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일기
아침부터 마우어 파크로 향했다. 친구집에서 마우어 파크까지는 버스를 한 번 타고 유반(지하철)을 한 번 타고 트램까지 한 번 타면 완성. 그 곳에선 일요일마다 거대한 벼룩시장이 열린다. 굳이 벼룩시장이 아니더라도 특이한 소품샵이나 빈티지샵이 많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기 좋은 동네에 위치해 있다. 이 곳은 베를린 안에서도 힙하기로 입지가 단단한 곳이다. 베를린에 머문 지 일주일 째 이지만 벌써 세 번이나 갔을 정도로 볼거리가 넘친다. 자기만을 위한 작은 사치로의 기념품을 구입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비싸고 쓸데없지만 예쁜게 많다는 소리)
한국에서도 너무 유명해 이태원에 분점까지 두고 있는 보난자 커피도 이 곳에 본점을 두고 있다. 대중교통을 두 번이나 갈아타며 커피가 절실하던 차에 딱 알맞게, 사람도 몇 없이 살짝 쌀쌀한 기운이 도는 아침의 보난자에 도착했다. 모노톤의 미니멀한 인테리어는 한국 어디에나 있는 그 것을 닮았고 협소한 실내에 한국인이 1/3을 차지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그래, 얼마나 유명한지 한 번 먹어나 보자 싶은 마음으로 플랫화이트를 주문하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커피를 받으러 왔다갔다 하는 동안 내게 자꾸만 미소를 보내던 외국인이 결국 내게 말을 걸어왔는데, 나는 또 포르투에서 옐로우피버 인간에게 별소릴 다 듣고 온 터라 바로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그는 내가 무척 반가운 것 처럼 보였다.
"너 한국인이니?"
"맞는데."
"와, 나 한국에서 어제 돌아왔는데! BIFF(부산국제영화제) 갔다왔어!"
갑자기 내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온 그는 알고보니 한국에 열 한번에나 다녀올 정도로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라고 독일에서 일하는 은행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어제 샀다며 갤*시S10을 내게 보여주며 자랑스레 웃는다. 내가 여기 한국인이 참 많네, 하자 그는 한남동에 있는 보난자 커피 안가봤어? 거기가 더 좋은데! 하며 어찌나 해맑던지. 나는 우리나라에 이 가게가있는 줄도 몰랐는데, 하자 그가 여기 CEO가 한국인이래! 란다. 나 여기 왜 왔니. 그래서 인테리어도 이렇게 한국서타일이었던거니. 그의 해맑은 TMI에 잠깐동안 한국에서 커피마시는 기분이 들었다.
그와 작별인사를 하고 커피도 다 마셨겠다 슬슬 벼룩시장을 구경하러 나선다. 엄청 규모가 크다고 들었기때문에 미리 지칠 것을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한다. 원래는 안그랬는데 엄청나게 투어리스틱해 졌다는 카타리나의 말처럼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내가 물건인지 물건이 사람인지. 하지만 사람이 반이면 물건도 반이다. 아니 물건은 더 많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양의 빈티지 소품과 옷들을 난 오늘 처음 봤다. 오늘 이 방대한 데이타 안에서 내 것을 찾긴 찾을 수 있을까. 고등학생 때 처음 가봤던 광장시장의 2층 구제몰을 잠깐 떠올렸다. 음,...... 이건 아니야,......
이 시장의 시세를 모르니 나는 어느정도가 싸고 비싼건지 알 턱이 없어서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천막에서 팔찌하나를 냉큼 든다. 예뻤다. 코르크 색과 문양의 구슬 팔찌였다. 가격을 물었더니 3유로라고 했다. 새거 같은데? 이거 중고 맞아? 호피무늬 뿔테안경을 쓰고 9:1 가르마를 한 숏컷의 여주인이 맞다고 대답했다. 오케이, 산다. 지금 내가 차고 있는 팔찌들과도 잘 어울린다. 나는 천막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다가 시세가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다. 중고상품부터 새상품, 디자이너 상품까지 없는 게 없었던 것이다. 어떤 곳은 티셔츠 한 장에 오만원씩 하는가 하면 어떤 곳은 박스에 잔뜩 옷을 쌓아놓고 이천원에 팔고있었다. 종종 엄청나게 큰 귀걸이를 하고 입술을 까맣게 칠한 힙한 애들이 박스 앞에 쭈그려 앉아 옷가지를 뒤적거리고 있는 게 꽤 정겨웠다. 네댓줄로 길게 이어진 천막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깨달은 점은 '진짜' 예쁜 것들은 가격이 나간다는 것이었다. 초록색 중에서도 잘 없는 싱그러운 초록의 원피스는 64유로(한화 8만원쯤) 히피스러운 패턴의 색배합이 돋보이는 스웨터는 35유로(한화 오만원쯤). 이럴거면 그냥 새 옷 사겠다 야. 암스테르담에서 잠깐 들른 빈티지숍에서 못 사고 온게 한이 되었던 패턴 니트를 뒤적거리고 다니느라 나는 금방 지쳐버렸다. 색배합이 좋고 너무 특이하지 않으면서도 조화로운 패턴의 니트를 찾기란 사실 쉬운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좀 괜찮은 걸 찾았다 싶으면 죄다 35유로 이상을 불렀다. 암스테르담에서 봤던 것만큼 내 맘에 꼭 든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후회나 했다. 아, 그냥 거기서 살걸. 배고픈데 밥이나 먹자.
