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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력 전투력을 가진 <바이킹스>를 만든 힘

미드 바이킹스를 보고 죽음을 사유하다

by 김글리

친구 추천으로 보게 된 <바이킹스>. 이틀 밤을 새다시피해서 시즌 3까지 정주행해버렸다. 보면서 여러모로 충격을 받았는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호전성과 강인한 여성성, 무엇보다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매우 인상깊었다.


바이킹스.jpg <바이킹스> 포스터 (출처: 넷플릭스)


바이킹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어떤 의미에서는 환영하기까지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덕에 전투력이 어마무시했는데, 웃으며 도끼로 내려찍고 웃으며 죽어갔다. 이 때문에 유럽인들은 바이킹을 두고 '악마'라 불렀다. 강함을 선호하는 그들의 호전적인 문화와 척박한 환경으로 인한 태생적 결핍, 그리고 발할라의 독특한 사후세계관이 맞물려 '바이킹'이라는 막강한 전사를 만들어 낸걸까? 유럽을 아작낼 정도로 막강했던 바이킹, 그들을 만들어낸 배경이 궁금해졌다.



우리가 바로 바이킹


바이킹은 스칸디나비아 반도(현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에 해당)에 살고 있던, 게르만족의 일파인 노르드 인들을 일컫는다. 농사도 짓기 어려운 척박한 환경으로 이들은 늘 새로운 식량 공급처를 찾아헤맨다. 지속적인 인구증가로 먹을 것은 늘 달리고 만성 생활고(?)에 시달린다. 그러다 '라그나르 로스브로크'라는 영웅이 등장하고 뜻을 모아 서쪽을 항해하기로 마음먹는다. 때마침 대서양을 건너 서쪽의 유럽으로 갈 수 있는 항법을 발견하게 되고, 배를 만드는 조선술이 뒷받침 되면서 8세기에 처음으로 약탈에 나선다. 첫 약탈대상지는 가톨릭 수도원이었다. 그를 시작으로 바이킹은 8세기부터 11세기까지 약 300년동안 유럽을 침략하고 약탈하며 맹위를 떨치게 된다.

바이킹 침략경로( 출처: 네이버블로그)

당시 유럽은 가톨릭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전쟁을 하더라도 수도원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 그런데 바이킹은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 따윈 신경쓰지 않았고 오히려 더 잔인하게 수도사들을 죽이곤 했다. 보물이 많은 수도원을 집중적으로 약탈하면서 닥치는대로 수도사들을 학살하고 잡아다 노예로 팔아버렸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에게 바이킹은 ‘악마의 화신’ 그 자체였다. 게다가 일반인보다 더 큰 체구에, 도끼를 휘두르는 겉모양과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하고, 닥치는 대로 죽이는 습성은 공포감을 자아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바이킹이 민주주의에 영향을 줬다고?


바이킹이 매우 야만스럽게 묘사되긴 하지만, 훌륭한 항해가이자 탐험가, 상인이었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바이킹마다 특징이 있었는데, 잔인한 해양민족의 중심은 덴마크 바이킹으로 이들이 주로 전쟁을 했고, 노르웨이 바이킹은 탐험과 개척, 스웨덴 바이킹은 장사를 주 특기로 했다.

미드 <바이킹스> 에서 묘사되는 바이킹 전사들 모습

놀랍게도 바이킹의 문화는 현재 민주주의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매년 모여 의회를 통해 대화로 문제를 풀어갔는데 이는 훗날 대의 민주주의의 토대를 갖추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또 이들이 죄인을 심판하는 방식은 지금의 배심원 제도에도 영향을 준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라 꼽히는 지금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누리는 자유와 평등, 복지의 모델 뿌리가 바로 바이킹 사회에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바이킹의 핏줄이 이어지는 건 직계 후손인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뿐만이 아니다. 알고보면 유럽 곳곳에 퍼져있다. 바이킹의 프랑스의 노르망디, 현재 영국왕조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정복왕 윌리엄 1세(지금의 엘리자베스 2세는 윌리엄 1세의 32대손이다),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왕국이 모두 바이킹의 후예들이다. 그들이 쓰던 고대 노르드어가 지금의 영어에 남아있다. 러시아도 ‘루스’라는 스웨덴 어에서 온 것으로, 초기 러시아는 스웨덴 바이킹이 슬라브족을 정복하여 기초를 다진 나라다.


바이킹은 8~11세기에 왕성한 활동을 벌이다 12세기에 쇠퇴한다. 여기엔 그리스교로 개종이나, 해안정비 체제 마련으로 침공이 어려워진 점 등이 있다. 허나 기후변화가 주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12세기 이후 소빙기 기후로 변화하면서 바이킹의 주 근거가지가 유빙으로 항해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바이킹은 야만스럽고 잔인한 이교도라고 평가돼 오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영국, 독일 등이 이들을 재평가를 하기 시작하면서 ‘용맹하고 진취적인 해양민족’이라는 이미지로 탈바꿈되었다.


바이킹의 독특한 세계관-발할라, 기꺼이 죽음을 달라!


이제 바이킹이 죽음을 다루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그들의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체계는 매우 흥미롭다. 드라마 <바이킹스>를 봐도 그렇고, 역사 고증에도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덕분에 더욱 사람들을 질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바이킹들은 명예롭게 싸우다 죽으면 죽은 뒤 오딘의 궁전인 ‘발할라’로 가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죽을 때 "발할라"를 외치며 웃으며 죽어간다. 무슬림이 "알라후 아크바르 (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죽어가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알고보면 둘의 사후관이 비슷한 부분이 있다.)


