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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케이 Apr 05. 2022

문학박사와 공학석사의 독서모임2

이어령의 마지막수업을 읽다

1. 둘의 총평 : 전체적으로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고, 비기독교인이면서 일반인들에게는 쉬운 주제나 문체도 아니었다. 다만, 삶과 죽음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한번쯤은 생각하고 스스로 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다고 평하고 싶다.

2. 공학학사의 평

-  전반적으로 난해했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을 최대한 쉽게 풀어 논점을 정리했어야하는데, 필자와 대담자는 외려 더 난해한 것을 더 난해하게 만들어 일반인에게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 죽음에 대해서 논할때, 이 부분은 성공하고 잘사는 사람으로서의 죽음에 대한 시각이라고 판단된다. 치열하게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죽음에 대한 정의였다,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이상적인 죽음을 정의하고 논했다고 생각된다.

- 가장 머릿속에 남는 구절은, 아버지가 남긴 유물이 고쳐썼을 때 그것의 주인이 누구이냐는 질문이었다. 따라서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남기는 삶을 살고 싶고 남기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 남기고 싶은 대상이 자식이라고 생각되고, 나 역시 자식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연명하는 삶에 대해 고민스러웠다. 당연히 의식을 갖고 살고 싶은 것이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의미있는 삶이라고 생각된다. 가족과의 이별도 건강할때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장례문화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었다. 옛날의 장례문화는 삶과 죽음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으나, 지금의 장례문화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든다. 나 역시 마지막으로 남기는 영상 등을 통해 가까운 지인에게 마지막 말을 하고 떠날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다.

- 책 주인공의 죽음은 내 삶을 다 쏟아내고 가겠다는 의지인 것 같으나, 나는 아쉬움없이 모든 것들을 홀가분하게 정리하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삶의 마지막은 누군가에게 피해주지 않고 고통없이 가고 싶다는 바램이 크다.

- 육체와 정신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이제는 내가 남긴 것들이 기록을 통해 남는 세상이니 최대한 누군가를 위해 남기고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된다. 능력이 되지 않는 나는 최대한 주변을 챙기고 가야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3. 문학박사의 평

- 전반적으로 난해했다.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라서 나보다 높은 차원의 이야기들을 펼쳐 놓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근본적인 믿음이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궤변도 말로 어렵게 풀어내서 더 이상적인 말들로 포장한다는 느낌도 들 정도로 난해하고 궤변같은 말들과 문장들이 많았다.

- 죽음과 생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고 고민해볼 시간이었다.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필자의 말의 의도에 대해서 애매모호하지만,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가 이 인터뷰의 핵심이라고 했는데,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가 삶과 죽음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인간의 육체가 병이 들었을때, 어떤 방법을 선택하게 될까에 대한 대답이 내 삶의 궁극적인 삶의 지향점이 아닐까 싶다. 방사능 치료를 받고 이삼년을 더 살게 되더라도 정신이 다 헤쳐지면 그것이 살아있다고 볼 수 있겠느냐의 질문은 얼마든지 동의한다. 그러나 삶을 정신이 헤쳐지더라도 잡고 싶은 것은 본능일 것 같은데, 이둘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과연 나의 선택은 무엇이 될 것인가.

- 육체와 정신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민도 있다. 육체가 사라져도 내 말과 생각이 남아 있다면 나는 그만큼 더 오래 사는 것이 맞을까? 그렇다면 육체는 정신을 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그릇밖에는 되지 않을까? 내가 죽으면 육체가 없어지면 정신이 살아있는 것이 맞는가? 정신과 함께 소멸하는 것인가?

- 삶이 절실한 이유는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면 삶이 이만큼 절실할 수 없다. 그저 삶이 끝이라고 생각하니 절실하다는 말도 공감된다. 그렇다면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삶이 절실하지 않은가? 종교와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 장례식에 대한 대담도 눈여겨 볼 만했다. 필자는 집에서 몇 사람만 딱 불러서 가볍게 하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 가는 길을 무겁게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현재의 장례문화에 대해서도 나 역시 고민이 많다. 내 죽음과 내 가까운 지인들의 죽음을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추모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다.- 필자의 결론은 마지막 챕터에 있었다. "삶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결국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삶과 죽음이 같은 수평 선상에 있고 이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다는 점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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