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헤맴

바다가 왜 치유인지

by 깔멩

“선배 좋겠네요.”

“왜?”

“부산 가면 바다 보잖아요!”

“뭐가 좋냐? 면접 보러 서울에서 부산까지 오라 가라 귀찮아 죽겠는데.”


S는 아직 어리다. 가난한 영화감독이 한 푼이라도 얻기 위해 눈물의 작품 어필쇼를 하러 가는 길을 고작 ‘바다’ 본다며 부럽다니 말이다. 얘는 부산 가는 KTX 값은 알고 부럽다 하나 몰라.


“바다 보면 좋죠. 해안가 드라이브도 좀 하고…”

“차 없거든? 바다는 무슨 그냥 면접만 보고 내려올 거다.”

“아 왜요, 거기까지 갔는데? 그냥 해수욕장 앉아서 글이라도 쓰다가 와요~”

“난 사람들이 바다 보는 게 왜 힐링이라 그러는지 모르겠어.”

“선배도 바닷가 사람 아니에요? 포항 사람이라 그러지 않았나?”

“그게 왜? 넌 그냥 바다만 보면 좋아?”

“그냥… 바다 보면 집 앞에 온 기분이 드니까? 전 그렇던데.”

“나한텐 고향에 가는 게 별로 힐링이 아닌가 봐.”


아닌가 봐. 방금 한번 생각해 보니 그런 듯하네- 식으로 말했지만 진작 알고 있었다. 나는 애향심 따위는 없다고.‘바닷가 사람’이라. S는 자기 정체성 앞에 바다를 갖다 붙인다. 나에 대해 설명해야 할 때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내 가족이 어디 살고 있는지, 내가 사는 곳에 바다가 있는지 사막이 있는지 이런 건 생각해 본 적조차 없다. 내 기억이 남아 있는 한 아주 어릴 적부터 포항은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고, 서울에 올라온 이후론 다신 내려가 살고 싶지 않은 재미없는 곳이었다. 그곳은 불모지, 나를 자극해 줄 재밌는 일은 찾아보기 힘든 도시다. 재밌는 데서 살겠다며 어떻게든 올라왔고, 할 줄 아는 게 영화 만들기뿐이라 내려가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절대 내려갈 생각은 안 했다.


“음… 뭐랄까, 저는 창원에서는 어디 아무 데나 떨어져도 안 무섭고 집에 무사히 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서울에선 모르는 데서 헤맨다는 건 생각만 해도 호러거든요. 전 지도 어플 안 보면 한 발짝도 못 움직여요.”

“너는 서울살이 5년 차가 맞니?”


이제 나는 면접 준비 하러 가야겠다-라는 멘트로 한 없이 길어지는 S의 바다-고향-헤맴 철학 강론을 아쉬운 척 마무리시켰다. 부산에 가면 꼭 바다에서 갈매기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말도 안 되는 지시와 함께 헤어진 뒤, 나는 작업실-이라고 남들에게 말하지만 사실상 그냥 나의 작은 집-로 향했다. 제작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내 시나리오를 더 발전시켜야 했다. 발전이라지만 사실은 주최사의 마음에 드는 팔릴 만한 영화로 탈바꿈시켜줘야 했다. 누군지도 모를 불특정다수인 대중이 좋아할 만한 글을 만드는 건 언제나 어려웠다. 죽어도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될 수는 없음으로. 이번 면접에서도‘이게 대중들에게 먹힐 만할까요?’라는 질문을 들을 게 뻔하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압니까? 남의 혀를 가질 수는 없는걸요.


제발 내 작품을 사랑해 주세요. 이 생각 하나로 퇴고를 하고 면접 준비를 하는 며칠이 순식간에 지났다. 그동안 그 밖의 모든 생각은 뒤로 미뤄뒀고, 숨을 몰아 쉬니 부산에서의 면접이 끝난 후였다. 면접장을 걸어 나오며 문득 든 생각은 ‘이제 뭐 하지?’였다. 진짜 지금 당장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른다.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고는 있는데 어디를 향하는 건지 아무도 모른다. 기차 시간까지는 너무 많이 남아버렸고. 걷고는 있는데 방향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자 바다-치유-헤맴 이론을 외치던 S의 목소리가 갑자기 떠올라 잠시 어질 했다.

.

.

.

지금 나는 길을 잃어서 바다에 앉아있다. 어딜 가야 할지 몰라 버스 정류장에 갔고, 사람들이 우르르 타는 버스에 올라탔고, 우르르 내리는 곳에 내려보니 해수욕장 앞이었다. 절대 바다에 오고 싶어 온 것은 아니다. 그냥 헤맴의 종착지가 바다였을 뿐이다.


