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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Sep 30. 2019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

당신은 스스로를 뭐라고 규정하나요?

내가 누구인지 (당신이) 말해주세요


핀란드에 이런 농담이 있다.


독일인, 프랑스인, 미국인, 핀란드인이 길을 가다 코끼리를 만났다.

빈틈없는 독일인은 코끼리에 대해 모든 것을 알기 위해 분석하려고 들었고,

미적 감각이 뛰어난 프랑스인은 코끼리를 요모조모 뜯어보며 그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사업적 감각이 뛰어난 미국인은 코끼리로 어떻게 돈을 벌지 궁리하는데,

자의식이 강한 핀란드인은 "저 코끼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한다는 것이다. ㅎㅎㅎ


강한 자의식을 가진 민족성을 빗댄 이야기인데, 이를 듣고 웃을 수만은 없었다. 나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늘 관심을 두고, 되도록 좋은 평가를 해주기를 바랐다.




김글리 설문조사를 실시합니다


스무살 무렵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나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까' 매우 궁금해진 나머지 실험을 하나 해보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문자를 넣어서 나에 대한 키워드를 3개 뽑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핸드폰 주소록을 뒤져 그나마 나를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62명을 뽑아서 문자를 보냈다. 대상은 가족부터 친구, 지인, 직장동료 등으로 다양했다.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그들의 눈을 통해 나라는 인간을 다시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자를 받고 처음엔 일희일비했다. 좋은 말에는 나를 이렇게 좋게 보는구나 해서 기뻤고, 안 좋은 말에는 나를 이정도 밖에 보지 않는구나 속상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 의견 말고, 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그동안 나는 좋은 평가를 받으면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예쁘다, 멋지다. 좋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한 번이라도 더 듣기 위해 발싸심했다. 남들이 나를 뭐라 평가하느냐에 나라는 존재의 가치가 달려있었으니까. 그런데 정작 나는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거지? 생각해보니, 뭐라, 할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남들의 평가에만 신경썼지, 한번도 나 스스로를 규정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규정하는 힘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라고 언급되던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리지 벨라스케스. 그녀는 키 157cm에 몸무게는 26kg밖에 되지 않는다. 조로증을 동반한 선천적 희소병을 앓고 있어, 아무리 먹어도 몸에 지방이 쌓이지 않는다. 재밌고 영리하고 활달했는데도 마치 걸어 다니는 미라와 같은 외모 때문에 어릴 때부터 따돌림을 많이 당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사랑덕분에 꿋꿋이 학교생활을 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벨라스케스는 유튜브에서  8초짜리 영상을 발견한다.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누군가 자신의 사진을 올려놓은 것이었다. 그를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그런데 댓글은 더 했다. "그냥 총으로 자살하세요." "불로 태워 죽여라." "부모는 왜 쟤를 키웠을까?" 와 같은 조롱하고 빈정거거리는 댓글이 수 천개가 달렸다. 눈물이 절로 났다. 내가 누군지도 알지 못하면서 심한 상처를 주고 있는 사람들에게 맞서 싸우려던 그 순간, 벨라스케스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오랫동안 제 외모가 저를 규정한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를 역겹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영상을 보고 난 뒤, 결심했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나를 규정하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나는 내 외모가 아니라, 이 병이 아니라,
내가 이뤄낸 것들로 나를 규정할 겁니다.”


그녀는 싸우는 대신, 다음 목표들을 세웠다. 동기부여 강연가가 되기, 책 쓰기, 대학 졸업하기, 자신의 경력을 쌓고 가정을 꾸리기. 그로부터 8년 후 그녀는 동기부여 강연가가 되었고, 책을 썼고, 대학을 졸업했다. 현재 그녀는 학교폭력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고 자신의 이야기로 다큐멘터리 영화도 찍었다.


이제 그녀는 '가장 못생긴 여자'가 아니라, '브레이브하트 (학교폭력과 괴롭힘에 맞서는 자)’ 가 되었다.  남들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말로 스스로를 규정하면서, 그녀는 인생반전을 이뤄낸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규정하는 힘이 얼마나 큰지를 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자신을 무엇으로 규정하나요?
How do you define yourself?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


김글리 설문조사는 내게 의미심장한 결과를 안겨주었다. 그동안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를 신경쓰며 살았는데, 저마다 자신이 보고 싶은대로 나를 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의 주관적이고 가변적인 시선에 그동안 나의 가치를 맡겨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미국의 목사인 로버트 슐러는 자아이미지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자아이미지란 어떤 사람이 그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이미지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그것도 아닙니다. 자아이미지는 본인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이러저러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믿는 그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고양이로 볼까, 호랑이로 볼까? (이미지출처: www.flickr.com)


중요한 건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가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였다. 그동안 내겐 벨라스케스처럼 스스로를 규정하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남들이 나를 정의하는 말에 집착하고 휘둘렸다.


자존감 분야에서 저명한 심리학자 나다니엘 브랜든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평가하는 가치기준"이라고 말한다.  남들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이 더욱 더 중요하다.  사람들이 나를 무엇으로 보든 상관없이, 내 안에는 그보다 더 크고 무수히 많은 모습들이 있다는 걸, 내가 알고 있으면 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자신만의 언어가 있어야 한다.


예전엔 누군가가 내게 좋은 사람이라고 아름답다고 말해주어야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제는 누군가의 평가와 의견이 없이도 내가 이미 그런 존재라는 걸 안다.


실제로 나는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좋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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