한, 샤넬표 립스팁 포장지(예뻐서 버리지 못하고, 내 방에 보관 중)

가르치는 아이들이 얼마 없어 학원 수입도 적은 프리랜서 무명작가를 향한 지인들의 애정이다. 마치 불우이웃 돕기 성금처럼 원고료보다 응원금이 더 크다니, 주여!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사랑의 복수를 하기 위해 집에 있는 프랑스산 100% 면으로 된 종이에 크리스마스 카드 삼아 수채화를 그렸다. 재활용하려고 뜯어놓은 달력으로 봉투 만들고 스티커 우표 붙여 우체통에 넣었다.

생각보다 그림이 잘 나와 릴스로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그것을 본 지인이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샤넬 립스틱을 메시지와 함께 보낸 것이다. 일이 커진다. 과하니 취소하고 선물하고 싶으시면, 오마이뉴스 기사에 만 원 응원금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것도 해주는 거다. 또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상대방은 그동안 학원에서 배운 요양보호사 수업을 충실히 들었는지 합격했다는 근황을 전해준다. 작은 꽃다발과 귤 한 상자를 주문했다. 세상에 단 하나, 수제로 만든 그림엽서도 학원 가기 전 급하게 그리고 달력으로 봉투 만들어 우체통에 넣었다. 고양이를 키우는 게 떠올라 고양이 민화 탁상 달력도 보냈다. 사실 선물 받고 복수하느라 돈도 꽤 들었다.


보답하지 말라는 지인에게 비둘기 이야기를 했다. 사실 여부는 모른다. 예전에 친구가 해준 말이다.

"비둘기 암컷은 평생 자기 짝만 바라보고 산대. 그런데 수컷은 안 그렇대. 그래서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간다는 거야."

여기서 왜 그 이야기가 떠올랐을까? 본인은 요양보호사에 합격했는데 내가 묻기까지 연락이 없었다. 그러면서 릴스 보고 어머니 선물부터 한 사람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받고 싶은 게 아닐까? 일방적인 관계는 누군가를 병들게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지인에게 여러 가지 선물을 전한 까닭이다. 받으면 바로 보상하는 나를 보며 수많은 페친들이 복수 좀 그만하라며 아우성이고, 돈도 많이 없어 그동안 꾹꾹 참았다. 그런데 사는 재미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선물을 고르고 그가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며 커지는 데 있지 않나? 행복지수를 올리는 일이기도 하다. 다음 달 카드값은 잠시 잊어두고서. 돈을 떠나 누군가의 마음을 생각하는 일이 행복해지는 비법이다.


스티로폼 상자에 붙여진 테이프가 크리스마스 무늬 같아 찰칵!

얼마 전 피부에 주름이 많아 보톡스를 맞을까 걱정하던 페친이 생각나서 승무원 크림으로 유명한(인스타그램 광고에서 보고 앎) 수분 크림 두 개를 보낸 바 있다. 그분은 남편과 상담 사역을 한다. 치매 증상이 있는 시어머니도 직접 모신다. 내색 못해도 답답할 때가 많을 텐데 위로해드리고 싶었다. 나 또한 피부 건조증으로 고생 중이라 그 제품을 사려고 했는데, 선물드리면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김장 없이 필요할 때마다 김치를 사 먹는데, 산타클로스 선물처럼 큰 상자에 포도와 귤, 김치통에 담긴 김장 김치를 큰손답게 선물 주셔서 황송하다.


흥이 오른 어머니가 맏이 좋아하는 홍합 넣고 한소끔 끓인 미역국. 미역국마저 본인 손으로 끓이게 한 딸은 대역죄인이옵니다.

오늘 아침, 어머니와 뿌리 염색하러 미용실에 다녀오니 언제 끓이셨는지 미역국이 한가득이다. 딸에게는 돈 든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데, 작가답게 오만(?) 이야기 소셜에 다 쏟아놓아 지인들의 응원금부터 김장 김치, 코듀로이 원피스와 향수, 샤넬 립스틱까지 어머니를 향한 생일 선물이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도착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살짝 울컥하고 눈물이 차오르는 것은 내일은 어머니 생신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을 오가며 일하던 이모가 몇 해 전 하늘의 별이 된 날이기도 하다. 하나뿐인 언니를 잃고 어머니는 스스로 영정 사진을 준비할 정도로 괴로워했다. 가족들에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화하던 이모의 흔적이 없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속 아팠을까? 부디 어머니 생일과 겹치지 않기를, 이모가 떠난 날이 겹쳐 슬픈 날이 되지 않기를 속으로 빌었는데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라는 가사처럼 여러 사람들의 마음으로 어머니의 생일상이 차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군가 자신을 응원해 주자 마음이 여유로워진 어머니는 그제야 "아이들(조카) 언제 시간 되니?" 하면서 함께 밥 먹을 의욕을 보였다. 한평생 노름꾼 남편으로 고생하고 시집살이하며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못 먹고 지금까지 부족한 딸 뒷바라지 하느라 자기 손에는 목돈 한 번 못 만진 어머니. 비록 혈육은 아니지만, 언니같이 원피스와 향수를 보내준 사람, 자신의 어머니처럼 "가장 존경하는 여성(하트)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라는 각인까지 넣어 립스틱을 선물해 준 지인, 지금은 무명이어도 버지니아 울프 같은 유명한 작가가 돼라, 어디에나 있는 풀처럼 지켜보며 응원하겠다는 분들의 응원금이 어머니의 상처를 감싸주었다.


우리 동네 미용실에 있는 의자 덮개, 보자마자 찰칵!

이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눌러주시는 분들도 고마운 산타들이다. 왼쪽 사진은 미용실 사장님이 의지 등받이가 차가워서 연말 분위기 낸다고 새로 장만한 덮개이다. 빨간 바탕에 "Merry Christmas"라는 하얀 글씨가 선명하다. 무릎 덮개까지 고객을 챙기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다. 매일 아침마다 수영과 댄스로 체력을 키운다는 사장님은 크게 아프지 않은 이상, 계속 이 일을 하실 거라고 한다.

외모 가꾸는 걸 귀찮아하는 유형이라 뿌리 염색도 최대한 미뤄서 하려고 했는데, 딸의 새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같이 하자는 어머니 부탁을 흔쾌히 들어드렸다. 이게 내 선물이다.(거저먹으려고 하죠?)


그림은 머리 식히는 데 아주 좋은 활동이다.

돈은 없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제 수채화 엽서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보냈다. 이벤트로 붕어빵 값도 제각각 넣었다. 염색약 냄새가 코 끝에서 떠나지 않아 머리가 살짝 아프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다음 주 반납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가는지. 책 좀 보려고 하면 수업 가야 하고 뭐 해야 하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밥 먹을 때고, 그러다 보면 밤이 된다. 이렇게 핑계만 커져도 하루 살아가는 것이 기쁨이자 행복이다. 미용실에서 염색할 동안 텔레비전에서는 사랑의 열매 모금 방송이 한참이다. 아직도 연탄이 있어야만 난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연탄값을 기부하고, 누구는 몸으로 연탄을 옮기며 봉사한다. 나는 무엇으로 누구를 도우며 살아야 할까? 지금은 글과 그림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온기를 전하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