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맛이 나는 밥상, 생존을 위해 삼킨 견과류의 시간
처음 약을 복용하고 세상이 맑아지는 경이로움을 맛본 것도 잠시. 맑아진 시야 너머로 내가 마주한 것은, 약효가 끝난 뒤 찾아오는 그림자와
- 증상: 극심한 식욕 부진, 미각 상실, 저녁 방전
- 식단: 두유 2팩, 견과류 3봉, 평소 1/5 식사량
- 체중 5kg 급감
약물 적응기 동안 가장 나를 괴롭힌 것은 식욕 부진이었다. 단순히 배가 고프지 않은 수준이 아니었다. 입안에 넣은 음식들이 마치 '흙'을 씹는 것처럼 아무런 맛도, 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즐거웠던 식사 시간은 고역이 되었고, 밥그릇의 양은 평소의 5분의 1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뇌가 맑아진 만큼 일은 해야 했다. 먹지 못하는데 머리는 돌아가야 하는 상황. 나는 살기 위해 '의무적으로' 음식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머리가 핑 돌고 어지러움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약봉지를 뜯듯 견과류 봉지를 뜯었다. 매일 견과류 2~3봉과 두유 1~2팩. 그것은 간식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주입하는 최소한의 연료였다. 맛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씹고 삼키는 행위. 55kg이었던 몸무게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보며, 나는 약이 주는 '집중력'의 대가가 꽤 혹독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렇게 낮 동안 연료를 쥐어짜며 버티고 나면, 저녁 7시 반부터 서서히 방전이 시작됐다. 그리고 밤 9시, 약효가 완전히 빠져나간 자리는 거대한 블랙홀 같았다. 도저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는 상태. 아이들에게 말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나는 두 달간 '잠만 자는 엄마'였다. 4월인 지금까지도 우리 아이들은 내가 침대에 눕거나 눈을 감는 것조차 싫어하며 투정을 부린다. “엄마 또 잠맘보 할 거야?” 아이들의 서운함 섞인 목소리를 들을 때면, 그 천진난만한 가슴속에 슬픈 추억 하나를 심어준 것 같아 마음이 아려온다.
1월이 지나며 몸은 서서히 적응했고, 이제는 음식 맛도, 체력도 평소 컨디션을 되찾았다.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나며 깨달은 것은 명확하다. 약은 내게 엔진 시동을 걸어주었지만, 그 엔진이 멈추지 않게 연료를 채우고 열을 식히는 것은 오로지 나의 고독한 의지였다는 것.
흙을 씹는 것 같았던 그 시간들이 쌓여, 오늘 내가 누리는 평범하고도 맑은 하루가 완성되었음을 믿는다.
나에게 지난 연말은 인생이라는 무대의 조명을 잠시 끄고 배경을 완전히 갈아 끼우는 '전환의 시간'이었다. 이제 암전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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