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렌디퍼 Jul 11. 2024

내려놓는다는 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아마 3-4년 전 원인 모를 고열로 입원했을 때도 다짐했었다. 쉬어가겠노라, 걸어가겠노라, 나의 육체를 함부로 갉아먹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그리고 또 지금  난, 같은 갈망과 바람을 맹세했다.

신자도 아닌데 그 누구에게라도 기도했으며,

또 여기 이름 모를 익명의 구독자님들에게도 기도를 구걸했다.


"나를 더 돌보며, 아끼며 살겠습니다."



다음 주 대학병원 진료를 앞두고, 불행 중 다행히도

최악의 결과는 상피내암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받아들이고자 준비하고 있지만 내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을 친다.



이번 사건을 아는 친한 지인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말뿐이다.


"수술하고 떼어내면 그만이다, 의술이 너무 좋아져서 이건 시술이다. 주변에도 꽤 많다."

"내려놓고 여유를 가지며 만족하며 살아."

"쉬어야 하면 쉬어야지, 일이 중하냐."



나도 충분히 안다.

설사 제자리암이 맞다 하더라도 초기에 발견한 행운아라는 사실과 치료하면 된다는 사실과 갑상선암과 유방암은 이제 무거운 질병이 아닐 정도로 흔한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게 가장 큰 숙제는 가장으로서의 무게감이다.


주변에 많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속으로  말한다.

'그런데 그게 너는 아니잖아.'유치하지만 그랬다...



쉬면 되는 단순한 사실은 개인사업자로 일하고 있는 내게 해고명령이나 다름없다. 한 달이라도 공백이 생긴다면 그들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을 가능성이 반대의 경우보다 더 높다. 그래서 나는 다시 처음부터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 또 하나같이 복사 붙여 넣기 한다.


"넌 다시 잘할 수 있어. 너니까. 잘해왔잖아. 이보다 더 큰일도 견뎌왔잖아."


나니까 잘할 수 있다는 말은 분명 긍정 응원이라 여겼었는데, 이제는  나는 꼭 그래야 하는 사람으로 세뇌시키는 가스라이팅으로 들린다.


내려놓아라_

대체 내려놓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도통 알 수가 없다.


여유를 가져라_

마흔이 넘도록 늘 생존게임에 익숙한 나에게 여유를 가지라는 말도 이해가 잘 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도 가르쳐준 적도 없고, 살면서 여유 같은 건 모르쇠로 살았는데 자꾸 세상은 나에게 내려놓음과 여유를 강조한다.


나도 하고 싶다.

내려놓음과 여유의 삶을 그 누구보다 간절히 원해왔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저 난 또 경제적인 문제와 아이들 걱정으로 시간을 자꾸 태워버린다. 명상 음악을 듣고, 운동을 하며, 위로의 책을 읽어보며 다스려보지만 시간 사이사이 삐집고 기어들어오는 불안함까지 어쩌지 못하는 인간이다.



정말 두려운 것은 또 몇 년이 지나면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을까 봐, 겁이 난다. 당분간은 어쩔 수 없이 쉬어야 하는 시간들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근본적인 바탕이 변하지 않으면 난 또 나도 모르게 전력질주를 하고 있을까 봐 무섭다.


대체 내려놓고 여유를 가지는 삶의 방식은 어떤 것일까.


알고 싶다.

나도 나를 변화시키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