바다에 온 것은, 아니 바다를 보려 가까이 가 모래를 밟은 것은 7년 만이었다. 어릴 적 나에게 바다는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늘 있는 것은 있는 줄도 모르기 마련으로, 대학에 가서도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바다는 나의 별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7년 전에 웬일로 바다에 들어간 것은 멀디 먼 바르셀로나에서였다. 그러니까 바다가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게 아니라 그 동네가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것이었겠지. 나는 어릴 적 집 앞 포항 바다에 놀러 오는 관광객을 보면서 늘 궁금했다. 뭐를 보고 싶어서 우리 집 앞까지 여행을 올까? 이 바다는 그렇게 볼 것도 없는데. 난 객관적으로 우리 집 앞바다는 타 도시에서 와서 볼 만큼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본능적으로 발 담그고 싶었던 바르셀로나 해변은 귀여움에 가까운 해사하게 웃는 듯한 옅은 청록색이었던 반면, 포항 바다는 청량한 여름의 휴양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 집 앞바다는 떠올리면 무표정의 얼굴이 아른 거리는 짙은 군청색이었다. 어두운 회색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속을 알 수 없이 차가운 인상의 그 바다는 도시 전체를 무채색으로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갈매기 사진 보내세요’


쓸데없는 생각 중 뜬금없는 카톡에 헛웃음이 나왔다. 바다 안 간다고 한 내 말은 듣지도 않았나 보다. 주변을 둘러보니 서울의 비둘기처럼 갈매기가 많았다. 대신 사람들이 더러운 듯 쳐다보며 피하는 게 아니라 깔깔대며 과자를 주고 있는 게 달랐다.


‘야 갈매기가 애기 과자 뺏어 먹는다’

‘저 지금 어딘지 맞혀보세요’


그리고 도착한 S가 보낸 사진 속에는 해안도로의 달리는 차 안에서 찍은 듯한 바다가 있었다. 한눈에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포항이네.’

‘와 저 지금 실습수업에서 포항 답사 옴.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의심스러웠는데 포항 사람 맞구나.’


어떻게 알았지? S의 물음이 내 속에서 똑같이 나왔다. 도로 표지판도 간판도 하나 없는 길을 어떻게 알았지? 더 오는 연락을 읽지도 못하고 계속 사진을 들여다봤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알아차린 단서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지금 앉아 있는 바다가 낯설고 사진 속 바다는 익숙한 이유를 찾아야 했다. 주변과 사진을 번갈아 보길 반복하다 문득 슬퍼졌다.


바다 색깔이, 멀리서 보이는 깊이가, 이 시간의 그림자 기울기가, 심어진 나무의 간격이, 도로의 폭이. 전부 내가 아는 그대로였다. 갑자기 어두운 밤 포항 어딘가로 추락하는 상상이 들었다. 떨어진 건 스무 살이 되기 이전의 나였다. 어딘지 모를 해안도로에 떨어져도 이 바다를 따라가면 결국 사람들이 산책하는 해수욕장이 나올 걸 알았다. 멀리 보이는 철강 공장의 불빛이 보였다. 아무리 멀어도 바다를 왼쪽에 두고 걸으면 집이 가까워질 것을 알았다. 그 길 끝에 문을 열면 무엇이 서 있을지도 알았다.


나는 내 앞에 ‘바다’라는 말을 뗄 수 없음을 알아버렸다. S와 나는 다르지 않았다. 내가 헤맴 없이 척척 걸어왔다 생각한 것은 다 남이 써준 지표를 따라서였다. 나는 떠나온 뒤로 줄곧 헤맸다. 나는 이제 어디로 발을 내디뎌야 할지 모른다. 한 달 전에도, 일 년 전에도, 나아간다고 스스로 속였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슬프게도 내가 사랑하는 영화는 필연적으로 날 헤매게 만들었다. 잠깐 불빛이 보이면 혼신의 힘을 다해 나를 사랑해 달라고 달렸다가, 그 불이 꺼지면 또 길을 잃었다.


넓고 밀도 높고 재밌는 곳에서 멋지게 살겠다며 떠나온 곳에서, 돌아가 남겨진 사람들에게 길 잃은 나를 보여줄 순 없었다. 그래서 바다와 멀어졌다. 어디에 떨어져도 무섭지 않을 밤은 없었다. 알아버린 이상 나의 헤맴을 모른 척할 방법은 없다. 헤맴 없을 곳이 필요하다. 기차의 행선지를 바꾸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