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ADHD 소녀가 무단결석한 이유
담임 선생님의 전화를 뒤로하고 나는 횟집으로 향했다. 열아홉,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합격증을 거머쥔 직후 겨울이었다. 수험생 시절의 나는 매일 밤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에 몰입하던 성실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합격 통보를 받고 하루 이틀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새 문제집들을 나눠준 다음 날부터 나는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내게 학교는 더 이상 갈 이유가 없는, 그래서 견딜 수 없는 곳이었다. 목표가 사라진 교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보다, 미친 듯이 바쁘게 돌아가는 횟집에서 땀 흘리는 것이 훨씬 '재미' 있었다. 싱싱한 물고기와 쏟아지는 주문 소리 속에서 나는 이상한 활기를 느꼈다. 어쩌면 이것이 나의 첫 번째 ADHD적 증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정한 목표가 사라진 시스템에서는 1분 1초도 견딜 수 없는 ADHD 본능.
횟집 수족관의 비린내와 차가운 물살 속에서 나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손님들의 주문이 쏟아지고 접시가 오가는 그 소란스러운 활기 속에서, 오히려 내 머릿속의 소음은 잦아들었다. 입시라는 목표가 끝난 학교 책상 앞에서는 단 10분도 버티기 힘들었던 내가, 횟집에서는 8시간 내내 펄펄 날아다녔다.
내가 18살일 때부터 엄마의 영혼이 아프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딸의 무단결석 소식에도 침묵했던 엄마. 그때 엄마는 나를 포기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나보다 더 깊은 마음의 병을 앓고 계셨던 걸까. 지금 엄마가 된 내가 그때의 엄마를 복기해 보니, 그 침묵은 방관이 아니라 내 입시가 끝남과 동시에 엄마도 간신히 견디던 둑이 무너지듯 무너져버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횟집에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나를 보며 주변 어른들은 "집안 형편이 어려운가 보다"라며 안쓰러운 눈길을 보냈다. 사실 아버지는 안정적인 중견기업 부장이셨고 우리 집 경제 사정은 무난했다. 그러나 일에만 집중했던 나에 대해 자세히 아는 분들은 없었다.
그 안쓰러움은 드물게 불쾌하고 기이한 관심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이삿날이 언제냐며 연세 지긋한 사장님이 도와주겠다며 선을 넘는 호의를 베풀려 했다. 내가 만만해 보였던 걸까, 아니면 결핍이 있어 보였던 걸까. 하지만 나는 당황하는 대신 "괜찮습니다"라고 잘라냈다. 타인의 시선이 어떻든, 나는 그저 내 안의 넘치는 에너지를 쏟아낼 곳이 필요했을 뿐이지 누군가의 동정이나 검은 속내가 섞인 친절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무언가를 '잘하고 싶어 하는' 순수함 그 자체였다.
19살의 봄, 나는 무작정 집을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도 집에서 먼 곳으로만 지원했다. 학비를 제외한 모든 생활비를 아르바이트로 해결했다. 그렇게 시작된 자취방은 학교가 있는 흑석동이 아닌, 꽤 떨어진 노량진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의 절친이 재수생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대학교 1학년은 고등학교라는 콜라병 속에서 참았던 에너지가 팍 터져버린 탄산음료 같았다. 카페 알바와 수학 과외를 뛰고, 학회 활동에 참여하며, 동기들과 음주가무를 즐기며 장학금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정신없이 에너지를 분출하는 지극히 ADHD다운 문어발식 활동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폭발적 활동 뒤에는 깊은 공허함이 있었다.
나는 또래들과의 공감대 형성이 유독 힘들었다. 친구들이 열광하는 연예인에게도, 이성 관계에도, 외모를 꾸미는 활동에도 나는 도무지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탐독하며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골몰했다. 넘치는 에너지를 쏟아낼 곳은 많았지만, 정작 내 영혼의 허기를 채워줄 대화 상대는 찾기 어려웠다.
나는 너무 바빠서 외로운 친구를 살피지 못했고, 친구는 너무 외로워서 바쁜 나에게 서운함을 토로했다. 결과는 당연히 '파국'이었다. 상황이 완전히 달랐던 우리는 예견된 결말을 맞이했다.
부모님과의 섬세한 대화가 부재했던 우리에게, 서로는 유일한 '영혼의 양식'이었다. 비록 생활의 리듬은 어긋났을지언정, 그 무모한 동거의 밑바닥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하고 싶다"는 소녀들의 우정이 있었다.
ADHD를 가진 아이들은 종종 효율성보다는 마음의 끌림 그대로, 한 치 앞도 계산하지 않고 영혼이 통하는 사람을 택한다. 나의 노량진 시절이 그랬다. 비록 동거는 끝이 났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그때를 웃으며 추억하는 절친이다. 그 시절의 무모함이 관계의 끝이 아니라 과정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지금 ADHD 자녀를 보며 "쟤는 왜 저렇게 유별날까?" 고민하는 엄마들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아이는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순수한 열정과 진심 어린 관계'를 찾기 위한 치열한 사투 중인지도 모른다고.
나의 열아홉, 노량진의 좁은 고시원 방에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각자의 성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방법은 조금 서툴고 수상했을지라도.
다음 편에는 "홀로 고군분투했던 ADHD 소녀의 수시 준비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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