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
어떤 선이나 금을 넘어선 쪽.
일정 시기가 지나면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집"이라는 선을 넘어 "밖"으로 나간다.
언젠가 고속버스를 타고 "판교"를 지나간 적이 있다. 에메랄드 색 창문을 바라보며 저 안에는 누가 있을까?, 나도 저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했었다.
엉망진창
나의 대학생활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학사경고를 받거나 재적을 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학생활을 하며 내가 소속했던 집단에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어느날은 귀찮고, 어느날은 기분이 안좋아서, 뚜렷한 주관 없이 기분대로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잘 할 수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냥, 그때의 나는 그랬다. 내면은 어두웠고, 외면은 어둡지 않기 위해 노력했었다.
나만의 빛
그래도, 20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나의 소명"에 대해서 생각했던것 같다. 이를테면 나라는 사람은 어떤사람이고, 어떤걸 할 때 행복하고, 무엇을 잘 할 수 있고 등등의 것들 말이다. 그러다가 내가 어떤 현상에 대해 "분석"하는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데이터 분석에 관심을 가졌다. 적어도 몇년 간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내가 가진 빛"을 아주 뾰족하고 날카롭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나도 에메랄드 색 창문안에서 밖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에메랄드 색 창문이 나에게 주는 "소속감"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창문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근 몇달 간은 정말 행복했고,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뭐든지 할 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여기도 밖이구나
창문안도 결국은 밖이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딧는 순간부터 죽을때까지 우리는 밖에 있게 된다. 취업을 하게되면 잠시 몸 둘 곳이 생겼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그 안도의 한숨도 잠시, 밖은 여전히 밖이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몸과 마음에 냉기가 서린다. 그래서,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 칠 수 밖에 없다. 이글은 평범한 사회초년생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얘기를 담고있다.
나는 바깥생활이 따듯했으면 좋겠다. 몸이 추우면 마음이, 마음이 추우면 몸이라도 따듯했으면 좋겠다. 이글을 보는 모든 사람들의 바깥생활이 따듯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