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면치 못하던 나이키가 갑자기 러닝화 업계 1위가 된 마케팅 방법
요즘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를 꼽자면 단연 나이키다.
물론 나이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다. 누가 봐도 괜찮게 디자인하는, 좋은 철학을 전달하는 브랜딩 잘된 브랜드이다. 하지만 나는 나이키를 그냥 '괜찮은 브랜드'라고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키를 정말 좋아한다.
나이키를 좋아하게 된 것은 반년도 안되었다. 하지만 내가 나이키와 사랑에 빠진 이후로 2달 만에 약 40만 원 정도 나이키 제품을 사는 데에 소비를 했다.
이런 말만 들으면 내가 엄청 스포츠 웨어에 소비를 많이 하는 사람 같아 보이지만 나는 거의 모든 제품에 가성비를 따지는 사람이다. 어떤 한 제품을 사기 위해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며, 충동적인 소비가 적다. 옷이나 신발을 사기 전에는 적어도 그 상품을 처음 본 이후로 일주일 정도 고민을 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상품을 보고 일주일 동안 그 상품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다면. 그때야 비로소 구매 버튼을 누른다. 물건의 가격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고민하는 기간도 늘어난다.
또한, 자잘한 돈이 새어나가는 것을 아까워하기 때문에 최대한 짠 테크를 즐기는 사람이기도 하다. 교통비가 아까워서 버스라는 편리한 수단을 포기해가며 지하철 정기 이용권을 사용한다. 한 달에 약 2만 원가량의 돈을 아낀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기분 좋아한다.
나이키의 마케팅 방식은 정석 그대로다. 브랜드 메시지가 명확하게 있으며,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일관된 톤 앤 매너를 가진 디자인을 진행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브랜드로 나이키를 꼽는 이유다. 날렵하고 펜시한 이미지의 인상을 가진 나이키는 형성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JUST DO IT", 너도 할 수 있어! 일단 도전해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나이키는 나에게 그냥 'JUST DO IT'이라는 (약간의)뻔한 말을 외치고 쿨한 느낌의 광고를 잘 만드는 비싼 제품을 파는 스포츠 용품 회사였다.
나이키가 2019년도에 스스로의 위대함과 가능성을 믿고 나아가는 모든 여성을 응원한다는 Women's Just Do It을 밀고 나왔을 때도 그냥 '오 마케팅 좀 할 줄 아는 기업이네'라는 생각을 하고 말았었다. 나이키의 취지와 메시지에는 동의를 했지만, 가성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는 나이키는 옷의 품질과 디자인은 괜찮지만 가격 경쟁력이 없는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나이키는 다른 스포츠웨어 브랜드에 비해 가격대가 높다.
나이키의 브랜드 가치가 전달되어 마음속에 들어온 것은 나이키가 진행한 ‘Breaking 2 Project’를 알고 나서이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몇 년 지난 프로젝트이지만 나는 최근 들어서 러닝화를 사려고 알아보다가 이 프로젝트를 접하게 되었다. 근데 왜 갑자기 러닝화를 사려고 했을까?
밤을 새우는 게 예전 같지 않고 몸이 솜에 젖은 듯하게 무거운 날이 늘어났다. 슬슬 건강 관리를 시작해야겠다고 느꼈다. 체력과 스트레스 관리의 목적으로 운동을 시작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나에게 가장 만만한 것은 러닝이었다. 나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러닝을 시작했다.
헬스장을 끊어놓고 일주일 가고 말기를 반복하는 나에게 정기적으로 어떤 운동 프로그램에 등록하기란 부담스러운 일이다. 특히 프리랜서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나는 언제 내가 시간이 여유로울지 모른다. 없는 시간을 비워서 내기보다는 시간이 많을 때는 많이 하고, 적을 때는 안 할 수 있는 운동이 필요했다. 러닝은 내가 시간이 비는 날에 운동화 신고 밖에 나가기만 하면 된다는 점에서 내 비는 시간을 언제든지 매워줄 수 있는 운동이었다.
정말 그냥 나가서 뛰기만 하면 된다. 물론 더 멀리, 빠르게 뛰려면 착지법, 호흡법 등 알아야 하는 것이 있지만 정말 대회를 나가서 상을 받을 목적이 아니고 체력 증진을 위해서라면 특별히 어떤 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그냥 밖에 나가서 뛰면 된다.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라는 말이 있다. 어떤 운동을 홀로 오래 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혼자 하면 처음에 넘쳤던 열정이 사그라들었을 때 더 이상 할 의욕이 나오지 않는다. 옆에서 같이 뛰며 독려해주고, 더운 여름에 함께 뛰고 시원한 빙수라도 하나 먹으러 갈 동료들이 있어야 운동에 재미가 붙는다. 러닝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주위에 러닝을 하는 사람이 한두 명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런 분위기에 탄력을 받아 같이 러닝을 시작하려는 친구와 함께 러닝 크루에 가입을 했다.
러닝을 시작했는데 2년 전에 산 운동화는 수명을 다 해가고 있기에 이제 슬슬 러닝화를 살 때가 되었고, 나는 어떤 운동화가 좋을지 찾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나이키 zoom시리즈를 추천을 해 주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 신발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다 보니 그 근원에는 Breaking 2 프로젝트라는 것이 있었다.
나이키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는 스포츠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러닝화 업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경쟁인 아디다스의 혁신적인 신발 재질인 부스트 폼 개발 성공으로 많은 소비자를 아디다스에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기능성을 강조한 신흥 브랜드도 밑에서 치고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인 기업이라면 제품 개발을 열심히 하고 ‘아디다스의 신발보다 우리 신발이 더 뛰어나다’라고 홍보하겠지만 나이키는 그렇게 접근하지 않았다.
