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고등학생의 독학으로 내신 1% 만들기

지루함을 못 견디는 내가 '나만의 궤도'를 찾는 법

by 렉 걸린 일상

‘졸라맨’ 학생의 이유있는 메서드 연기


고등학교 입학식 날, 나는 남부끄러운 결심을 하나 했다. “서울대에 가고 싶다.”


그날부터 나의 광기 어린 계획이 시작되었다.


1년, 학기, 달, 주, 일 단위는 물론 쉬는 시간 10분 공부 계획까지 세워 철저히 지켰다. 누군가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지극히 ADHD 스러운 독자적 행동이었다. 다행히도 곁에는 나를 신기하고 재미있게 바라봐 준 착한 친구들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 ‘은따’의 기억으로 꽉 닫혔던 내 마음의 빗장은 그렇게 서서히 풀려갔다.


당시 나를 상징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영어 선생님은 반마다 돌아다니며 내 수업 듣는 바른? 자세를 ‘졸라맨’으로 그려 소개하셨다.


“얘들아, 이 반에는 수업 시작부터 끝까지 허리를 쭉 펴고 눈을 빛내며 집중하는 학생이 있단다.”

사실 그건 일종의 ‘메서드 연기’였다. 내신 점수를 주시는 선생님들께 잘 보이고 싶다는 집요함이 만들어낸 온몸의 열연이었다. 덕분에 나는 온 학교의 ‘아이스 브레이킹’ 소재가 되곤 했다.


영어가 싫었던 국어 1등급, 도피처로서의 문장들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열심히 들었던 영어가 나는 사무치게 싫었다.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시절, 언어적으로 나를 방어하고 싶었지만 고작 ‘3살 수준’에 머물러 있는 영어 실력이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교과서만 달달 외우는 식의 영어 공부로 인해 결국 수능 영어 등급은 해가 갈수록 떨어졌고, 나는 일찌감치 수시에 집중했다.


반면 국어는 나의 구원이자 안식처였다.


문제집 사라고 받은 돈으로 몰래 소설책을 사던 학생. 무협지와 판타지부터 니체, 톨스토이, 단테에 이르기까지 나는 활자 속에서 인생의 답을 찾아 헤맸다. 덕분에 별다른 공부 없이도 국어는 늘 1등급이었다.


드라마 뒷이야기를 예상해서 줄줄 맞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아빠가 물으셨다. “넌 어떻게 그걸 다 아니?” 이제는 내 딸이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나는 수십 년 전 아빠와의 대화가 떠올라 묘한 향수에 젖는다. 글은 나의 가장 안전한 도피처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수학의 정석과 이어폰,

그 황홀한 도파민의 세계


수학은 내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인 그래프를 그린 과목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구구단을 못 외워 나머지 공부를 하던 아이. 중학교 2학년 때 60점을 받고 어머니께 따귀를 맞은 뒤 찾아간 소수 정예 학원에서 비로소 ‘구멍을 메우는 법’을 배웠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수학의 정석》을 독특하게 풀었다. 문제집에는 오로지 내가 ‘틀린 문제’만 흔적을 남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틀린 문제만 표시되어 있는 문제집을 틀린 문제가 다 오케이 될 때까지 풀고 풀고 또 풀고,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수학 문제를 풀 때면, 세상의 소음은 사라지고 오직 숫자와 리듬만이 나를 지배했다.


하나에 집중하기 힘든 ADHD 학생에게 음악과 수학이 하나로 섞여 드는 그 시간은 강렬한 도파민의 축제였다. 세상은 늘 도망치고 싶은 곳이자 동시에 일일이 경험하고 싶은 이중적인 공간이었고, 수학은 그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였다.


AI 시대, 다시 ‘휴머니즘’


지금 나는 학생들을 가르친다.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나의 ADHD 스러운 기질은 오히려 아이들을 이해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관심받고 싶어 장난을 치거나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아이들을 보면, 나는 그 속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본다.


“그래, 너는 분명 너만의 능력이 있어. 조금 특별할 뿐이야.”


나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아이들을 긍정할 수 있다. AI 시대, 정보는 넘쳐나고 아이들은 더 쉽게 ‘게으르다’ 거나 ‘의지가 부족하다’는 평가에 노출된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다가올 시대일수록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감과 배려’라는 것을.


그리고 그 배려의 첫 번째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글을 쓸 때마다 나는 조금씩 내가 좋아진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의무감으로 해낸 공부는 단 하나도 없다. 그저 재밌는 만큼 했다. 그래서 내 수업은 지루할 틈이 없다. 내가 지루한 것을 못 견디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독특함을 긍정하기 시작한지 사실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여전히 나 자신을 다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안다. 나 같은 사람도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고, 실수했다면 사과하고, 부당한 피해에는 당당히 맞설 수 있다는 것을.


‘뇌 가소성’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뇌는 죽을 때까지 변한다. 내 뇌는 늘 재미있는 것을 찾아 공부하며 살고 싶다.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이전보다 나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산만함 속에 숨겨진 몰입의 힘을 믿습니다. ADHD라는 엔진을 달고 저마다의 궤도를 달리고 있을 모든 '졸라맨'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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