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스타일을 찾아서 1. 나의 영역을 구축하는 좋은 방법
미국의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훔치기의 대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빠져 살았고, 감독이 되어서는 일찌기 봤던 일본 영화, 홍콩영화, 미국 B급 영화의 장면 장면을 훔쳐내 자신의 영화에 매끄럽게 녹여내었다. 일부 평론가가 그의 영화에 훔쳐온 장면이 많다고 비판하자, 타란티노는 이렇게 반박한다.
“적어도 나는 훔칠 때 정직하다. 우리는 모두 어떤 것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든다. 그렇다면 왜 직접적으로 가져오면 안되는가? 왜 비슷해 보이는 것을 만들기 위해 이것저것 섞으면 안 되는가? 영화감독은 DJ와 비슷한 면이 있다.”
- 출처: 유창의 무비믹스
흔히 '창의력, 창조'라는 걸 말하면, 느닷없이 새로운 게 하늘에 뚝, 떨어지는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세상에 어떤 것도 '완전히' 새로운 건 없다. 모든 것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그래서 좋은 모방을 많이 할 수록 좋은 것을 창작해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좋은 모방이란 무엇일까? 티란티노는 말한다. 따라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내 것으로 소화시켜 자신만의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남미에는 피카소만큼 유명한 화가가 있다. 바로, 오스발도 과야사민 (Oswaldo Guayasamin)이다. 그는 에콰도르 국민화가로 '남미의 피카소'라고 불린다. 그럴만도 한게 그의 그림을 보면 '어, 이거 피카소 그림 아냐?' 할 만큼 매우 흡사하다. 사실 에콰도르에 가기 전까지 과야사민이라는 이름도 들어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수도인 '키토'에 있는 '과야사민 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을 처음 접했다. 나는 그의 그림이 바뀌어 가는 과정을 매우 흥미롭게 보았다.
과야사민은 원주민 아버지와 메스티소(백인과 인디오 혼혈)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훗날 미술가로 크게 성공해 부유한 삶을 누렸지만, 어린 시절은 아주 가난했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두각을 나타내, 키토에 있는 미술학교에 다니면서 화가로서의 길을 닦았다. 그는 인디오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보고 자라면서 소외된 자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했다. 그래서 그림에 원주민의 아픔과 정치적 억압, 그리고 인간의 잔혹성을 줄기차게 담아냈다. 민중의 아픔과 분노를 표현하다보니 초기 그림의 화풍은 대부분 강렬하고 어둡다.
그런데 후기에 들면서 그의 화풍이 크게 바뀌어 간다. 과야사민의 화풍이 큰 변화를 맞이하는 건 피카소 때문이라고 한다. 이때부터 피카소의 입체파의 영향을 받은 것과 같은 작품들이 탄생한다. 대상을 해체시키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다시 조합시켜놓은 그림들은 한 눈에 봐도 '어, 피카소네'라고 말할만큼 닮았다. 과야사민은 피카소 외에도 멕시코의 3대 벽화 거장인 '오로스코'와 중국의 화가인 '쉬 베이홍'의 동양화법 등 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과야사민은 여러 다른 화풍을 모방하며 후기에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전히 거듭난다.
나는 과야사민과 같은 천재적인 화가도 자신의 스타일을 지닌 거장이 되기 전에 는 누군가를 모방했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받았다. 과야사민은 피카소를 모방했지만, 사실 피카소야 말로 모방의 대가였다.
피카소는 어려서는 아버지 작품을, 또한 마네, 쿠르베, 엘그레코, 들라크루아 등 여러 대가들의 그림을 숱하게 따라 그렸다. 피카소는 학교를 그만두고, 대신 선배 화가들의 그림을 모방하면서 실력을 키웠다. 특히 피카소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끊임없이 모방해 그렸는데, 그중 ‘시녀들’이란 작품만 모방해 그린 게 58점에 달한다. 벨라스케스는 피카소에게 평생 도전의 상대였는데, 이렇게까지 말한다.
“나는 열다섯 살에 벨라스케스처럼 그렸다. 덕분에 80년간 아이처럼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피카소는 그저 베끼지 않고, 핵심을 훔쳐와 자신의 것으로 녹여내었다. 피카소는 모방을 하면서 자신의 화풍을 만들어갔고, 마침내 '입체파'라는 전무후무한 화풍을 완성한다. 피카소는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서도 모방을 했는데, 심지어 아이들을 그림에서도 '훔쳤다'고 말한다. 왜 그렇게 다른 그림을 모방하는지 궁금해 하자 피카소는 "천재성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라지거든. 그러니까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라고 답했다. 애초 그에게 모방은 창조를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모방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것으로는 ‘페르난도 보테로'도 빼놓을 수 없다. 보테로의 그림은 특유의 터질 듯 풍만한 양감과 밝고 화사한 색감이 특징인데, 누가봐도 '아 이건 보테로 그림이다'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독특한 화풍을 자랑한다. 이런 화풍 역시 모방을 통해 완성되었다!
콜롬비아 메데진 출신인 '보테로'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다. 대신 20대에 유럽을 여행하며 미술을 독학으로 익혔다. 그는 미술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벨라스케스, 고야, 엥그르와 같은 대가들의 그림을 연구했다. 대가들의 그림에 나타난 양감과 색채에 매료돼 엄청나게 따라 그리며 모방을 통해 기술을 익혀갔다. 미술사를 열심히 공부하고 대가들의 작품을 열심히 연구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모방하며 익힌 기술에 타고난 남미의 다채로운 색채감이 더해지면서, 마침내 명랑한 원색이 살아있고 탱탱한 불륨을 지닌 보테로 특유의 화풍이 완성된다. 보테로는 대가들의 그림을 패러디 하는 걸로도 유명한데, 어떤 사물이든지 그의 손을 거치면 터질듯 풍만한 볼륨감과 밝과 화사한 색채를 입고 재탄생한다. 그는 대가들에 주눅들지 않고, 그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다. 대표적인 작품은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창의, 창조'를 두 손 벌려 부르짖는 사회에서 '모방'은 왠지 좀 덜떨어거나, 죄짓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모방이 창조의 시작이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기 위해서는 모방이 필요하다는 걸 보면서 나는 좀 안심이 되었다. 특히 미술계에서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위대한 세 화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는, 누군가를 흉내내는 앵무새였다는 사실이 큰 위안을 주었다.
좋은 모방을 많이 해볼수록, 좋은 것을 만들어 낼 힘도 커진다. 한때 붐을 일으켰던 '필사'도 마찬가지다. 필사는 대가들의 문구를 베겨쓰면서 문장실력을 높이는 방법이다. 단순히 옮겨 적는 게 아니라, 옮겨적으면서 문장 구조와 문체, 어휘, 내용을 한꺼번에 익혀가는 것이다. 따라 하다보면 자연스레 행동으로 터득되는 기술이 생겨나고, 내 안에서 저절로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점점 나아지게 된다.
모방의 대가 '피카소'는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copy),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steal)." 며 모방을 넘어 훔치라고 말한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창조하기 전 모방도 해봐야 한다. 모방을 통해 대가들의 방식을 접하고 소화시키며 나만의 방식을 창조해낼 수 있다. 그때까지는 앵무새여도 괜찮다. 말을 틔우려면 먼저 흉내내어야 한다. 그렇게 말을 배우다보면 언젠가 자신만의 소리를 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