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지극히 ADHD스러운 무모한 입시생

경제력 격차 속에서, ADHD 소녀의 독학 입시 생존기

by 렉 걸린 일상


내 성적표는 만만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휘두른 처절한 방패였다.


2월생이었던 나는 남들보다 한 살 일찍 학교에 들어갔다. 중등 시절 은따 경험은 나를 지키기 위한 방패를 찾게 만들었고 지식과 학력을 택하는 동기가 되었다.


나의 어머니는 공감과 세심한 대화라는 언어를 배워본 적 없어 표현에 서툴렀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곁에서 책을 읽어주며 당신만의 최선의 사랑을 쏟으셨다.


그 지극한 자신만의 사랑과 언어 자극 덕분에 나는 다양한 책에 빠져들며 홀로 외로운 시간을 견뎌낼 힘을 얻었다. 부모가 된 지금에야 비로소 그 힘의 뿌리가 부모님이었음을 깨닫는다.


18살 고3 시절, 나는 세상을 향한 방어막을 세우기 위해 처절하게 발버둥 쳤다.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며 버텼던 영어 내신은 수능형 문제 앞에서 한계를 드러냈고, 믿었던 수시 1학기마저 실패했다. 당시 어머니는 빈둥지증후군으로 공허해 보이셨고,


나는 나대로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극히 ADHD스러운 무모한 입시를 시작했다. 응시 비용 외에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인터넷 검색만으로 접수부터 교통편까지 혼자서 좌충우돌 해결해 나갔다.


시험 전날 밤에도 부모님은 크게 싸우셨고, 나는 내 방으로 피신해 온 어머니를 다독인 뒤 다음 날 새벽 혼자 엿 하나를 사 먹으며 시험장으로 향했다. 부모님은 그다음 날이 내 시험일이라는 사실조차 모르셨다.


어떤 날은 생전 처음 보는 어려운 문제들에 기가 죽어 녹초가 된 채 돌아왔고, 또 어떤 날은 서울에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인생 첫 '변태'를 만나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열여덟, 보호자 없는 타지에서 겪은 그 낯설고 무서운 경험들은 내 사회생활의 혹독한 첫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피로와 공포를 일단 뒤로하고 나는 매번 다음 시험장으로 향했다.


시험장으로 가던 열여덟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참 대견하다. 수시 비율이 처음으로 40%를 넘던 해,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기출문제를 풀며 매달린 끝에 중앙대 심리학과 인문 수리논술 문제를 단번에 풀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때의 해방감은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불혹의 나이에 가까워진 지금은 가족의 건강과 화목이 우선이며, 안 풀리면 다른 길로 돌아가면 그만이라는 여유가 생겼지만 당시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녀였던 우리는 실패가 곧 불효인 줄로만 알았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부모가 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감사함뿐이지만, 그때 부모님은 이해할 수 없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늦은 사춘기였던 당시 내 마음은, 아버지 원하시는 대로 돈 최대한 안 들이고 입시를 끝냈고 어머니 원하시는 대로 이름난 대학에 합격했으니 자식 도리는 했다고 생각했다.


18살의 나와 내 동생을 힘들게 했던 부모님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지금은 세상에 둘만 있어도 오케이인 것처럼 사신다. 당시를 복기하기만 해도 술렁이는 지금 마음을 가다듬으며,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제야 18살의 나를 만나 말해준다.


"너 참 수고했어. 그때 너의 최선의 용기와 노력이 지금의 나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 고마워!"


늘 자신에게 게으르다 면박 주고 비판했던 나. 어쩌면 나를 향한 까다로운 시선은 타인이 아닌 나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나를 향한 시선을 매 순간 사랑으로 바꿔보려 한다.


나의 습관적인 미소 뒤에 숨어있는 살기 위한 발버둥을 알아봐 주시고,


나보다 나를 먼저 기특하다 말해주며 자신을 더 사랑하라 조언해 주신,

여기까지 걸어오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성인 ADHD

#고등학생 ADHD

#ADHD

#대학입

#자존감

#육아에세이

#마음공부

#도전

매거진의 이전글1화 11시까지 야자 하던 고등학생의 무단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