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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Sep 20. 2023

취향 #2

나만의 레푸기움, 제주에서.

3일간의 휴가를 내고 제주에 내려왔다. 사실 나는 직장인치곤 제주에 자주 가는 편이다.

제주에 이렇게 자주 오기 시작하게 된 것은 2020년 대학생 시절 6개월 간의 인턴을 마쳤을 무렵이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을 포기하고 제주에 2주간 머물렀다. 그 때부터 이 곳의 고요함을 즐기기 시작했다.

최근, 아래 글을 읽고 나는 알았다. 3년전에 나는 나만의 레푸기움을 찾았다는 것을.

*라틴어에서 레푸기움은 '피난처, 휴식처'의 의미이다.


자신만의 레푸기움, 자신의 탑을 갖는 일은 중요하다. 그곳이 돌집이든 소나무 숲이든 바닷가 외딴곳이든, 주기적으로 찾아가 분산된 감각으 닫고 자신의 영혼에 몰두하는 장소를 갖는 일은. 그것은 떠남이자 도착이다. 그곳에서 당신은 다른 사람이 되기를 멈추고 오로지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


제주에 오면, 나는 우선 화장을 벗어던진다. 애초에 화장품을 그렇게 챙겨가지 않는다. 옷도 대충 두세벌 챙겨 돌려 입는다. 여름엔 아침 일찍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바다 수영을 가고 집에 돌아와선 낮잠을 잔다. 겨울엔 눈 쌓인 오름에 올라가 찬 바람을 맞아본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고프지 않아도 끼니를 챙기려고 노력한다.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고 오로지 나의 모습으로 존재하고자 한다. 거창한 것을 하는게 아니다. 오히려 원초적인 생활만 하면서 내 마음을 가꾼다. 지금처럼 바다가 멀리 보이는 카페에 와서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한다.


제주의 특별함은 이것에만 있는 건 아니다. 이모와 미나(반려견)가 제주에서 날 기다린다. 난 이들과 함께 산책을 하고 바다에 간다. 이모와는 남자 얘기도, 인생 얘기도 하며 술잔을 기울인다. 그러다 알딸딸해져 잠에 들고 또 아침에는 산책을 하거나 바다에 가는 것이다.


그러면 혼자 서울에 살면서 드는 여러 복잡한 생각들, 나는 언제 돈을 모으나? 앞으로 뭘 해먹고 살아야 하나? (평생 직장인으로 살다 죽어야하나?) 쟤는 나한테 왜 그럴까 또 나는 왜 이럴까? 이런 것들이 제주에선 사라진다.


제주에서 나의 복잡한 생각들을 사라지게 하는 색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파란색

이번 제주에서는 바다와 함께 했다. 바다에서 스노쿨링만 했던 나에게 스쿠버다이빙은 신세계였다.

1m 씩 들어갈수록 바다는 나에게 새로운 시야를 보여줬다.

흰동가리가 말미잘 틈 사이에 알을 낳고 그걸 지키는 아빠 흰동가리의 모습,

그리고 방어나 부시리 등 큰 물고기에게 쫓기는 전갱이 떼가 무리지어 춤추는 모습,

태어나서 처음 보는 물고기들.

마지막으로 그 세계를 보기 위해 배를 타고 섬에 가서 20kg 짜리 공기 탱크를 등에 지고 뛰어내려야 했던 나의 모습.


바다 속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나의 숨소리 뿐이었다.

온전히 내가 입으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소리에 집중하며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장면들을 하나씩 나의 기억 속에 묻었다.


발이 닿지 않는 바다 속이 무서울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나는 그 속에서 더 큰 편안함과 안온함을 느꼈다. 바다 속에서는 뇌가 쉬는 시간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맞았다.


2. 그리고 초록색

제주의 숲은 나로 하여금 깊은 숨을 들이쉴 수 있게 해준다. 내가 숨을 쉬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제 3자의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달까.


가끔 나는 무언가에 집중할 때, 주로 일 혹은 영화 같이 몰두가 필요한 것들을 할 때 잠시 숨을 멈춘다.

그리곤 깨닫는다 내가 숨을 안쉬고 있었구나. 올해 받은 건강검진에서 심장에 공급되는 산소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나도 안 사실이다. 그 후론 의도적으로 숨을 쉬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러한 노력이 초록색 나무들 사이에서 흙을 밟고 있는 나에게는 필요없다는 것을 알았다.



회색이 가득한 서울에서 벗어나 파란색과 초록색이 가득한 곳.

그래서 나로 하여금 다른 생각은 들지 않고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곳, 진정한 휴식처. 나의 레푸기움은 제주이다.


여러분은 여러분만의 레푸기움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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