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비밀은 너만 알고 있어
아주 오랜 친구 혹은 연인, 가족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하루아침에 없어져버린다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모르는 내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애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가 갑자기 없어져버린단다.
장래희망란에는 언제나 아나운서라고 적었으면서내 진짜 꿈은 요리사였다는 것도, 수학 학습지가 풀기 싫어서 선생님 몰래 책장 밑에 숨겨 놨었던 것도, 유치원 때 영준이와 성민이를 동시에 좋아했던 것도 아무도 모르는데 그 친구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잠든 깜깜한 밤 아무도 모르게 베개를 적셨던 나까지도…
그 친구는 항상 나와 함께 있었으니까 다 알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친구는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지. 약간 무섭지 않냐고? 전혀 오히려 포근했다면 내가 이상해보이려나?
그래서 그 모든 걸알고 있는 친구가 누구냐면 ‘우리 집’이다.
내 친구는 빨간 벽돌로 지어진 2층 집이다. 충청남도 청양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내가 태어나기 훨씬전부터 살고 있었다. 잔디밭이 가득한 마당이 광합성을 잘 할 수 있도록 볕이 잘 드는 곳에 있었고, 그 안에 있을 우리 역시 광합성을 잘 할 수 있도록 벽면 한 쪽이 커다란 유리창으로 되어있다. 덕분에 유리창 너머 아스팔트를 쌩쌩 달리는 차 색깔을 바라보는 게 어릴 적 내 취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옷을 일 년에 4번 갈아입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 따라 한 번씩. 마당에 꽃과 나무가 참 많았는데, 그 꽃과 나무들이 계절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게 꼭 그 친구가 일 년에 네 번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이북적이며 이야기를 잔뜩 쏟아내면 보일러 없이도 벅차게 집이 따뜻한 날이 있었고, 아무도 없이 텅 빈공허함이 담겨 찬바람이 쎄하게 불어오는 날도 있었고… 나에게 집은 우리 가족,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이야기이자 그들과의 감정의 온도가 쌓인 공간이다. 나의 슬픔, 기쁨우리 가족과의 화목한 시간, 내가 부모님과 혹은 동생과 다퉜던 시간 내 모든 이야기, 내 모든 감정을 다 알아줬던 건 이 세상에 유일무이하게 그 친구 뿐이다. 우리집은따뜻할 때든 차가울 때든 매일매일 나에게 위로를, 기쁨을 전하며 말을 걸어오곤 했으니까.
어떨 땐 네 넓은 마당, 푹신한 잔디 대신 아파트 단지의 안락한 미끄럼틀, 그네, 까끌한 모래사장같은 것들을 갖고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적도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제와서생각해보면 우리 집 마당에서 집 안으로 이어지는 계단 세 칸이 훨씬 좋은 거였는데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보리수 열매와 가을에는 은행잎들 겨울에는 눈꽃들과 어울리는 네가 참 좋았던 거였는데...
이제 곧 나, 우리 가족만 기억할 그 곳에서 있었던 일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의 이야기들을 여기서 더 흐려지기 전에 자세하게 떠올리고 싶다. 그 친구가 없어지면 내 모든 비밀을 아는 존재가 하나도 없어지는 거니까 부엌, 거실, 마당, 축사 우리 집과 내가 함께 있었던 시간의 비밀을 여기에 하나하나자세하게 기록하고 싶다. 네가 영원히 잊혀지지 않게 너와 나눈 내 비밀도 영원히 없어지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