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은 누구

고레에다 히로카즈 <괴물>

by 서 행

이번에 히로시마에 가게 됐을 때 영화 <괴물>을 보고 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이지만 각본은 사카모토 유지가 쓴 점이 꽤나 놀라웠다.

고레에다는 항상 직접 이야기를 쓰니까.

사카모토 유지는 도쿄예대 시나리오 교수로 취임해 있는 건 잘 알고 있었으나 주로 드라마 쪽에서 활동을 해 아직 작품을 본 적은 없었다. 포스터를 보자마자 바로 당일표를 예약했다.

도쿄에서 히로시마까지 14시간 버스를 타고 바로 <드라이브 마이 카> 로케이션을 막 밟은 상태라 걱정했지만 역시 잠시나마 졸 여유도 주지 않았다.


흐릿하지만 기억 상 영화는 4명의 인물로 나누어 각자의 시선으로 한 사건을 다룬다.

순서는 미나토의 모친 사오리, 미나토의 친구, 미나토의 담임선생, 미나토였던 거 같다.

지금 기억하는 대로 쓰는 게 원칙이니 일단 담임선생은 담임, 미나토의 친구는 A로 칭하겠다.


어느 한 빌딩에서 불이 났다. 아주 크게.

담임도 미나토의 반 친구들도 모두 그 사고 현장을 지나간다.

사오리와 미나토는 화재와 거리가 있는 집에서 농담을 하며 바라본다.

정작 타는 건 자기 집에 있다는 모르는 체. 아님 외면한 체.


사오리는 남편을 일찍 잃고 미나토와 단 둘이 살고 있다.

미나토는 사춘기가 되어 입구에 출입금지를 걸어두고 방안에 산다.

미나토와 점점 거리감이 생긴 사유리는 미나토의 행동이 이상해짐과 동시에 담임의 소문을 듣는다.

화재가 난 빌딩에 걸즈바가 있고 담임이 자주 다녔다는 것을.

그리고 돼지뇌를 가졌다는 욕을 담임에게 들었다고 미나토에게 듣는다.


미나토가 점점 이상해진다.

집을 나가고 차에서 뛰어내리는 등 돌이킬 수 없어 보이는 불안함을 보인다.

그리고 사오리는 담임에게 책임을 물러 학교로 찾아간다.

제정신이 아닌 걸로 보이는 담임은 끌려다녀 사과를 한다.

그리고 미나토가 A를 이지매한다는 등 이상한 말을 하다 결국 담임직에서 물러난다.


A는 이지매당하고 있었지만 가해자는 미나토가 아니었다.

오히려 미나토가 유일하게 옆에 있어줬다. 그런 미나토를 A는 친구 이상으로 사랑했다.


그리고 담임은 잘못이 없었다.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교장과 학교에 당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가버린 거다.

유일한 잘못이라면 아이들의 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한 것.


미나토는 A와 함께한 시간이 행복했지만 친구 이상의 감정에 당황하고 많은 걸 두려워했다.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설명하기 어려운 혼돈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을 터.


이 상황에서 괴물은 누굴까.


선악이 절대 없지는 않다.

자세하게 묘사되지 않은 인물은 거의 다 악으로 그려졌다.

사오리에게 뒷담화 하는 학부모, 학교에서 A를 이지매하는 학생들, A의 부친, 그리고 학교의 선생들까지.

정작 선악이 구분되지 않은 네 명의 인물은 혼돈 속에서 진실을 찾아 헤맨다.


배경은 작지만 이야기는 방대했다.

인물과의 관계에서 촘촘히 짜여가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일어가 부족한데도 눈을 뗄 수 없었으니까.


근데 아쉽다 영화가. 매우 아쉬웠다.

네 명의 다른 시선으로 사건의 진상을 풀어가는 이런 서사 형태는 마치 미스터리 수사물과 같다.

난 이런 작가가 관객 위에 있는 구조를 별로 안 좋아한다.

반전으로 더 큰 이야기 효과를 얻을 순 있겠지만

가뜩이나 일방적인 메시지가 돌아갈 방도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한다.

구조는 구조, 그 외에도 의도적으로 관객이 사건을 오해하도록 만들어진 이야기 속 장치들은

정말 누가 괴물인가와 거리가 있다고 느껴졌고 (특히 담임의 외적 태도가 장마다 다른 것과 미나토가 차에서 떨어진 건 A의 메일을 보고 뛰어내린 것) 이러한 장치가 많으면 많을수록 캐릭터의 시선을 바라볼 시간이 줄어든다.

어쩌면 내가 기대했던 건 경위가 이미 드러난 사건을 바라보는 네 명의 시선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누구나 형편없는 미스터리 수사물을 보고 재밌어하진 않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고레에다의 캐릭터들을 향한 애정이 깊게 전달되는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특히 A와 미나토의 순수함과 불안함의 요동은 고레에다의 생명에 대한 시선을 보여주는 느낌이 들었다.

아름다운 장면이 너무 많았다. 서정적이지도 않고. 인물들이 풍부하게 그려졌다.

프로답게 이야기는 기승전결을 향해 나아갔고, 따분한 결말도, 의미 없는 메시지 전달도 아닌 네 명의 인물로 둘러싸인 세계를 향한 시선이 그려졌기에 나는 감명 깊게 봤다.


그런데도 나는 <걸어도 걸어도> 같은 작품이 다시 한번 나오길 기대한다.

아무도 위험하지 않지만 등골이 서늘해지는 깊은 공포를 고레에다 감독에게 다시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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