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복용일기(1)'팝업창 강제종료'_2일 차

안녕 내 불가능한 위시들아 이제야 너를 내 추억 속으로 놓아준다!

by 렉 걸린 일상


평생 내 머릿속은 수천 개의 팝업창이 동시에 떠 있는 브라우저 같았다.


하나를 끄면 두 개가 열리고, 엉뚱한 광고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리는 통제 불능의 상태.


이런 상태라는 것도 약물을 복용하고 나서야 알았다. 그전에는 내가 그저 현실감 없고 즐거움만 찾아다니는 낙천적인 성격으로 태어난 줄로만 알았다.


2025년 11월 21일 콘서타 복용 후,

'팝업창 모두 닫기 버튼'을 발견했다.


� 오늘의 관찰 로그

수면: 6시간 (8시 기상)

체중: 55kg

상태: 두통 약간, 그러나 정신은 맑음


1. 팝업창이 사라지고, '정적'이라는 선물


아침 8시, 눈을 떴을 때 평소보다 무거운 두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약을 삼키고 30분쯤 지났을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늘 나를 괴롭히던 수만 가지 잡생각—어제의 말실수, 내일의 걱정, 지금 당장 하고 싶은 딴짓—이 팝업창처럼 떠오르려다 힘없이 사라졌다.


그 덕분에 오늘은 지각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내가 매료된 일이 아닌 이상, 거의 모든 곳에 지각하는 사람이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나 내가 주도하는 모임, 혹은 사적인 즐거운 자리 정도가 아니면 '5분 지각'은 필수 옵션 같았다.


나는 내 불성실함을 자책하며 늘 자기 비하에 빠져 살았다. 그래서 조직 생활을 할 때는 남들보다 더 미리 배려하고, 실수투성이인 내 모습을 만회하기 위해 먼저 점수를 따두는 방식으로 나만의 고단한 사회생활을 해 나갔다.


'성실함'을 가질 수 없으니 '친절함'이나 '헌신'으로 그 빈자리를 메꿔왔던 것이다.


도파민이 내 뇌에 머문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뇌 브라우저의 과부하가 걸려 버벅거리던 일상이 단번에 정리되며 세상이 투명하게 맑아진 기분.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쓴 것처럼, 내가 지금 해야 할 '단 하나'의 신호만 또렷해졌다.


2. '사교 강박'으로부터의 평화로운 퇴근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타인을 웃겨야 한다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압박감을 느끼곤 했다. 끊임없이 대화 소재를 만들고, 과하게 리액션하며 누군가를 웃겨야만 안심이 됐다. 그러고 집에 돌아오면 영혼이 탈탈 털린 채 침대에 쓰러지기 일쑤였다.


얼마나 과했냐면, 대안학교 근무 시절 지금도 내 인생의 두 번째 귀인이라 생각하는 사랑하는 교감 선생님께 끊임없는 찬사를 쏟아냈던 적이 있다. 마음이 너무 좋아 멈출 수 없었던 내 찬사에 정작 당사자인 선생님은 옅은 미소와 피곤한 표정으로 "언제 끝나는 거야? 아직도 남았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저녁 모임에서 나는 그저 기분 좋게 듣고,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웃기지 않아도 아무 문제없다는 당연한 사실이 안도감이 되어 나를 감쌌다.


억지로 말을 지어내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감각. 기가 빨리는 느낌 없이 담백하게 대화를 마치고 나니 '아 이게 가능했던 거구나, 그런데 노력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구나.'가 명확해졌다.


3. 미뤄둔 숙제들이 가벼워진 밤


집에 돌아오면 늘 지쳐서 눕기 바빴던 지난 몇 개월. 하지만 오늘은 귀가하자마자 샤워를 하고, 2층 어머님 댁에 있던 둘째를 챙겨 내려와 재웠다. 그동안 내게는 태산처럼 높고 버겁게만 느껴졌던 일상의 과업들이, 오늘은 그저 '하면 되는 일'이 되어 있었다.


< 나를 용서하는 마음, 그리고 도전 >


취미 부자인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늘 괴로웠다. 다 해내지 못하면서 욕심만 많다고 자책하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내 마음속의 위시리스트들이 차분히 줄을 서기 시작했다.


"안녕 내 불가능한 위시들아! 이제야 너를 드디어 내 추억 속으로 놓아준다!"


내 뇌가 내게 건넨 첫 번째 다정한 위로였다. 팝업창이 정리된 맑은 시야로, 나는 이제야 비로소 '오늘'을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글쓰기를 이제 시작했다. 행복하다. 지켜봐 주시는 한분 한분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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