벼룩시장의 뒷편은 푸드트럭존이다. 독일의 대표 간식인 팔라펠부터 파스타, 한식트럭(!)까지 없는 없는거 빼고 다 있다. 팔라펠(병아리콩과 각종 항신료를 으깨 동그란 모양으로 튀긴 것. 보통 피타브레드에 야채와함께 끼워 먹는다.)을 하나 사 들고 라들러(레몬맥주)도 하나 사서 공원의 공터로 나가본다. 평일에는 텅텅 비다가 마켓이 서는 날에는 독일사람들은 가라오케라고 부르고 한국사람들은 버스킹이라 부르는 걸 하는 공간이다. 인파 속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와, 이 사람들 진짜 급이 다르다. 노래를 잘해도 이렇게 잘 해버린다고! 이게 다 자작곡인데 이렇게 노래가 좋다고! 한 록밴드가 신나고 청량한 노래로 공연을 시작하자 여기저기 사람들이 일어나 춤추기 시작한다. 어떤 커플은 신발도 양말도 다 벗어두고 웃통까지 훌러덩 깐 채로 잔디에 누워 공연을 구경한다. 아 이런 것이구나, 베를린의 힙함이. 여기 베를린 힙스터들 다 모였구나. 아니 애초에 힙스터라는 단어를 발명한 곳이 베를린 아닐까? 그 사람들은 그냥 코를 뚫고 머리를 초록색으로 염색하고 밀리터리 크롭티에 커다란 카고바지를 입고 돌아다녀서, 커다란 턱수염을 매달고 상투머리를 하고 가죽으로 된 앞치마를 걸친 채 라떼아트를 만들어서가 아니라 그냥 풍기는 바이브가 힙한 것이다. 자유가 몸에 벴구나, 너네. 왜 눈치 안보고 너나나나 예술 할 수 있는 지 알겠다. 갑자기 보난자 커피 테라스에서 열띤 대화를 나누던 독일 청년들이 떠올랐다. 19세기 파리에 살롱이 있다면 21세기엔 베를린의 카페가 있는 것이다. 알아버린 것 같다. 인파가 넘실대는 포츠담 광장에서 못 느꼈던 베를린의 그 매력, 이거였구나.
힘차게 노래 부르던 2인조 록밴드는 공연이 끝나자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12월에 콘서트가 있으니 예매할 사람은 자기 번호로 연락해달라고. 사람들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그들이 부르는 번호를 받아적었다. 그들이 노래하는 내내 앞에 놓아둔 씨디가 불티나게 팔렸다. 사람들은 10유로씩 그들이 내놓은 바구니에 돈을 넣고 씨디를 가져갔다. 나도 한 장 살까 하다가 씨디플레이어도 없다는 걸 알고 관뒀다. 나는 디지털국에서 멜* 브이아이피였다. 브이아이피는 검색이 안 되는 신생 밴드 노래는 못듣는 거였다.
그래도 5유로에 루마니안 스타일의 블라우스 한 개를 건졌다. 동네로 돌아온 오후에는 카타리나와 그녀의 룸메이트들, 그리고 순례길에서 만난 또다른 친구 디치와 보드게임파티가 있었다. 두 팀으로 나뉘어 보물을 찾는 그런 게임이었다. 저녁으론 집 앞 저렴한 피자집에서 가지와 피망이 올라간 베지테리안 피자를 시켜먹었다. 독일은 만나는 사람마다 비건 혹은 베지테리안이다. 여유가 오래도록 넘쳤던 나라의 젊은이들은 환경을 생각하기 시작하는구나. 혼자 그런 생각을 해봤다. 한국도 비건열풍이 막 불기 시작했지만 내가 만난 이 곳의 젊은이들은 환경보호를 위해 여행갈 때도 싼 가격의 비행기보다 비싸고 시간도 오래걸리는 기차를 선택했다. (유럽은 비행기가 대부분 더 저렴하다.) 누군가는 유난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되게 도덕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내일은 카타리나네 학교에 가서 그녀와 독일의 학식 체험을 할 것이다. 감자만 엄청 나오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