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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May 28. 2024

하루라도 빨리 떠납시다

여행을 굳이 왜 해? 하는 사람들이 보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움직이시길.

내 첫 해외영행지가 어딘지를 곱씹어보니 20살이 되자마자 가족과 함께 한 대만여행이 첫 시작이었다. 


길거리에서 나는 고수 냄새와 취두부 냄새가 내 코를 콕콕 찔러댔다. 

밤에는 수많은 노숙자들이 거리에 마구잡이로 누워있어 잘 걸어다닐 수도 없었고 9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찌는 더위와 높은 습기에 숨이 턱턱 막혔다.


두부 요린줄 알고 주문했으나 취두부였던 건에 대하여


이렇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불편함들로 가득 찬 해외여행에 내가 왜 푹 빠지게 되어 15개 국가를 여행하고도 아직 목말라 있는건지 생각해보았다. 


#1. 받아들이기

첫째,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된다. 내가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은 처음 유럽에 갔을 때 그들의 여유로움(지금은 여유로움이라고 표현하지만 그 때는 속터져 죽는 줄 알았다)이었다. 


우선 한국인치곤 주문을 하기 위해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하물며 자리에 앉는 것도 기다려야하고 눈이 마주치고 텔레파시가 통해야 주문을 할 수 있다.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는 것도 한참이고 계산도 눈치껏 다 먹었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기다려야 주문서를 가져온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먹었던 스페인에서의 첫 끼. (빠에야와 샹그리아)


또 나와 다른 약자들을 조금 더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유럽의 버스들은 전부 (일부가 아니라 모두 다) 턱이 낮다. 타고 내릴 때 더 내려가서 노인과 장애인 분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훨씬 유리하다. 물론 캐리어에 가방에 짐이 많았던 나도 짐을 올리고 내리기 수월해 좋았지만. 


어느 날, 런던의 길거리를 여느 때와 같이 빠르게 걷고 있는데 버튼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장애인 혹은 유모차를 가진 엄마 아빠들을 위한 HELP 버튼이었다. 이 버튼을 누르면 직이 나와서 도와주나보다, 참 섞여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도움이 필요 없던 사람이었어서 몰랐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얕은 턱이 큰 산보다 오르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또 다시 받아들임을 배웠다.

사실 이런 버튼은 한국에서 본 적이 없다.

#2. 기분 좋은 낯설음

내가 멀고도 여행가는 두번째 이유는 내가 지금 있는 낯익은 곳을 낯설게 하기 위함이다.


너무나 익숙한 해방촌 야경, 후암동 길거리 그리고 똑같은 숫자의 버스들이 지겨울 때가 있다. 나는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를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서울살이 8년차다 보니 새로울 것이 없을 순간들이 온다.


미친듯이 이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나는 여행을 간다.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르게 사는 사람들 다른 말투로 대화하는 사람들이 나의 호기심에 숨을 불어넣어준다. 그렇게 되면 다채로운 아이디어들이 내 머리속을 간지럽힌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쓰면 좋을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면 좋을지 그리고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면 뭘 할지 이런 것들 등등. 이런 생각들은 나로 하여금 인생을 조금 더 재밌게 살아보고자 하게 한다. 그리고 그 재밌게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은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원동력이 된다.


염소 교통체증을 겪어본 적 있는가

내가 여행갔던 곳들 중 제일 낯설음이 컸던 곳은 이집트가 아니었나 싶다. 차선이 없어 그냥 가지는대로 가는 차들, 신호등은 없어 눈치껏 건너야하는 횡단보도 그리고 건물들이 낮고 햇살이 너무 뜨거워(4월에 32도였다) 10분 이상 버티기 어려운 피크시간대 게다가 하루에 세 번 들리는 이슬람 기도 소리까지.


그러나 나를 제일 놀래켰던 광경은 어린 나이에 작은 손으로 팔찌를 만들어 파는 아이들도,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개들도(절대 강아지 아니고 개였다), 가격표를 붙이지 않은 채 나의 흥정능력과 넉에 따라 달라지는 가격도 아니었다. 


바로 염소들이었다. 이 곳의 염소들은 사람들이 버린 폐지를 먹으며 살고 있었다. 진짜 염소는 종이를 먹는구나.. 하며 길을 걷고 있는데 그들이 도로 한복판을 점령해버린 것이다. 나라면 짜증날 법도 할 것 같은데 어느 누구도 경적을 울리며 이들에게 비키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냥 기다려주었다. 아무래도  GOAT Traffic jam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나 뿐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 자동차 교통체증을 보아하니, 그래도 염소 교통체증이 사랑스러웠던 것 같기도.


#3. 나를 찾아서

나는 호불호가 강하지 않은 편이다. 잘 섞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만큼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잘 몰라서 가끔은 마음이 힘들 때가 있다. 하루종일 상대방에게 맞춰주느라 좋아하는 걸 하다가 집에 오면 가끔은 오늘 이걸 먹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저걸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은 날들도 있기 때문이다.


혼자 여행을 하면 그렇지 않다. 24시간을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가득 채울 수 있다. 

어떤 음악을 들으며 걸을지 어떤 음식을 몇 시에 먹을지 어디서 잠시 앉아서 멍을 때릴지 그런 것들.


나는 밝은 음악을 들으며 걷는 것을 좋아하고 음식을 천천히 먹으면서 주변을 구경하기를 좋아한다. 

가게 사장님들과 밝은 미소로 인사하는 것을 좋아하고 갈 때도 좋은 하루 보내라며 사랑으로 하루를 마무리 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집트에서 아침 산책 도중.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가득 채우다보면 나의 얼굴엔 생기가 돌고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거린다. 

그렇게 반짝거리는 나를 돌아보면 괜시리 웃음이 지어진다. 웃음이 지어진 내 모습은 나로 하여금 내 자신을 더 사랑하게 만든다. 




여행은 단순히 돌아다니면서 유명한 관광지에 가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바다.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나를 사랑하게 되며 기분 좋은 낯설음으로 하루를 가득하게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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