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장창

5월 4일의 일기

by 깔멩

창연은 그런 사람이었다.

뭐든지 도미노로 만드는 사람.


3년 전 창연은 별로 친하지 않은 대학교 선배 결혼식에 갔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의자에 앉지 못하고 구석 벽면에 존재감 없이 기대서 있게 됐다. 처음 보는 양가 친척들 틈에서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왠지 모를 안도감에 편하게 벽에 기대 섰다가 가벽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결혼식의 주인공 역할을 빼앗고 만 것이다. 선배 억장도 무너지고 연은 끊겼다.


2년 전 창연은 커튼을 사러 커튼용 원단을 잔뜩 파는 종합상가에 갔다. 큰 백팩을 메고 간 창연은 조금만 조심성 없이 굴면 다닥다닥 붙은 매장에 진열된 원단과 부자재를 칠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이때만 해도 창연은 본인이 부주의한 타입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 조심히, 혹여나 누군가를 칠까 행동거지에 신경 썼다. 그래도 도미노는 쓰러졌다. 상체만 조심할 것이 아니었다. 기다랗게 말린 원단을 옮기는 사장님을 피해 한 걸음, 딱 한 걸음 옆으로 옮긴 건데 바닥에 늘어진 커튼을 제대로 밟았다. 창연이 넘어지며 커튼을 당겼고 커튼도 도미노처럼 우두둑 떨어졌다. 창연은 죄송해서 커튼을 4개나 샀다.


사실 예식장의 파티션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커튼도 그렇게 쉽게 떨어지는 건 아니다. 창연이 특별히 부주의해서가 아니라, 남들 하는 만큼만 마음을 놓았을 뿐인데 엄청난 부주의가 불러온 듯한 사고를 치는 저주에 걸렸다.


1년 전 패밀리 레스토랑 알바를 할 때만 해도 이게 저주인 줄은 몰랐다. 홀에서 서빙을 맡은 창연은 언제나 긴장 상태로 일했다. 이때는 본인이 ADHD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주문을 잘못 넣거나 잘못 서빙하진 않을지 늘 더블 체크했다. 4명 이상이 온 테이블에 서빙을 할 때는 초비상이었다. 혹여나 쟁반을 떨어뜨릴까 모든 걸음을 신중하게 걸었다. 3달이 넘어도 아무 사고가 일어나지 않자 창연은 기뻤다. 그게 문제였다. 일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창연은 신입 여자 알바가 힘겹게 들고 가는 빈 접시 더미를 대신 들겠다며 빠른 걸음으로 가다 스텝이 꼬였다. 신입을 넘어뜨리고 접시는 와장창 깨졌다. 레드카펫처럼 일렬로 주욱 접시 길이 깔렸다.


6개월 전 용돈이 필요했던 대학생 창연은 자신에게 딱 맞는 알바를 찾았다. 바로 회전초밥 전문점이다. 많이 움직이는 알바는 무언가를 넘어뜨릴 가능성이 너무 크다고 생각한 창연은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전초밥 레일 중앙에서 열심히 밥알을 뭉치는 것만 6개월을 배웠다. 한 군데 가만히 서서 손만 움직이는 건 꽤 괜찮았다. 본인 시야가 좁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건 오히려 잘한다고 여겼다. 주문을 외우고 갖다 줄 필요도 없었다. 그저 색깔에 맞는 접시에 올려서 레일 위에 놓기만 하면 됐다. 빈 접시를 수시로 치워주지 않아도 되니 너무 편했다.


지금 이 순간 창연은 본인이 저주에 걸렸단 것을 확신한다. 창연 정면에 보이는 바 테이블에 혼자 온 여자 손님이 어느 순간 창연이 초밥을 만들어 레일에 올리는 족족 바로 가져갔다. 신경 쓰이기 시작한 창연이 잠시 고개를 들어 봤더니 어딘가 좀 위험했다. 그 여자가 빈 접시를 너무 높게 쌓았다. 여자 머리 꼭대기 높이를 막 넘기려 하고 있었다. 창연 눈에는 내진 설계가 전혀 안된 고층빌딩으로 보였다. 덩달아 여자 양 옆의 손님들의 접시도 괜히 위태로워 보였다. 밥알만 보던 창연의 온 신경이 그 여자 접시로 갔다.


그때 참았어야 했다. 레일 쪽으로 약간 기운 접시 탑을 치워드리겠다며 몸을 숙여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오색 탑이 와르르 무너졌다. 눈길도 주지 말았어야 했다. 고층 탑은 양옆 손님 접시도 무너뜨렸으며 누가 무얼 먹었는지 알 수가 없는 혼돈의 카오스가 펼쳐졌다. 창연이 아무 말도 못 하는 동안 세 명의 손님이 금색 접시는 서로 자신이 먹은 게 아니라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창연은 이 자리도 끝이구나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본인이 부주의해서가 아니라는 생각에 묘한 안도감과, 이건 저주라는 생각에 억울함이 같이 몰려왔다. 됐다. 그냥 이번 달 월급은 안 받을 테니 세 손님의 초밥 값을 시원하게 쏘기로 했다. 그 길로 도미노의 손을 가진 창연은 앞치마를 벗고 떠나버렸다. 집에 가는 길에 창연은 철거업체에서 알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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