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큰 아이 고교진학을 위해 발급받았던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역시 나의 생부와 생모가 부모로 기재되어 있다. 식탁 위에 서류를 보게 된 큰 아이는 처음 접하는 , 아니 어쩌면 생전처음 보는 외할아버지라는 사람의 이름을 보았다는 것조차 인지했었을까? 우습지만 여전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는 증명서를 보면, 그리고 배우자의 사망 낙인, 이전 세대주 사망이라는 문구에문득문득가슴 한켠이 먹먹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단출한 우리 세 식구, 그리고 외할머니.
아무리 거대한 명절이더라고 기념일이라도 우린 그렇게 넷이 전부다.
그런데, 이제 난 서서히 셋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자꾸 먹어진다.
여전히 당신의 아픔이 더 중요한 친정엄마.
특히 우린 나의 암진단 이후 더욱 서먹해지고, 어색해지고 어려워졌다. 진단 사실을 알고 난 후 예상했던 대로 자기가 죽겠다며, 죽어야겠다며 여전히 자녀의 암투병에 아픈 자신의 고통만을 호소하던 그녀였다. 이후에도 난 아프다 말하지 않았고 힘들다 울지 않았으며, 그녀 앞에선 입을 더욱 다물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이른 초저녁, 수면제인지 술인지 모를 약물에 취해 엄청난 오타와 부정의 감정들을 카카오톡으로 쏟아낸다.
그녀의 인생도 같은 여자로 동정심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이야기의 시발점은 그녀였다는 것은 이미 이전 글에서 진짜 범인을 찾았으니 그만하면 되었다 생각했다. 어쩌겠는가, 알아버렸으니 속은 시원했다.
두 아이를 바르게 키워나가는 것,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것만으로도 나는 지금 최대의 엔진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 종종 그녀의 푸념과 부정과 하소연과 감정의 쓰레기를 담아내기엔 , 지금의 나는 틈이 없다.
죽고 싶다는 , 죽지 못하고 장애인이 되면 어쩌나 하는 그녀의 '톡'을 나는 이제 차단하고 싶다.
정말 무서운 것은, 내가 그렇게 그녀를 손절해 버리면 그녀가 매일 말하던 대로 우울증 약을 털어 넣어버리면 나는 또 끔찍한 일을 감당해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분간이라도 그녀와 손절하고 내 가족을, 나를, 내 아이를 지켜내고 싶다. 철저히 혼자가 될 그녀가 불쌍하지만 나는 지금 나의 라이프에 집중하기에도 숨이 가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