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콘과 권력
“어? 성오야, 너 양손 악력 차이가 왜 이렇게 커?”
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22번 친구가 물었다. 나는 출석번호 21번.
“오른손은 29, 왼손은 58이네?”
왜 남의 악력까지 훔쳐보고 외우는 거야. 뭐라 대답할지 망설이는 사이 22번 친구는 내 양쪽 팔에 자기 손을 얹고 내 팔뚝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헐 야 너 왼팔만 근육이 있어! 니 몸 지금 완전 비대칭이야.”
내 악력을 기록하고 있는 체육 선생님보다 내 체력 측정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얘는.
“29면 거의 여자애들 수준 아니냐? 왼손은 왤케 높아?”
“어 그게… 나 왼손잡이라.”
“너 왼손잡이였어? 아까 공 던질 때 오른손으로 하지 않았냐? 아닌가?”
“아 그건 그런데 왼손잡이 맞아”
“그러냐. 몰랐네.”
아니. 니가 제대로 본 거다. 난 왼손잡이가 아니다.
내가 왼손만 악력이 센 건, 우리 집의 망할 ‘팔씨름 콘테스트’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7시 리모콘 주도권을 건 팔씨름 콘테스트’ 이 콘테스트는 2달 전 내 동생의 반란으로 시작됐다.
우리 집은 좁다. 작은 투룸인 집에, 사는 사람은 많다. 나, 어린 여동생 하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그 좁은 집의 벽 한 켠에 커다란 벽걸이 TV가 하나 있다. 우리 집 분수에 안 맞아 보이는 Full HD TV. TV 전원을 키는 순간 그 빛은 너무나 빠르게 방의 끝에 닿고 소리는 좁은 방을 가득 채운다. 우리 집은 그 빛과 소리의 지배를 받는다. 나의 아버지는 하루 종일 그 TV 앞에 리모콘을 들고 앉아 있다. 어머니는 일을 하시느라 TV를 쳐다볼 시간도 없으시고. 학교 갔다 와서 문을 열면 늘 아버지가 보고 있는 화면을 마주한다.
하루는 하교 후 문을 열었는데 TV 소리 말고 동생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동생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7시에 하는 <키라키라 락스타>라는 애니메이션을 자기 친구들이 다 봐서 자기도 봐야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7시는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정치인이 나오는 정치 예능이 하는 시간. 아버지가 락스타 어쩌고 애니를 틀어줄 리가 없다.
“나 키라키라 락스타 봐야 된단 말이야 흐아앙”
솔직히 동생이 더 떼써서 락스타 그거 보길 바랐다. 하루 종일 들리는 정치인들의 비꼬는 유머와 아버지의 역정 가득한 정치인 욕도 듣기 싫고 집 안 어디에 읹아도 눈에 들어오는 그 사람들의 화난 얼굴도 보기 싫었다.
“왜 아빠만 리모콘 써야 돼? 나는 왜 못 써? 왜?”
7살, ‘왜’를 입에 달고 다닐 시기인 내 동생의 ‘왜’가 시작됐다. 나는 18살 되도록 아버지에게 ‘왜’라고 말할 생각조차 못 해봤는데. ‘왜’를 향한 동생의 충동은 막을 수가 없었다. ‘왜’라는 동생의 질문에 아버지는 처음엔 시끄럽다며 상대를 안 하려 했지만 계속되는 ‘왜’ 폭격에 어느새 답을 찾느라 쩔쩔매고 있었다.
“아빠가 힘이 제일 세니까.;;”
당신 스스로도 말해놓고 창피한 듯했지만 동생의 ‘왜’를 잠재울 만한 답변이었다.
“오빠는? 오빠가 더 셀 수도 있잖아.”
동생은 가만히 있던 나를 링 위에 올렸다. 동생은 나와 아버지를 TV 앞 접이식 상에 앉히고는 팔씨름을 하게 만들었다.
“둘이 팔씨름 해봐 빨리! 오빠 이기면 나 키라키라 락스타 틀어줘 제발.”
그렇게 첫 경기는 아버지가 이겼다. 여자 애들 정도의 근력을 가진, 허약한 나는 보통 체격의 아버지를 이길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승리를 당연히 여기는 듯했지만 나는 그날 아버지 얼굴에서 언뜻 안도감을 봤다. 그 이후로 매일 우리 집에서는 동생의 주도하에 7시 리모콘 주도권을 건 팔씨름 콘테스트가 열렸다. 나는 동생 때문에 강제 참여.
팔씨름에서 자신에게 지는 아버지를 볼 때가 오면 서글퍼진다고 하던가? 난 아닐 것 같다. 우리 아버지는 아직 자신을 이기지 못 하는 자식에게 안도하는 사람이다. 나는 알 수 없는 승부욕이 생겼다. ‘반드시 이 멍청한 싸움에서 승리해서 저 시끄러운 TV를 꺼버리겠다.’ 이 생각 하나로 나는 운동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팔씨름에서 왼손만 쓰신다. 그렇게 나는 매일 ‘왼쪽 팔 키우기 운동’을 했다. 이 싸움에 운동까지 하는 걸 남에게 들킬 순 없으므로 집에 들어가기 전에 몰래 집 앞 놀이터를 이용했다.
여기까지가 지금 내가 왼손 악력만 높은 이유다. 58이라, 이제 내가 운동한 걸 숨기지 않고 힘을 다 써볼 때가 된 것 같다. “왜 왼손만 세?”라는 친구에게 이 멍청한 싸움을 다 이야기할 순 없으니, 나는 앞으로 계속 왼손잡이인 척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