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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실이하늘 May 11. 2024

직장생활 속 감정이야기_자괴감

직장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감정들을 다루는 우연한 계기

출처 : Pixabay (PaliGraficas)


“자신을 믿어라.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라. 겸손하지만 합리적인 자신감 없이는 성공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다.”     


직장인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 느껴보았을 대표적인 감정은 ‘자괴감’이 아닐까 싶다. 다소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감정으로 분류되는데, 일반적으로는 억울하거나 속상한 상황에서 나타난다. 또한 자괴감은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정의하는데 우리가 느낄 때에는 대개 부끄러움보다는 괴로움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자괴감의 ‘괴(愧)’는 부끄러움을 뜻하지만 ‘괴로움’이라는 의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신이 느꼈던 자괴감은 어떤 이미지로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 나의 경우는 너무나 많은 감정이 뒤섞인 혼돈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순간은 ‘모 아니면 도’였을 정도로 극단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무엇보다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모조리 부정 당하는 듯한 그때 그 감정은 한 걸음 물러나 떠올려도 몸서리쳐진다. 너덜너덜해진 정체성과 신념도 지울 수 없는 생채기로 남았다.


직장생활에서의 자괴감은 스스로 역량이 부족하다며 어느 날 문득 느끼기도 하지만 타인에 의한 자괴감이 더 강력하다. 성과나 평가에 대한 실망감으로 인해, 반복되는 열등감으로 인해,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아 쪼그라드는 자존감으로 인해, 그리고 정도를 넘은 비난이나 비판을 받음으로 인해 우리는 직장생활에서 자괴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광고기획1팀 팀장을 맡고 있는 나 부장이 황 과장을 회의실로 불렀다. 먼저 자리를 잡은 나 부장은 테이블을 가득 덮을 만큼 종이를 깔고 있었다.     


“부장님, 이게 다 뭐에요?”

“응, 내가 만들어본 우리 회사 공익광고 시안이야. 그렇지 않아도 이 시안으로 광고를 집행해줬으면 해서 불렀어. 다만 내가 알아서 다 했으니 다른 직원에게 맡기면 되고, 특별히 건드릴 것 없이 그냥 마무리만 해주면 돼. 절대 건드리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부장님이 완벽하게 정리하신 걸로 알고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마무리작업은 정 대리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케이, 그럼 잘 부탁해!”     


황 과장은 자리로 돌아와 정 대리를 불러 조금 전 나 부장이 지시했던 사항을 꼼꼼하게 전달하였다. 한편 이제 갓 대리가 된 정 대리에게도 이번 작업이 커리어 차원에서 괜찮은 기회였다. 


정 대리는 몇 주간 주말도 반납해가며 마무리작업을 진행했고, 중간 중간 나 부장으로부터 첨삭과 최종 승인을 받았다. 결국 어느 월요일에 나 부장의 시안은 TV광고로 방방곡곡 송출되었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였다.     

“황 과장, 도대체 마무리를 어떻게 한 거야? 여기저기 틀린 곳도 많고, 내가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잖아!”

“네? 저는 부장님께서 정 대리와 마무리하신 것으로 알고 있었고, 저에게도 건드리지 말라고 몇 번 당부하셔서…….”

“경력이 몇 년인데 일을 그따위로 하는지 모르겠네. 대리에게 맡긴다고 할 때부터 좀 수상했지.”

“그건 부장님께서 다른 직원에게 맡기라고 하셨고, 한창 바쁜 시기라 일정상 정 대리밖에 맡을 사람이 없어서…….”

“아무튼 지금 나간 광고는 다 접고, 광고기획1팀 전원을 투입해서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들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황 과장은 황당하고, 어이없는,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덕지덕지 붙이고는 자리에 돌아와 그간 고생했던 정 대리에게 비보를 전해야만 했다.     

 

“정 대리, 조금 전에 부장님께 다녀왔는데 지난번에 송출했던 광고에 문제가 있었나 봐. 즉시 내리고, 다시 만든다고 하시더군.”

“뭐라구요?”

“나도 할 말이 없네. 내 머릿속도 너무 혼란스러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황 과장의 귀에는 씩씩거리는 정 대리의 숨소리가 너무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자신도 귀신에 홀린 것처럼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내 게시판에 황 과장의 경고 징계가 공지되었다. 지시한 대로 했을 뿐인데 징계라니 황 과장은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지금껏 광고판에서 일하면서 밥 먹고 살아왔던 황 과장 입장에서는 또다시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는 조심스럽게 위로를 건넸지만 그럴수록 황 과장이 느끼는 모욕감과 자괴감은 더 깊어갔다.     


실제로 이와 유사한 일들이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일어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지만 심한 경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결코 당사자가 아니면 헤아리기 쉽지 않은 감정이며,  직장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는 감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황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많은 직장인들은 이러한 크고 작은 자괴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정과 형편으로 감내했겠지만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퇴사하거나 시원하게 깽판을 벌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답답한 것은 주변 구성원들도 마찬가지다. 달래기도 애매하고, 마냥 외면하기는 더 애매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며 술이나 한 잔 먹자고 한들 쉽게 풀릴 문제인가. 또한 앞에서 본 사례에 나온 나 부장도 그리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세상사 ‘새옹지마’라며 마음을 돌리려 해도, ‘이 정도로 무너지면 내가 아니지.’라고 마음을 다잡아도 아무렇지 않은 듯 상처가 아물지는 않을 터다.


그렇다면 우리 중 누군가가 느낄지도 모르는 자괴감을 어떻게 슬기롭게 치유해야 할까. 단순히 당사자의 감정 조절 능력에 기댈 수도 없다. 함께 생활하는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큰 힘이 되겠지만 그보다도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북돋우어야 한다. 또한 무너진 멘털을 다잡고, 위축된 당당함을 얼른 바로 세워야 한다. 


미국 목사이자 작가인 노먼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은 말했다. “자신을 믿어라.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라. 겸손하지만 합리적인 자신감 없이는 성공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다.” 


끝으로 나를 믿고 사랑하는 만큼 타인을 존중하고, 타인의 감정도 매만질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성숙한 직장 문화를 통해 자괴감 따위가 직장생활에서 발붙이지 못하도록 함께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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