나이키는 갑자기 마라톤 2시간의 벽을 깨겠다고 선언하고 나온다.
당시에 마라톤 세계 신기록은 2시간 2분 57초였다. 수많은 선수들이 오랜 기간 훈련하여 2시간의 벽을 깨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 2시간의 벽은 오랫동안 굳건히 유지되어왔다. 마치 2시간 이내의 마라톤 기록이란 인간이 도저히 달성 불가능한 것인 것처럼 여겨졌었다.
‘인간의 한계인 마라톤 2시간의 벽을 깨겠다’라고 선포한 나이키는 2시간의 한계를 깨기 위해 선수 선별, 트레이닝 방법, 식습관, 환경, 심리상태, 제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최적화시킨 마라톤을 준비했다. 나이키는 세계 신기록에 가장 가까운 선수인 '엘리우드 킵초게' 선수를 영입하였고, 그에게 맞는 최적의 러닝화를 개발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을 모두 공개했다. 엘리우드 킵초게를 인터뷰하고, 신발을 만드는 장면, 신체 역학자들이 몸에 정밀 장치를 단 선수들을 보며 회의를 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그런 장면들을 통해 나이키는 관중들에게 바람을 불어넣는다.
우리가 '인간의 한계를 깨는 도전'을 하고 있어 멋지지 않니?
나이키의 의도와 맞게 브레이킹 2 프로젝트는 전 세계 러너들의 각광을 받는다. 과연 나이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엘리우트 킵초게가 2시간 이내에 완주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가 나날이 높아졌다.
결과는? 아쉽게도 2시간 26초.
26초라는 간격으로 2시간의 벽을 깨지 못하고 프로젝트는 마무리된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이 기록을 공인하지 않았고 이때 '엘리우트'가 신고 뛴 신발은 기술 도핑 판정을 받고 판매 금지가 된다.
언뜻 보면 프로젝트를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나이키는 이 프로젝트의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이 이후로 러닝화 업계에서 부동의 일인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Breaking 2 프로젝트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키의 제품에 열광할까?
사람은 도전이라는 것에 가슴이 뛴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만큼 멋져 보이는 것은 없다.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이 목적을 쟁취할 것이냐 아닐 것이냐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Breaking 2 프로젝트는 나이키의 주관 하에 스포츠 경기 화 되어서 소비가 되었다. 2시간의 벽을 향해 도전하는 선수, 그리고 그를 응원하는 관중들, 그를 위해 모든 상황을 맞추는 과학자들과 역학자들, 심리학자들. 나이키는 이 모든 모습을 감동 있게 연출하여 방영했다.
목표에 도전하는 선수와 그의 러닝 스토리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줬다. 사람들은 당연히 그렇게 연출된 스토리에 매혹될 수밖에 없었다. 나이키는 '아름다운 도전'이라는 감동 스토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2시간의 벽을 깨든 아니든 상관없이 브랜드 이미지를 좋게 구축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은 나이키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였다. 나이키는 본인의 지갑에서 돈을 가져가는 자본주의의 기업 같은 이미지가 아니게 되었다. 보는 사람에게 하여금 도전하고 그 도전을 위해 고뇌하며, 쟁취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단순한 마케팅 명목으로 한 행사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진심이 보였다. 나이키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연출을 했다.
나이키는 엘리우트를 돕는 각계 최고의 학자들로 팀을 구성했다고 홍보하고 그들이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발을 놓고 회의를 하는 장면을 몇 번이나 화면에 노출하였고 이렇게 만든 신발은 결국 기술 도핑 판정을 받고 출시 금지가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기술도핑이라는 판결도 팬들을 열광하게 하게 했다. 오직 2시간의 벽을 깨기 위해서 모든 기술을 총집합해서 신발을 만들었기 때문에 획기적으로 기록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시합 이후에 판매 금지된 '나이키 줌 엘리트'는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일으켰다.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하는 궁금증이 일어났다.
이 판정은 나이키가 '우리 신발이 이렇게 대단하다'라고 광고하는 것보다 훨씬 큰 효과를 발휘하였다. 이전에는 아무도 나이키의 러닝화가 기술적으로 좋을 것이라는 인식이 없었지만. 이 사건 이후로는 기술 도핑 판정을 받을 정도로 성능 좋은 신발을 만드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사람들은 본인도 기술도핑을 받아서 기록을 좋게 만드는 것을 내심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이는 러닝화 업계에서 1위를 차지하는 주요한 이유가 되었다.
나이키는 이 프로젝트에서 '엘리우트 킵초게'를 도전의 화신처럼 이미지 메이킹했다. 같이 영입한 3명의 선수가 더 있었지만 엘리우트 킵초게의 인터뷰를 유독 많이 보여줬다. 그의 정신상태, 훈련하는 모습을 포커싱 했다. 마라톤이 비 인기 종목이기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선수를 단숨에 스타로 만들어버렸다.
나이키는 엘리우트를 전면에 내세우며 그가 신은 신발 시리즈에 대한 홍보를 했다. 한계를 도전하는 스타 엘리우트 킵초게가 신은 신발은 판매가 금지되어 버렸지만, 나이키는 줌 엘리트의 하위급 버전인 신발 시리즈를 만든다. 나이키는 이 시리즈의 신발을 신으면 엘리우트 처럼 본인의 한계에 도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흘렸다.
그렇게 나이키 Zoom시리즈가 탄생하였다.
나이키의 러닝화를 사는 사람들은 것은 단순히 새로운 신발 하나를 구매하는 게 아니게 되었다. 나이키의 도전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가치를 사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도전을 응원하며 소비자 역시도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겠다는 생각을 같이 구매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