간혹 이들이 목숨걸로 미친 듯이 싸우는 모습 때문에 환각버섯을 복용하고 싸운다는 통설도 있었는데, 이는 정설은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미드에는 이들이 말린 버섯을 먹고 환각상태에 빠지는 걸 묘사하는 모습이 종종 나온다.) 역사가들은 약물보다는 ‘집단의식 또는 종교적 제의’를 통해 스스로 트랜스 상태에 빠지게 했다고 본다. 믿음의 힘으로 스스로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이다. 믿음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며, 내가 관심있게 본 것도 바로 이 부분 때문이었다.


상대적으로 약했던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아 이후 절대자로 군림하게 된 것이 바로 ‘믿음과 언어’ 덕분이라고 이야기하는 학자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유발 하라리가 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소통하면서 협력을 할 수 있었고, 이야기를 만들고 신화를 만들고 그를 통해 동일한 믿음 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를 '종교'로 체계회했고, 같은 믿음을 가지면 낯선 사람들과도 쉽게 하나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동일한 믿음 체계를 지니면 동지가 된다. 이슬람교, 유대교, 가톨릭교, 개신교, 불교 등 믿음체계가 같으면 세계관도 비슷해진다. 수천명, 수만명이 협력할 수 있는 바탕이 바로 이런 동일한 믿음체계에서 기능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바이킹이 가진 죽음에 대한 독특한 믿음은 특히 싸움에 있어 엄청난 동지애를 발휘하게 했을 것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영향을 줬을 것이다.


Walhall_by_Emil_Doepler.jpg Valhalla (1905) by Emil Doepler


전쟁의 신 오딘


바이킹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전통 신을 믿어왔다. 그 중 최고 신은 '전쟁의 신-오딘'이다. 오딘이 조금 낯설겠지만, 영화 <토르: 천둥의 신>으로 잘 알려진 토르가 바로 이 오딘의 아들이라고 하면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오딘'은 전쟁과 죽음, 지혜와 마법의 신으로 북유럽 신화의 최고 신으로 꼽히며, 그리스로마신화로 치면 제우스격이다. 재밌는 건 오딘의 지위가 처음에는 토르보다도 낮았는데, 오딘을 믿는 귀족 전사 계급이 세력을 얻게 되면서 덩달아 지위가 격상되었다는 점. 나중에는 최고의 신으로까지 추앙받는다. 세력자들에 따라 신의 지위도 격상되거나 격하되는 건 참 재밌는 일이다. 수요일을 뜻하는 Wednesday가 오딘의 다른 말인 웨덴 Woden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알게 모르게 우리도 그 영향을 받고 있다.


오딘은 애꾸눈을 감추기 위해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다니며, 곁에는 후긴과 무닌이라는 까마귀 두 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노인으로 형상화 된다. 미드 <바이킹스>에도 주인공인 라그나가 어떤 영감이나 계시를 받을 때 이 오딘의 모습이 형상화 되어 그의 눈 앞에 나타난다.


오딘은 이런 식으로 형상화 된다 (이미지출처:ZEDGE)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건가


미드 <바이킹스>에서 가장 압권은 죽음을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바이킹의 태도였다. 바이킹 전사들이 죽을 때 “발할라!”를 외치면서 죽는 걸 볼 수 있는데, 발할라는 오딘의 궁전으로 천국/천당에 해당된다. 전장에서 싸우다가 용맹하게 죽으면 이곳 발할라에 간다고 믿는다. 발할라에서는 다른 용맹한 전사들과 더불어 술을 마시며 연회를 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들은 전장에서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영광으로 여겼다. 오직 용맹한 전사들만 발할라로 간다고 여겼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두려워하는 기색없이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간다. 바이킹들은 오히려 침대에서 편하게 죽으면 지옥을 간다고 믿었기 때문에 병자나 노인들도 전장에서 죽기 위해 일부러 나갈 정도였다.


이처럼 오딘과 발할라의 존재는 바이킹들이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용맹을 떨치는데 강력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 문화는 죽음을 몹시 두려워하고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한다. 그런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되려 환영하는 이들의 태도는 무척 새롭고 신선하기까지 했으며,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나 역시 죽음이 두렵다. 왜 두려울까 생각해보면, 죽는 순간 예상되는 '고통'과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상실감'이 가장 크다. 개인적으로 종교가 없기 때문에 부활이나 환생, 영생, 저승과 같은 사후세계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죽음 이후를 심각히 생각해본적이 없다. 그래서 더 두려워운 걸까? 아직 죽음에 대해 준비는 되지 않았지만, 바이킹처럼 '웃으며 가고 싶다'. 언제 가도 괜찮도록 마음의 준비는 늘 해두고 싶다. 오딘이나 발할라가 없어도 말이다.


당분간 이 질문을 계속해서 생각해보게 될 것 같다.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까?



참고

가는 곳마다, 사는 곳마다 초일류 국가를 만든 해적들의 비밀, 조갑제, 월간조선, 2010. 12월호

갓오브워, 라그나로크와 신들의 전쟁

나무위키: 발할라, 바이킹, 북유럽 신화, 오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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